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2월 1일 아침 다섯 시 삼십 분. 배달부는 아직 잉크가 채 마르지 않은 신문 50부를 세어 자전거 바구니에 차곡차곡 실었다.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신문은 거기에 실린 기사만큼이나 따끈따끈했다. 옷깃을 단단히 여미고 자전거의 페달을 밟자 묵묵하게 자신을 짓누르는 겨울 새벽의 차가운 공기가 그대로 얼굴에 맞부딪혔다.
야트막한 언덕 위로 올망졸망 붙어 늘어선 양옥집 실 골목 사이를 이리저리 빠져나가며 배달부가 능숙하게 대문 안으로 신문을 던져 넣었다. 찬 공기에도 불구하고 슬슬 몸에 땀이 날 무렵이 되자 이미 자전거 바구니에는 달랑 한 부의 신문만이 남아 있었다. 마지막 신문마저 페인트칠이 군데군데 벗겨진 초록색 철문 사이로 솜씨 좋게 던져 넣은 배달부는 휘파람을 불며 저 언덕 아래로 사라져 버렸다.
한 시간쯤 뒤, 완전히 날이 밝자 초록색 철문 집의 주인이 하품을 하면서 나와 대문 앞에 놓인 신문을 집어 들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 안에서는 아내가 아침 준비하랴, 늦잠을 자는 아이들을 깨우랴 난리 법석을 떠는 중이었다.
"버스 기사들이 또 파업을 시작했대."
그는 신문 1면에 대문짝만 하게 찍힌 헤드라인을 보며 이맛살을 찌푸렸다.
"보나 마나 지하철이 회사원들로 북새통일 거야. 회사까지 어떻게 가야 할지 걱정이군."
"어쩌겠어요. 지각 면하려면 택시 타셔야지."
아내가 그의 앞에 수저를 놓으며 말했다. 그가 보던 신문을 덮어놓고 식사를 하기 시작하자, 아내가 밥상 옆에 놓인 신문을 끌어당겨 '오늘의 날씨'를 유심히 읽더니 창문을 열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오늘 오후에 비가 온다네. 우산 가져가세요."
남편이 밥상을 물리고 일어서자 아내는 신문지 한 장을 빼내어 밥상을 잘 덮고 구석으로 밀어 놓은 채 그를 따라 일어서며 당부했다. 그는 아내의 배웅을 받으며 큰길로 나가 곧바로 택시 한 대를 잡아탔다, 회사 이름을 기사에게 말하고 난 후 그는 가지고 나온 신문을 다시 펼쳐 들었다.
"날씨가 많이 추워졌지요? 신문에 뭐 좋은 기사라도 났나요?"
묵묵히 운전만 하고 있던 기사가 어색함을 깨 보려는 듯 말을 꺼내자 그도 고개를 들었다.
"글쎄요... 뭐 언젠 딱히 좋은 기사가 있었나요. 어디 보자... 북한 핵 문제 때문에 다시 미 차관보랑 회담을 가진다는군요. 이런, 집값이 계속 올라서 서민들이 아우성이고."
"그게 참 문젭니다. 세상에 겨우 좀 벌어서 모아 놓아 봤자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고 또 뛰고.."
"그러게 말입니다. 참, 버스 노조가 또 파업했답니다. 서민들의 다리나 다름없는 버스가 파업을 하면, 우리는 어쩌라는 건지."
"어쩌겠습니까. 서로 어려운 이 판국에 다 먹고살기 힘드니까 그리 되는 거지."
그 뒤로 정치인사들에 대한 이야기부터 소소한 가족사까지 한참을 한숨과 함께 쏟아내는 사이, 어느새 택시는 남자가 말한 장소에 도착했다. 남자가 요금을 내고 수고하시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진 후 몇 시간 동안 택시에는 승객들이 줄을 이었다. 버스 노조의 파업으로 매일 버스로 출근을 하던 사람들이 버스를 탈 수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남은 먹고살기 힘들어지니까 나는 편해지는 세상이라니, 기사는 혀를 끌끌 차며 점심을 먹으러 식당으로 향하던 중에 승객이 뒷좌석에 놓고 간 신문을 발견하고는 주워 들었다.
"비가 오려나."
신문을 뒤적이며 식사를 하던 기사는 잔뜩 찌푸린 하늘을 보고 신문의 날씨 면을 살폈다. '오후에 흐리고 비가 옴'. 비 오는 날은 택시기사들에게는 대목이나 다름이 없었다. 또 한창 바빠지겠다는 생각을 하며 기사는 남은 찌개 국물을 바닥까지 후루룩 들이켜고 몸을 일으켰다.
