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다시 보게 되었다

by 반짝반짝수정

생일이라고 휴가를 냈다.

직장에서 공식적으로 생일 휴가로 주어지긴 했지만, 당일에 쉬기란 쉽지 않다.

나를 대신해 업무를 봐 줄 사람도 필요하고, 무엇보다 사무실 분위기가 쉬어도 되는 상황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올해는 그게 가능했다.


남편과 서산으로 향했다. 수선화 축제를 한다는 곳에 꼭 가야 한다는 생일자의 말을 남편은 끝내 뿌리치지 못했다. 남편은 어느 순간 ‘수선화’라는 단어에 반응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가는 동안 길가에 보이는 작고 큰 수선화를 볼 때마다 몇 번이나 “저기 봐, 수선화” 하고 말했는지 모른다. 생일자가 보고 싶다던 수선화가 나타날 때마다 남편은 빠짐없이 알려주었다.


가는 내내 남편이 알려주는 수선화 위치를 확인하며, 다음부터는 말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또 한편으로는, 수선화 축제에 가고 싶어 하는 나를 위해 남편이 나름대로 애쓰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 모든 말들이 남편의 서툰 사랑 표현처럼 느껴졌다.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창밖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봄이 시작되는 자연의 모습 앞에서, 어느새 나의 시선도 달라지고 있었다. 4월이 되니 봄을 알리는 꽃들이 여기저기 눈에 들어왔다. 무엇보다 옅은 분홍빛의 벚꽃나무들이 얼마나 많은지, 나도 모르게 감탄이 계속 흘러나왔다.


'정말 예쁘다. 동화 속 세상 같아. 이제 보니 봄이 참 예쁘네.

그러고 보니 봄에 태어난 나는 꽃들 속에서 태어난 거네.

나, 봄에 태어나서 참 좋은거 같아"


창밖을 보며 혼자 중얼거렸더니 남편이 대뜸 말했다.

“강원도에서 태어났으니 이런 건 별로 못 봤을 거다. 여기나 와서 보는 거야.”


분위기를 바꿔버리는 말이었지만, 남편은 그저 보이는 대로 말하는 사람이라 그러려니 했다. 대신 나는 보이는 대로 느끼고 감동하기로 했다. 오늘은 누가 뭐라고 해도, 탕탕탕— 나의 긍정 방패가 다 막아내는 중이다.


축제장에 도착해 흐트러지게 피어 있는 꽃들 사이를 걸었다. 그 사이에서 휴대폰으로 전해지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축하를 받고 있자니, 오십이 가까운 나이가 되어서야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아이들 키우며 살아오느라 봄은 늘 바쁜 계절로만 지나갔다. 꽃이 피는지도 모른 채 계절을 보내던 날들이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때의 나는 계절보다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이 더 중요했던 시간이었다.


그런데 올해는, 생일을 맞아 봄 한가운데에 서서 꽃을 바라보고, 하늘을 올려다보고,

내가 태어난 계절을 천천히 바라보는 시간을 가졌다.

나, 참 좋은 날에 태어났구나.

이렇게 아름다운 계절에 태어나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축하를 받으며 또 한 해를 시작한다.


그리고 이제야 조금 알 것도 같다.

이렇게 계절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이 나이 들어간다는 것이고, 조금씩 익어간다는 것이라는 걸.

올해 생일에야 비로소, 봄을 다시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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