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대화는 그냥 단순이 정보를 공유하거나 사건을 전달하는 이야기일 때가 많다. 그러나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소통은 감정을 나누는 것이다. 인간관계를 하면서 많이 느낀 안타까운 점은 즐거운 일과 자랑할 만한 일들은 서로 나누길 좋아하면서, 슬픈 일과 힘든 일들은 그러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어려움을 털어놓는 것도 힘들고 또 누군가의 힘든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도 힘들어했다. 그래서 살면서 닥치는 힘든 일에 맞닥뜨리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립을 선택했다. 이런 이유로 현대사회에서 인간관계라는 것이 지극히 피상적이고 겉도는 것이 아닌가 싶다.
거기다 부부는 수많은 갈등과 문제를 다루며 살아야 한다. 육아, 직장, 살림 그리고 그 외 다른 부차적인 문제들이 항상 있다. 그리고 반 이상의 문제는 사실 근본적으로 해결이 되지 않는 것들도 있다. 그래서 부부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위해서 또 때로는 서로를 지지하기 위해서 반드시 소통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위와 같은 피상적인 대화는 문제를 해결할지는 몰라도 ( 소통이 안되면 문제해결도 사실 더 어렵다.)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가 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래서 그런 부부는 함께 있어도 외로운 것이다.
사실 가장 이상적이고 바람직한 소통은 마음을 나누는 사이가 되는 것이다. 그냥 눈빛만 봐도 내 마음을 알아줄 것 같은 사람이면 좋겠지만 사실 이런 관계는 뇌에서 도파민이 넘치는 뜨거운 연애를 하고 있지 않은 이상 사실 쉽지 않다. 그래서 나의 내밀한 속마음과 감정을 툭 털어놓아도, 그 감정을 부정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관계가 진정한 소통이 되는 사이이다. 그렇게 내 마음과 감정을 받아주는 것은 나의 존재를 인정해 주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정과 소통에 능하지 못한 우리 문화는 이런 감정 소통은 더더군다나 어렵다. 보통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하는 위로라는 게 "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그런 것 같고 그래. 혹은 좀만 더 참아. 다른 사람들도 이 정도는 다 견디고 살고 있어" 등등의 나의 감정을 무시하거나 억압하는 멘트들 뿐이다. 이런 감정의 억압은 사실 존재를 부정당하는 것 같아 마음이 더 닫혀버린다. " 아... 아무도 내 마음/심정을 모르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내가 남편에게 가장 고마워하고 있는 것 중에 하나는 나에게 비싼 선물을 할 때도 아니고 좋은 여행을 갔을 때도 아니다. 신혼초에 아버지와의 갈등 끝에 나의 상처가 불거져 올라와 심하게 울던 날이 있었다. 나는 당연히 남편이 " 그래도 아버지인데 장인어른한테 그러면 안 되지. 이제 너도 어른인데 그만해. 언제적 일 가지고 아직까지 그러면 어떡해"라고 할 줄 알았다. 보통 나의 슬픔과 분노에 대부분의 사람들의 반응이 그랬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편은 울고 있는 나를 가만히 안아주며 "울고 싶으면 실컷 울어"라고 해줬다. 그 말에 정말 아이처럼 그를 붙잡고 엉엉 울었던 적이 많다.
나는 그 당시 남편이 그냥 아무 말 없이 그 시간 그 공간에 나와 함께 해주고 내 눈물을 바라봐준 것이 너무 고마웠다. 살면서 아무도 그렇게 나의 감정을 지켜봐 준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어른들은 울면 운다고 혼내고, 뚱해 있으면 속이 좁다고 혼내고, 화를 내면 어디 버릇없이 성질이냐며 혼났다. 그래서 나는 늘 혼자 울었고 늘 혼자 분을 삭여야 했다. 그러나 사실 남편은 그 당시 대단히 나를 위로하기 위해 머리를 쓴 것이 아니었다. 그는 그냥 나에게 무슨 말을 할지 몰라 그냥 가만히 안아준 것이라 후에 말했다. 그러나 나는 그런 그의 행동을 두고두고 고마워하고 있다. 아마 그때 그가 다른 사람들처럼 나에게 이런저런 훈수를 놓았다면 나는 그와 또 2차로 싸움을 했을 것이고 나의 마음은 굳게 닫혔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남편과 모든 문제나 대화에서 그런 감정적 소통을 하진 못했다. 그도 나도 지극히 한국적인 사람이었고 우리에겐 오랜시간 몸에 베어있는 판단, 비교와 해결의 습관은 남아있었다. 때로는 나의 고민이나 한숨을 가볍게 치부한 적도 있었고 나를 오히려 비난한 적도 있었다. 보통의 남자들이 그렇듯 공감보다는 문제 해결과 판단을 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가끔 다투기도 하고 토라질 때도 있었지만 대화를 통해 내가 원하는 소통을 끊임없이 말했다. 심지어 어떤 경우는 내가 미리 엄포를 하고 이야기를 시작할 때도 있었다 " 나 지금 힘들어서 당신한테 말해야 할 것 같은데 그냥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듣기만 해 줘! 나는 지금 공감이 필요하지 해결이 필요하지 않아." 이렇게 먼저 선수를 치면 남편은 그냥 빙그레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내 하소연을 다 들어주었다. 그리고 나선 " 다 하고 나니 시원해? 괜찮아?"라고 물어보는 게 다였다.
물론 나 또한 남편의 이야기나 하소연에 늘 남편의 편을 들어주며 감정을 인정해 주었다. 더 나아가 상담을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내가 깨달은 마음에 관해서 감정에 관해서 대화를 많이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우리는 어느새 서로의 감정을 수용하고 인정하고 흘려보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이렇게 감정적 소통이 되기 시작하자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안전하고 편안한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가까운 상담사가 된 것이다.
그럴 수 있어
남편과 감정적 소통을 한 후에 우리가 서로에게 가장 많이 하게 된 말이 " 그럴 수 있지, 당신은 그렇게 느낄 수/ 생각할 수 있어. 당연한 거야"이다. 이 말은 사실 " 네가 옳아. 네가 느끼는 모든 건 다 정당한 거야"라는 말이다. 그래서 그 말은 내 존재를 그냥 인정해 주는 말이라 자연스럽게 힘이 나고 치유받는 느낌이 든다. 그런 말을 서로에게 해주니 당연히 신뢰와 친밀감은 높아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모든 것을 터놓을 수 있는 비밀친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