M은 자신의 삶이 회복되면 될수록 나에게 더 집중했어. 모든 행복을 나의 덕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지. 먹는 것도, 입는 것도 내가 우선이었고, 심지어는 집도 나를 위해 더 넓혀 가기로 결정했어.
그 해 겨울. 그녀가 회사에서 받은 포상금과 적금 일부를 깨 마련한 돈으로 나와 함께 호주 골드코스트에서 길고 달콤한 휴가를 보내는 동안, M은 마치 단절이나 나락, 불행, 외로움을 겪어 본 적이 없는 듯한 행복한 얼굴이었어.
완벽해진 일상과 회사에서의 특진, 그리고 되찾은 날씬한 몸매. 추락하던 그녀의 짧은 인생에서 가장 길고 화려한 상승을 맘껏 누리고 있었던 거야.
그러나 그 행복이 언제라도 모래처럼 손아귀를 빠져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어. 휴가지에서 돌아온 후 M은 자주 배가 아프다고 했고 구토를 하기 시작했어. 얼굴도 좀 뜨는 것 같다고 하고. 일주일 정도 견디다 M은 동네 병원에 갔고, 추가 검진 의견을 받았지. 그리고 회사 근처 S종합병원에서 검진을 받은 지 보름 만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된 거야.
췌장암 말기. 남은 시간은 길면 6개월.
M은 당연히 발병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고, 재검진을 요구했어. 결과는 다르지 않았어. 곧바로 사표를 내고 항암 투병에 들어간 그녀는 3개월 정도 지나자 결국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어.
이제는 처음 만났을 때의 후덕함을 전혀 찾아볼 수 없게 된 M. 그녀는 병원에서 남은 시간을 나를 위해 할애하기로 결정했어. 변호사를 불러 자신의 남은 재산을 나에게 상속하겠다고 선언했고, 이를 위해 신탁을 진행한 거야. 그녀의 아파트와 남은 적금, 그리고 어머니로부터 상속받을 금액 중 그녀 몫을 모두 나에게 돌리기로 한 거지. 금액은 5억 원 정도.
이때 만난 게 H야. M이 나를 행복하게 해 줄 사람으로 H를 고른 거야. 내 의견은 묻지도 않고.
H는 잘 나가는 유튜버지. 날씬하고 예쁜 데다 무엇보다 내 마음을 꿰뚫고 있다는 게 마음에 들어. 하나를 말하면 열을 알아듣지. 그리고 내가 앞으로 할 일도 이미 다 계획해 놓고 있다는군. 지루해하지 않아도 될 만큼 적당한 일과를 준비해 놓았다는 거지. 틈틈이 여행도 갈 계획이고. H가 너무 매력적이어서 그녀를 만나자마자 M을 잊을 지경이었지.
M과의 이별은 가슴 아팠어. 그녀는 가족들보다도 나와의 이별을 힘들어했지. 그녀는 “너 때문에 행복이 뭔지 알게 됐어. 다음 생에서 꼭 다시 만나자”라고 나를 안았어. 그리고 의사들에게 이틀만 옆에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지.
이튿날 M은 갑자기 숨을 거뒀어. 그녀의 어머니가 식당 화재로 자리를 비웠을 때, 동생이 지방에서 채 올라오기도 전에 숨을 거뒀지. 심폐소생은 절대 안 하겠다는 서약 때문에 의료진도 손을 못썼어. 그녀는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순간, 고개를 돌려 그 크고 휑한 눈으로 날 보았어. 결국은 내가 M의 유일한 임종자였던 셈이지.
M의 장례식도 끝났고, 난 이제 호텔로 돌아가. M에겐 미안하긴 하지만 가슴이 벅차. 이제는 완전히 새로운 생활이야. 예쁘고 멋진 H와의 기대되는 미래가 기다리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