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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정미 Nov 11. 2021

내가 우울증에 걸리지 않은 이유

나는 기질적으로 불안이 매우 높은 사람이다. 지금 돌이켜 보면 어린 시절은 선태적 함구증이 있을 정도로 불안한 아이였다. 다만 그 당시 한국 교실에선 나같이 말없이 조용한 아이를 크게 신경 쓰지 않아서 모르고 넘어갔을 뿐이다.  지금도 낯선 환경을 가고 낯선 이를 만나는 것을 즐겨하지 않는다. 거기다 고소공포증과 물 공포증도 있다.


사실  나는 비행기를 탈 때마다 꼭 이 비행기가 떨어질 것 같은 느낌이 있고 놀이기구를 타거나 케이블카를 타면 꼭 안전줄이 끊어질 것 같은 불안감이 있다. 한마디로 나는 나에게 모든 나쁜 사건사고가 일어날 것 같은 범불안이 있는 사람이다. 거기다 어린 시절 부모와 안정애착을 맺지 못해서 세상과 타인에 대한 믿음이나 신뢰도 없던 사람이었다.한마디도 나는 불안장애와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매우 높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아직까지 일상생활에 큰 문제 없이 잘 살고 있다.


 요즘은 정신건강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면서 이런 불안장애와 우울증을 겪은 환자들을 주변에서 흔히 볼수 있다. 그리고 마치 무슨 큰일로 그런 몹쓸병에 걸린듯이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정신질환의 이유가 단순히 집안의 큰 문제나 인생의 한 번의 큰 스트레스나 한 번의 트라우마로 발병하는 경우는 드물다. 환경에서 일어난 사건, 사고자체보다는 그 사건 사고를 제대로 다루지 못해서 일어나는 경우가 훨씬 많다. 한마디로 고난과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능력에 따라서 사람들이 무너지기도 하고 이겨내기도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사람들의 경우 삶에서 큰 일이나 큰 고난이 없음에도 이유 없이 우울하고 불안하다고 토로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참 많다. 이런 경우에도 일상에서 일어나는 자잘한 자극들과 스트레스를 잘 해결하고 해소하며 살아온 것이 아니라 억압하고 참고만 살아온 시간들이 길어지면서 한계가 찾아온 경우가 참 많았다. 그리고 그런 그들 모두 스스로를 나약하다 탓하고 자책하기가 쉽다.


반대로 나처럼 취약한 기질을 가진 사람들도 후천적으로 스트레스를 잘 관리 한다면 심각한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없이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능력이라 함은 나의 마음을 회복시키는 능력이고 감정을 다루는 능력에 달려 있다. 이 능력이 높으면 높을수록 고난과 시련에 무너지지 않는다. 한마디로 회복탄력성이 높은 것이다.



회복탄력성이란 어떤 고난과 시련에 다시 일어나는 힘을 말한다. 같은 시련과 어려움에도 어떤 사람은 한순간에 무너지고 어떤 사람은 다시 일어난다. 그것은 고난과 시련의 크기보다 개인이 가지고 있는 회복능력에 달려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이 회복 탄력성은 후천적으로 노력하면 얼마든지 좋아질 수 있다.  


1. 자신만의 소통의 창구가 있어야 한다. 한마디로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고 아껴주고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 단 한 사람이라도 있어야 한다. 자신이 온전히 의지 할 수 있고 믿을 수 있고 진심으로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사람"만 있어도 사람은 잘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이 심리학계 정설이다. 어떤 면에서 100명의 친구를 만들려고 애쓰는 것보다,  내가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이해해주고 사랑해 주는 그 한 사람과  진실된 소통을 만들기 위해 애를 쓰고 공을 들이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주변에 사람은 많아도 정작 스스로는 늘 외롭다고 한다. 그러나 자신과 정말 소통이 되는  "그 한 사람"만 있으면 사실 인간은 외롭지 않다. 따라서 인간관계는 양보다는 질이 훨씬 중요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는 친구가 많이 없기로 소문난 사람이다. 하지만 나에겐 그 한 사람이 있다. 바로 남편이다. 남편이 나에겐  최고의 친구이자 치료사이고 육아 파트너이다. 모든 것을 그와 공유할 수 있고 나를 세상에서 제일 잘 아는 사람은 남편이다. 20년 가까이 살았지만 여전히 함께 있으면 가장 재미있는 사람이다.  남편과 나는 서로가 이런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오랜 시간 부단히 노력했다.


이런 깊은 소통의 관계는 단순히 한 사람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하다. 서로에 대한 신뢰와 이해가 단단히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서로가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 한다.  주변의 다양한 친구와 두루두루 지내는 것도 필요하지만 인생에서 나를 유일하게 이해해 줄 그 한 사람을 만드는 것은 너무 중요한 일이다. 나에겐 그 한 사람이 있었기에 미국에 홀로 살아도 외로움을 못 느끼고 살았던 것 같다.


