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 어른이 된 아이, 상담원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by 잎새

1. - 너무 일찍, 세상에 내던져졌다

나는 어릴 적부터 특별하지 않았다.
공부를 잘하지도, 눈에 띄는 재능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불우한 가정환경 속에서 나는 도서관이라는 공간에 몸을 숨겼고,
책만 읽으며 조용히 자랐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던 해, 복지관을 통해 생애 첫 컴퓨터가 생겼다.
그날부터 나는 현실보다 온라인에 더 많이 머물기 시작했다.
게임 속에서는 친구도 있었고, 내가 웃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현실의 나는, 여전히 조용하고 음침한 아이였다.

17살이 되던 해, 기술을 배우고 싶다는 마음에 미용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러나 반 분위기는 나와 너무 달랐고,
결국 어머니와 상의 끝에 자퇴를 결심했다.
그 해 겨울, 어머니는 새 가정을 꾸렸고
나는 처음으로 혼자 살기 시작했다.
냉장고도, 전기세도, 계절을 나는 방법조차 알지 못한 채.

2. - 생계를 위해 서 있었던 자리, 미용실

자퇴 후 나는 미용실에 취업했다.
월급은 70만 원. 작지만 간절한 돈이었다.
서서 일하는 시간은 하루 12시간이 넘었고, 손가락은 늘 갈라져 있었다.
그래도 ‘기술을 배우고 있다’는 생각에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러나 몸이 먼저 버티지 못했다.
하루하루 쌓이는 피로와 정신적 무기력감 속에서
나는 다른 삶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책상에 앉아 일하는 사람들, 겨울에 따뜻한 실내에서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
그런 삶을 나도 살 수 있을까?

작은 희망으로 학원을 다녔고,
자격증을 따서 새로운 직장을 찾아보려 했다.

3. - 상담원, 원하지 않았던 일의 시작

그러나 현실은 다시 나를 밀어붙였다.
생활비는 바닥이었고, 집세는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상담사라는 직업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하고 싶어서 한 일이 아니었다.
단지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에’
전화기를 들었고, 헤드셋을 썼고, 모니터 앞에 앉았다.

첫날 받은 고객의 말은
“왜 이렇게 늦게 받냐”였다.
내가 한 말보다, 내가 참고 견딘 시간들이 더 기억에 남는다.

욕설을 듣고, 감정을 삼키고,
정해진 멘트를 외우며 하루하루를 견뎠다.
퇴근 후 침대에 누우면 눈물이 났다.
아무도 나를 다독이지 않았고,
나조차도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4. - 그때부터, 나는 사라지고 있었다

돌이켜 보면 그 시절이 내 우울증의 시작이었을지도 모른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출근을 하고 싶지 않았고,
출근하는 날은 살아남는 것만이 목적이었다.
말 그대로 '버텼다'.

그 안에서 식이장애가 시작되었고,
구토와 폭식이 반복됐다.
술을 마셨고, 자살을 시도했고,
경찰이 네 번이나 집에 오기도 했다.

하지만 일을 멈출 수는 없었다.
결혼을 위해 모았던 돈은 이미 사라졌고,
-4,000만 원의 빚이 남았다.
남자친구와 식사를 하던 어느 날, 결혼 이야기가 나왔고
나는 그냥 모든 걸 털어놨다.

그는 충격을 받았지만
"치료부터 하자"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처음으로 일을 잠시 멈췄다.

지금, 나는 여전히 빚을 갚고 있다.

하루 4시간씩 모 회사 상담사로 재택 근무를 하며
조금씩 내 인생을 다시 수습하고 있다.
하지만 이젠 안다.
내가 왜 무너졌고, 무엇이 나를 무너뜨렸는지.

이 글은 단순한 직업 이야기가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감정을 꾹꾹 눌러가며 버텨온 한 사람이
결국엔 자기 삶을 마주하기 시작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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