하늘이 점차 어두워지더니 이내 후드득 굵은 빗방울이 듣기 시작했다. 식사를 하고 식당 바깥으로 막 나가려던 청년 하나가 비가 오는 것을 보고 우뚝 멈춰 섰다. 그의 손에는 우산이 들려 있지 않았던 것이다. 망설이던 그는 아까 옆 테이블에 앉아서 신문을 읽던 택시 기사를 떠올리고는 다시 안으로 들어가 아직 테이블에 그대로 얹혀 있는 신문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머리를 덮은 채 거리를 내달리기 시작했다.
기차 시간에 맞추어 역에 도착한 청년은 역 입구의 의자에 젖은 신문지를 올려놓고 옷에 묻은 빗물을 털어 내면서 플랫폼으로 들어갔다. 뒤따라 들어온 사람들도 모두 청년처럼 아무렇게나 신문을 던져놓고 플랫폼으로 들어가 버리자, 사람들이 바삐 오가는 기차역 한 켠의 의자에는 비에 흠뻑 젖은 신문지들만이 주인을 잃고 덩그러니 남겨졌다.
비가 그치고 나자 기차역 콘크리트 건물 전체에 눅눅하게 깔려 있던 습기가 어느 정도 가시면서 이내 어둠이 깔리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떼 지어 역 광장을 돌아다니던 비둘기 몇 마리가 날갯죽지에 잔뜩 움츠린 목을 파묻고 역 안으로 들어와 종종걸음을 치며 휑한 역 안을 먹이를 찾아 돌아다녔다. 열 한시 차에 남은 사람들 중 대부분이 오르고 나자, 역 안에는 고작 몇 명의 사람들이 막차를 기다리며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막차마저 떠나고, 쌀쌀한 공기로 축 가라앉은 역의 문이 열리면서, 차가운 바람과 함께 간간이 소주 한 병씩을 손에 들고 허름한 옷차림을 한 사람들이 하나둘씩 들어왔다. 손에 든 것이라곤 빈 소주병 하나뿐임에도 불구하고 누구보다도 무거운 발걸음을 질질 끌며 들어온 그들은 빗물에 푹 젖었다가 말라 우글우글해져 있던 신문지들을 집어 들었다. 바닥에 신문지 몇 장을 깔고, 그 위에 누운 뒤 다시 몇 장을 집어 몸 위에 덮은 채 잔뜩 웅크리고는 잠을 청했다. 그들의 몸을 덮은 신문지 위에는 'ᄋᄋ회사 직원 대거 감축' '영하 날씨에 밖에서 자던 노숙자 동사'등의 활자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추위에 점점 움츠러드는 그들의 몸짓에 얇은 종잇장과 활자들이 바스락 소리를 내며 구겨졌다.
이른 새벽, 어둠이 다 가시기도 전에 그들은 부스스한 모습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들어올 때와 같은 모습으로, 한 손에 소주병을 들고 발을 질질 끌며 천천히 바깥으로 걸어 나가 이리저리 흩어져 자취를 감추었다. 구겨지고 찢어지고 얼룩진 신문지들만이 그들이 떠난 자리에 또다시 초라하게 남겨졌다.
잠시 후, 미화원이 들어와 바람에 밀려 바닥에 뒹구는 신문지들을 주워 담기 시작했다. 추운 날씨에 얼굴이 딱딱하게 굳은 사람들이 첫차를 타기 위해 들어오자 미화원의 손길은 더욱 빨라졌다. 신문지들은 폐지로 분류되어 쓰레기통에 넣어졌고, 이내 덜덜거리며 달려온 쓰레기차 속으로 떨어졌다.
제 생명이 끝난 신문지들을 실은 쓰레기차는 이제 환하게 밝아오는 거리를 달렸다. 버스가 한 대도 지나가지 않아 평소보다 휑한 거리 위로 약간 어두운 비둘기색 하늘이 깔려 있었다. 쓰레기차는 버스 대신 택시를 잡으려고 추위에 발을 동동 구르며 찻길로 손을 뻗은 채 늘어선 사람들과 회사원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을 지하철역을 지나쳤다. 도토리 키 재기 모양으로 작은 양옥집들이 올망졸망 붙어선 작고 나지막한 동네, 그리고 그 동네 언덕길을 오르는 신문 배달부의 낡은 자전거도 지나쳤다. 매일 아침, 같은 시간 그 언덕을 오르는 배달부의 자전거 바구니에는 2006년 12월 2일 자 신문이 들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