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에서 길 찾기
내가 공부하고 준비하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이
이후에 뒤돌아 봤을 때 내 삶의 중요한 퍼즐 조각이 될 수 있을까?
요즘에도 전과가 있는지 모르겠다.
아마 없어졌겠지?
전과보다 더 집하고, 텍스트 이상의 콘텐츠뿐 아니라
무한한 확장성을 가진 오픈월드가 어린 친구들의 손에 쥐어져 있으니 말이다.
어렸을 적 집에서 숙제로 산수 문제 등을 풀다가
이게 맞는지 내가 풀어나가는 이 풀이 과정이 정답인지 아닌지 답답할 때
대외적으로는 금지되어 있지만 전과를 참고하곤 했다.
전과는 그때 당시 두 가지가 있었는데 동아전과와 표준 전과 두 가지가 있었다.
그때 당시엔 별로 공부에 큰 관심이 없었고 뭐가 뭔지도 잘 몰랐던 시절이었기에
그저 선생님께 숙제를 안 해가서 맴매를 맞지 않기 위해
꾸역꾸역 숙제를 해갔던... 아니, 실제로는 그냥 실행력이 떨어져..
맞는 시절이 더 많았던 그런 어린 시절이 기억난다.
선생님의 수업 시간 중 한참 이야기하시는 것들 중에
단어 형태라든지 생각이 나 개념이 엉뚱하게 내 머릿속에 딱 걸리면,
거기서부터 내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 나가서
처음엔 수학 시간에서 모든 학생들이 시작했으나
나 혼자 과학 시간의 상상에 빠진 채로 끝이 난다든지
미술 시간 혹은 과학탐구영역 등에서 끝날 때가 많았던 것 같다.
그때는 생각이란 것을 잘 안 하던 시기라 도덕이나 윤리 쪽에서 끝난 적은 없었던 것 같고
그저 과거의 일을 복기하거나 사건을 재구성해 보는 등
소위 말해 딴짓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더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게 전과는 정말 손쉽고 달콤한 해결 방안이었다.
체리필터의 가사처럼 정말 " 딸기향 해열제 같은 환상적인 해결책"이라고나 할까.
문제의 답을 찾는 과정에서 아무래도
내가 못된 걸 배운 것 같다고 생각했다.
문제의 정답이 어딘가에, 마치 전과처럼 "내가 딱 원하는 방식"으로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고,
그 답도 단답형 혹은 다섯 가지 선택지 중 정확하게 들어맞는 숫자의 형태로
정형화된 채로 모든 문제의 해답이 존재할 것이라는 못된 상상을 심어줬으니 말이다.
생각해 보면 이게 다 전과를 봐서 그래.
부모님께서 함부로 전과 보지 말라고 하신 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거야.
현재 내 삶에는 나침반 정도는 있어서 내가 걸어가야 할 방향성이
어느 쪽인지 정도는 지금은 확실하게 심어져 있다.
하지만 가끔 그럴 때가 있지 않은가.
현재 내 삶의 진행 상황은 약 30% 정도 진행을 했다는 말을 듣고 싶다든지,
연극이나 뮤지컬 등에 막이 있는 것처럼
이제 1막 2장이 끝났으니
지금 나오는 신은 정말 중요한 단서가 되는 장면이구나,
지금 맞닥뜨리는 이 퍼즐을 놓쳐선 안됩니다, 라는 말을 듣는다든지 그런 것 말이다.
연극이나, 게임 등에서는 그러한 엔딩 등을 예측할 수 있고
그 예측은 어느 정도는 적중했었기에
인생에서도 그런 치트키를 먼저 쓰길 바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시작되는 시점인 1부터 100까지의 끝이 정해져 있다면 어떨까?
현재 내가 지나고 있는 지점이
어딘지 안다면 좋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음... 의문점이 들긴 하지만
그 끝 지점을 안다는 것은 과연 행복할까?
인생을 더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을까?
최선을 다할 수 있을까?
