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하고 걱정이 많은 아이

키우기는 어렵지만 명확한 해법이 있다

by wisdom

며칠 전 큰애가 밤새 열이 났다. 독감이 유행이라더니 꼼짝없이 독감에 걸린 것이 분명할 만큼 고열이었다.

날이 밝기만 기다리며 해열제로 밤을 지새고, 눈 뜨자마자 학교에 등교가 어렵다는 메세지를 보낸 뒤 소아과로 향했다.

평소에 불안감이 많고 걱정을 사서 하는 타입인 큰애는 불안해하며 물었다.


"병원에 왜 가는거야?"

"응, 밤새 열났잖아. 혹시 독감일지 몰라서 검사하러 가는거야."

"검사? 코 쑤시는거 하는거야??"

"으응... 해야할 것 같아."


아이는 코 검사라면 극혐을 하는데(어른도 마찬가지지만), 벌써부터 징징거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어쩔 도리가 있나. 진찰대에 앉아서 역시나 검사가 필요하다는 소견을 듣고, 면봉을 꺼내는 의사선생님을 보며 큰애는 짧게 괴성을 질렀으나 의외로 꾹 참고 버텨서 검사를 잘 마쳤다.


"역시나 독감이네요. 치료는 수액치료와 약을 먹는 법 두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그렇군요... 아이에게 어떤 방법이 좋을까요?"

"아무래도 수액치료가 효과가 빠르고 약을 며칠씩 먹어야 하는 부담도 없으니 수액으로 하시죠."

"네 알겠습니다."


이 말을 끝으로 간호사 선생님이 아이의 양쪽 손등을 주물주물 만져보며 혈관을 찾기 시작했다.

아이는 무슨 상황인지 모르는데 무슨 일인가 일어날 것 같자 잔뜩 겁을 먹기 시작했다.


"뭐하는건데요? 손은 왜 만지는거에요?

"응~ 주사 놓을 수 있는지 보는거야~"

"네? 주사요? 주사를 손등에 맞아요?"

"응~ 팔걷어보자."


손등 혈관이 마땅치 않았는지 이번에는 아이의 양쪽 팔 옷을 걷어올리며 팔뚝 쪽 혈관을 찾기 시작했다.


"이번엔 팔에 주사를 맞아요? 어디다 어떻게 맞는건데요??"

"왼쪽이 낫네."

"뭐가요? 주사는 어떻게 생겼는데요? 바늘이 커요?"

"자 움직이지 마."

"아악!!! 이거 더 작은바늘은 없어요?? 많이 아파요?? 저랑 끝말잇기 하시면 안돼요? 기차!! 아악!!!"


아이는 공포심을 어떻게든 이겨내고 싶었는지 갑자기 끝말잇기를 시작했고, 대답을 채 듣지도 못한 채 바늘 꽂는 작업은 마무리되었다.


"자, 다됐다. 이제 안아프지? 약을 넣어줄테니 저기 가서 눕자"

"왜 누워요? 일어나면 약이 안들어가요?"

"팔은 움직여도 돼."

"왼팔에 맞을건데 오른팔은 왜 걷은거에요?"


아이의 끝없는 질문을 뒤로 하고 간호사 선생님은 항생제 수액을 꽂고 나가셨다. 중간중간 확인하러 오실때마다 아이는 약이 들어가고 있는건지, 왜 눈에 안보이는건지, 지금 만지신건 뭔지(약 속도 조절하심), 언제 끝나는지 계속 질문공세였다. 드디어 수액이 다 들어가서 바늘을 뽑고 반창고를 붙이자, 이 반창고는 언제 떼면 되는지까지 야무지게 물어보고(나도 까먹고 못 물어본건데 기특하다) 집에 돌아왔다.


생각해보니 두어달 전 새벽에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해서 응급실에 갔을때 혈액검사를 위해 피를 뽑은 적이 있었는데, 그날은 울지도 않고 아주 용감하게 묵묵히 채혈을 했었다. 피가 눈에 보이니까 채혈이 더 큰 공포였을텐데 왜 그날은 아무렇지 않았고, 수액 맞는 오늘은 이렇게 요란했을까? 채혈을 하도 잘했어서 수액 쯤이야 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을 빗나갔다.


그러고보니, 채혈할때는 의사선생님이 아이와 눈을 마주치고 앉아서 차근차근 설명을 해줬었다. 그날도 아이는 겁을 잔뜩 먹었지만, 눈을 바라보며 아이가 이해하기 쉬운 표현으로 앞으로 네 팔에 무슨 일이 일어날 지 설명을 해줬던거다.


"너가 배가 아파서 왔지? 그래서 배 속에 어떤 세균이 널 아프게 하는건지 확인하기 위해 피를 뽑을거야. 이 작은 통 3개 정도 담을 수 있을만큼 뽑을거고, 이걸 검사한 뒤에 어떤 세균이 있는지 알려줄게. 바늘은 봐봐, 아주 작지? 처음에는 조금 따끔하겠지만 참을 만 할거야. 여기 앉아서 피를 뽑을거고, 이건 소독하는 솜이야. 시원하지? 자 다했다. 여기서 엄마랑 조금만 기다리면 선생님이 검사하고 와서 결과를 알려줄게."


그 날 선생님은 아이가 왜 검사를 해야하는지, 그 검사는 어떤 과정을 거치는건지, 검사 이후에는 어떻게 되는건지, 어떤 의문도 생기지 않을만큼 뚜렷하고 자세하게 설명을 해줬었다. 설명을 먼저 들은 아이는 자기 몸에 어떤 일이 일어날 지 걱정하지 않을 수 있었고, 설명한 대로 진행되는 것을 지켜볼 뿐이었다.


바쁜 의료현장에서 아이의 시선에 맞춰 자세하게 설명하는게 쉬운일인가. 불필요하다고 느껴질만큼 성가신 일이지만, 그래도 그런 배려 덕분에 아이는 그날 안정감을 얻고 앞으로 인생에서 채혈만큼은 더이상 공포스럽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지나고 보니 생각도 못한 굉장한 배려를 받았다는 생각이 뒤늦게 든다. 물론 의료진이 못다한 설명은 내가 옆에서 자세히 해주는 편이지만, 의료집행자에게 직접 듣는게 더 아이에게 신뢰감이 갔을 테다. 당연히 모든 병원이 충분한 설명을 해주니 더 바랄게 없지만, 아이 입장에서까지 상세하게 배려해주는 의료진을 보면 새삼 감동스러울만큼 감사하다.


불안감이 높은 아이에게 먼저 자세히 설명해주는게 얼마나 중요한지도 깨달았다. 그동안 너무 귀찮아서 설명을 대충 하거나 끝없는 질문을 무시한 적도 많았는데, 아이가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질문하고 확인하려하는걸 왜 이해해주지 못했나 반성하게 된다. 앞으로는 아이의 걱정과 의구심을 홈런으로 날려버리는 좋은 엄마가 되어주기로 다짐해본다.(과연 며칠이나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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