2. 자신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야 한다. 우울증이나 불안장애로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이제부터라도 좋아하는 일을 하세요. 하고 싶은 일을 하세요."라고 하면 "내가 뭘 좋아하고 하고 싶어 하는지 모르겠어요."라고 답하는 사람이 많았다. 한마디로 자신에 대해 너무 무지한 채로 살아온 사람들이다. 그냥 부모가 하라는 데로 학교가 하라는 데로 직장에서 하라는 데로  살아온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사회적 위치는 좋고 번듯한 직장을 가지고 있음에도 왠지 모를 공허함과 우울감에 고통스러워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 대부분이 "착한 사람"들이 많았다. 남들을 기쁘게 해주는 것으로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았던 사람들이 보통 타인에 의한 삶을 살게 된다.


그러나 인간에겐 자율성과 주도성을 갈구 하는 본능이 있다. 그 자율성과 주도성이 자꾸 묵살되기 시작하면 인간은 절대로 행복해질 수없다. 그래서 어린 시절 그 "착한 아이들"이 몇십 년이 지난 후에 대부분 "우울한 성인이나 화난 성인"이 된다. 따라서 자신의 삶에 대한 주도성과 자율성을 잃지 않으려면 자신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가 반드시 필요하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떤 장점과 약점이 있고 어떤 가치관과 철학을 가진 사람인지에 대한 데이터가 스스로에게 있어야 한다. 그래야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포기할 것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다행히 오래전에 "착한 사람" 이 되는 것을 포기했다. 그래서 일찌감치 착한 딸, 착한 며느리, 착한 엄마 등등을 포기하고 살았다. 대신 나는 나답게 살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탐색을 여러 각도로 많이 했다. 내가 언제 즐거운지, 언제 행복한지 , 언제 화나는고 언제 불편한지 등등에 대한 나의 데이터가 많이 쌓이면 쌓일수록 나는 더 나답게 살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나에 대한 정보가 많을수록 내가 힘들고 넘어질 때 스스로 어떻게 해야 회복하는지에 대한 답도 찾을 수 있기 때문이였다.
덕분에 나는 불안이 높은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도적으로 살아왔다. 그것이 때로는 힘들고 어려울 때도 있었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고 그것을 책임지는 삶을 살았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늘 나를 알려고 노력하고 이해하려고 했다. 그랬기 때문에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스스로 회복하는 능력도 키울 수 있었다.


3. 일상에서 유머와 웃음이 있어야 한다. 스트레스는 우리의 마음을 얼어붙고 경직되게 만든다. 그리고 이런 경직된 마음을 풀어주는 방법으로 가장 좋은 것이 유머와 웃음이다. 유머와 웃음은 심각한 일을 덜 심각하게 만들어주고  무거운 일을 가볍게 만들어 주는 놀라운 힘이 있다. 한마디로 긍정성을 높여주는 것이다.  이 긍정성이 높으면 마음에 여유가 생겨서 스트레스에도 강한 사람이 된다.


그러나 우리는 사실 웃을 일 없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주변에 들리는 뉴스나 상황은 전부다 나빠보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미 많은 가정들에서 웃음소리가 사라졌다. 그러나 이 웃음소리를 회복해야 한다. 그것이 어쩌면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갈 때  이겨낼 힘이 되기 때문이다. 함께 웃을 일을 만들고 재미있는 사람들과 연결되기를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는 남편과 살면서 유머와 웃음의 힘을 너무 많이 경험했다. 가끔은 내 마음을 짓누르고 숨 막힐 것 같았던 상황도 그의 유머에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을 많이 느꼈다.  그래서 때론 내가 원하지 않던 상황이 닥치더라도 쓸데없이 진지하거나 심각하지 않게 생각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아마 남편이 없었다면 나의 걱정과 불안의 감정이 나를 함몰해 버렸을지도 모른다. 그의 유머와 웃음은 그렇게 되지 않도록 나를 지켜주었다.
 


사실 이 외에도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충분한 수면과 운동 같은 것도 스트레스 조절에 효과적이다. 우울증이나 불안장애나 공황장애가 생겼다는 것은  어쩌면 오랫동안 자신을 방치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자신에게 일어나는 내적,외적 스트레스를 어떻게 다루고 어떻게 회복시켜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것이 너무 오래 쌓이다 보니 마음이 무너지는 것이다. 그래서 그전에 미리 자신을 돌보는 연습과 훈련이 필요하다.  나는 나를 돌보는 능력이 나를 지금 건강하게 지켜준 힘이 되었다. 신체의 건강만 운동하고 좋은 영양제를 평소에 챙겨먹으며 돌봐야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마음도 늘 미리 살피고 돌보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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