알고 싶지 않기도 하면서 동시에 정반대 마음이 들어
상상을 해 보다가 헛웃음만 흐흐흐 흘러나와 버리고,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기로 한다.
온라인 게임 육성 시뮬레이션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온라인 게임을 할 때도 공략집을 참고해서 플레이를 하는 것이
마치 정석 코스처럼 되어 버렸고
내 마음대로 캐릭터를 키우다 보면
이도 저도 아닌 잡캐가 되어버리는 끔찍한 결과로 받아들여지는 기억을 발판삼아
내 인생에서도 정답, 정석 코스를 답습하려고 하는 것 같다.
우리는 그렇게, 현실의 삶에서도
지금 내게 주어진 이 퀘스트 혹은 퍼즐 조각이
어디에 쓰는 조각인지, 누구에게 맞는 조각인지
이 퍼즐 조각을 주워 담아야 하는지
아니면 인벤토리에서 제거를 해야 할지 고민한다.
오픈월드형 성장 시뮬레이션에서 각자의 방법으로
그들의 답을 찾아야 하는데, 모두 한가지 공략법만 파고 드는 것 같다.
"레벨 35가 되기 전에 무조건 전직을 해야 돼."
"안 그러면 부캐를 키울 때,
페이즈 2로 넘어가야 하는데 너무 늦어져"
라든지,
"네가 힘캐로 갈 거라면 다른 것들은 다 포기하고
스탯에서는 다른 능력치는 다 포기하고 힘(STR)만 찍어야 한다"
든지 ... 뭐 이런 인생 공략집처럼 살고 있고, 그런 피드백을 받기 원하는 것 같다.
경영학적으로 한계 효용 법칙에서 말하는 "옵티멈 라인"으로 사는 것이
행복의 Best practice이며 진리로 믿고 살아가는 것 같다.
보통 그런 최대 한계의 효용성이 보장되는 형태의 옵티멈 라인은
이차함수로 표현되는데 이 그래프의 축을 바꿔서,
x축은 시간이 주가 되고,
y 축은 여러 가지 인생의 가치에 따른 여러 변수들이 있겠지만
보통은 돈이 주요 지표로써 역할을 했던 것 같기에 돈으로 넣고 보면 다음과 같다.
경영, 경제학적으로 분명한
옵티멈 라인의 이차함수를 기준점으로
인생들의 수많은 좌표가 근처에 점으로 찍히고 줄을 세우는데,
소위 말하는 모범적인 정답을 따르는 인생라인은
옵티멈 라인에서 너무 벗어나
너무 가파른 기울기로 빨라서는 안 되고
너무 뒤처져 있어도 안 된다는 눈높이가 생기고
가급적 그 라인에 수렴하는 삶을 살아야 행복할 것이다.
라는 믿음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저 그래프에 반대하고 싶다.
그런 효율적인 삶을 추구하면 아무리 생각해도
여기가 어디인지
아무도 모르는 인생의 사막에서
놓칠게 너무 많지 않을까?
저렇게 빨리 효율적으로 곡선을 맞추기 위해 달려나가다간,
사막 선인장의 유려한 곡선과 가시를 관찰하고,
어쩌다 가시가 고슴도치처럼 달린 모난 녀석이 되었는지 인터뷰를 한다던가,
혹은 도마뱀의 귀여운 발가락 아래 손등을 뒤집어 보면
고양이처럼 부드러운 젤리가 있을지
아니면 거미처럼, 스파이더맨처럼
뾰족뾰족한 돌기가 돋아 있을지란 호기심 확인이나,
사막의 모래를 조금 퍼내
노곤노곤한 몸을 파묻고
잠시 모래찜질을 한다던가 하는 그런 생각들은 못했을 것이고,
옛날 같으면 효율성에 어긋나
폐기 처분해야 할 아이디어였겠지.
우린 지금 어디쯤에 있는 걸까?
정답은 들을 수 없어도
자문한다는 것,
스스로 물음을 던진다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해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