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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한 사랑인지 가스라이팅인지 어떻게 구별할까?

by 원정미

요즘 자주 언급되는 가스라이팅(타인을 나의 이익을 위해 심리적으로 교묘하게 통제하고 조종하는 행위)은 사랑을 닮아있다.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나에게 조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며 나를 무척 챙긴다. 그래서 그런 상대의 노력과 에너지가 마치 사랑이라고 착각할 때가 많다. 하지만 가스라이팅은 겉으로는 관심과 애정 같아 보이지만 결론은 나를 조종해서 자신이 원하는 데로 이용하려는 목적이다. 그 사람이 친구이든 부모이든 형제이든 마찬가지이다.


그럼 정말 인간관계에서의 사랑과 가스 라이팅은 어떻게 구별해야 할까?


1. 성장 vs 의존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정말 사랑하는 사람은 나의 성장을 돕는다. 그래서 내가 성장하고 자랄 수 있도록 격려하고 기다려준다. 때로는 실패를 지켜봐 주기도 하고 내게 주어진 좋은 기회를 막지 않는다. 그리고 때로는 내가 퇴보하거나 망가질 때 내가 회복하도록 돕는다. 그러나 가스라이팅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에게만 전적으로 의존하게 만든다. 내가 성장하는 것보다 자신에게 의존하고 기대도록 만든다. 그래서 다른 사회적/인간적 연결이나 기회를 박탈하게 한다. 그래서 세상에서 외톨이가 되게 하고 자신만 바라보는 바보로 만든다. 알코올 중독자에게 술을 제공하고 노름꾼에게 돈을 주는 것이 사랑이 아니듯이 아무리 그/그녀가 나를 위한다고 해도 나를 고립시키고 퇴보하게 하는 관계는 사랑일 수 없다. 결혼을 했음에도 자녀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는 부모나, 연인과 배우자의 모든 사회생활이나 커리어를 막고 자신의 인형노릇이나 흑기사 노릇을 해주길 바라는 관계는 절대로 사랑이 아니다.



2. 관심 vs 통제/집착

가스 라이팅을 하는 사람들도 나에게 관심을 보인다. 어쩌면 세상에서 나를 제일 잘 알고 나에게 제일 관심이 많은 것처럼 행동한다. 그러나 그 관심과 애정표현이 통제로 이어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연인 사이에서 상대방 연인의 옷차림, 헤어스타일까지 일일이 간섭하며 통제하고 싶은 것은 애인을 데리고 인형놀이를 하고 싶은 것이지 사랑이 아니다. 부모들 사이에서도 자녀를 위한답시고 자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간섭하고 통제하는 것은 사실 사랑이 아니다. 그냥 자신의 욕심을 채우고 싶은 것이다. 자녀를 자신의 자랑거리로 만들고 싶은 것이다. 사랑의 기본 속성은 존중이다. 자신이 보기에 아무리 이 방법이 더 좋아 보여도 상대가 싫다면 그것은 받아들이는 것이 사랑이다. 상대방에게 제안할 수는 있지만 상대가 거절한다면 그 의견을 받아들이고 포기하는 것이 사랑이다. 이미 내가 존중받고 있지 못하다는 느낌이 들면 이미 사랑이 아닐 수도 있다. 그 상대가 누구이든지 간에.


3. 무조건적 사랑 vs 조건적 사랑

"네가 000 하면 나도 네 부탁 들어줄게, 000 해줘야 나를 사랑하는 거야, 000 하지 않으면 우리는 끝이야!"라는 자신의 조건으로 나에게 관심과 애정을 베풀어주거나 무언가를 요구하는 관계는 가스라이팅에 가깝다. 내가 너를 이만큼 생각하고 아껴주니 너도 나에게 이만큼 사랑하고 헌신하기를 강요한다면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하는 관계에선 강요는 있을 수 없다. 진짜 사랑은 베풀어준 것을 기억하지 않는다. 정말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는 자녀를 애지중지 키운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 이미 함께한 그 시간만으로 보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것이 원래 사랑의 힘이다. 따라서 누군가 나에게 이런 조건적인 사랑으로 다가온다면 조심해야 한다.


4. 평안 vs 불안

가장 확실한 것은 어쩌면 자신의 솔직한 마음이다. 정말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과는 함께 있으면 마음이 무척 편안해진다. 내가 나답게 행동하고 말해도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줄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스라이팅을 당하는 관계는 그렇지 못하다. 그 사람이 원하는 데로 하지 못할까 불안하고 그 사람의 기준을 맞추기 위해 과도한 에너지를 써야 한다. 이런 관계는 때때로 함께 있을 때 재미있고 행복할지 몰라도 내면 깊은 곳에선 불안과 긴장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런 긴장과 불안을 오래 지속하는 것은 여러모로 나를 병들게 한다.


가스라이팅은 가까운 관계에게 자주 일어난다. 그 만큼 나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약점과 단점까지도. 그래서 조종하고 통제하기가 수월하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를 너무 잘 알고 가까운 사이이기 때문에 그 말을 쉽게 믿어버리게 된다. 어쩌면 우리는 건강한 관계를 위해선 정말 사랑인 것과 사랑이 아닌 것을 구분해야 한다. 나를 지키기 위해선 영화 곡성의 유명한 대사처럼 현혹되지 않는 것이 너무 중요하다. 사랑이 아닌 집착, 통제, 조종의 관계는 되도록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그 사람이 누구라 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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