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인생은 사실 무수한 책임과 의무로 연결되어있다. 혼자 살아도 자신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며 세금을 내고 자신이 속한 직장이나 공동체에서 맡은 일을 해야 한다. 더불어 먹고 씻고 청소하는 일상적인 일들은 매일매일 죽을 때까지 해야하는 일이다. 그렇게 자신의 삶을 책임지고 다루며 사는 것이 인생이고 어른의 삶이다. 그러니 부부가 함께 생활하고 더 나아가 자녀까지 있다면 자신이 책임지고 감당해야 하는 일들은 몇 배가 더 늘어난다. 그래서 함께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고 가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부부들이 자주 싸우는 이유들도 이런 사소한 일상적인 일들을 해결하는 가운데 생길 때가 많다. 나만 육아를 하는 것 같고, 나만 고생하는 것 같고 나만 힘든 것 같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배우자가 나를 도와주지 않거나 배려하지 않는다고 느끼면 서운함을 넘어 배신감이 들 때가 많다. 이런 감정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다. 당연히 부부는 모든 맡겨진 일상생활에서 함께 애쓰고 노력해야 한다. 다면 그것을 배분하고 결정하는 데 있어서 좀 더 지혜로운 방법이 필요하다.
남녀의 성역활에 대한 선입견이 많이 달라져 가고 있지만 여전히 살림과 육아는 아내의 역할인 것 같고 직장에서 돈 버는 것이 남편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물론 가정을 건강하게 지키기 위해서 재정, 살림, 육아에 대해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그 결정은 부부의 합의에 의한 것이 되어야 하지 사회적 기준이나 과거 어른들의 잣대는 되지 말아야 한다. 그런 타인의 기준이나 판단에 부부의 역할을 짜 맞추고 기대를 하기 때문에 갈등이 증폭되는 경우가 많다.
개인적으로 나는 모든 남자들이 직장생활이나 돈을 버는데 능숙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모든 여성들이 육아나 살림에 최적화된 사람들도 아니다. 이런 남편과 아내에게 안정적인 월급봉투나 깨끗한 살림과 맛있는 요리를 기대하는 것은 그 사람들에게 무척 고통이 될 것이다. 대신 각자가 가진 장점을 잘 살릴 수 있도록 가정 안에서 서로 협력하는 것이 더 건강한 부부관계를 만든다.
나와 남편도 처음에 이 부분에서 참 갈등이 많았다. 나야말로 살림에는 관심도 취미도 없는 여자였다. 그러나 반대로 남편은 살림과 요리를 좋아하고 주방용품에 관심이 많은 그야말로 살림꾼이다. 그러다 보니 내가 하는 모든 것들이 남편 눈에 찰리가 없었다. 때문에 신혼초에 설거지며 청소, 냉장고 정리, 시장보기 등등 하나부터 열까지 싸움거리가 되었다. 그러다 우리는 각자의 다름을 인정하고 각자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하기로 했다.
나는 남편보다 잘하는 요리와 빨래, 가족들 헤어커트, 아이들 숙제와 학교생활을 챙기고 가족들 멘털 케어가 주 임무이다. 가족들 멘털 케어는 남편과 아이들 이야기를 들어주고 가족 안에 문제가 생기면 중재자 역할을 하는 것이다. 남편은 청소, 설거지, 장보기, 아이들과 몸으로 놀아주기, 공과금 관리 등등 많은 부분을 남편이 하고 있다. 그렇게 각자가 더 잘하고 좋아하는 부분을 하면서 가정 안에서 일어났던 사소한 갈등은 많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마치 톱니바퀴가 잘 맞물려 돌아가듯이 안정적으로 굴러가고 있다.
배우자가 가사나 육아를 도와주지 않는다고 원망하기 전에 배우자를 어떻게 하면 동참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먼저이다. 많은 사람들이 배우자에게 현실적이지 않은 기대를 할 때가 많고 배우자가 잘하지 못하는 것을 요구하거나 강요할 때가 많다. 그리곤 자신의 기대를 채우지 못하는 배우자를 원망하고 비난한다. 결과적으로 배우자는 더더욱 동참하지 않게 된다. 힘들게 노력하고도 잔소리나 비난을 참을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배우자를 원망하고 전에 배우자가 잘하는 일,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필요하다. 함께 가사이나 육아에 동참하고 협력하는 것에 대한 기쁨을 느끼게 해주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인정과 칭찬이다. 가정에서 내가 참여하고 노력함으로 가족들이 기뻐하고 보람을 느낀다면 참여 하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다.
가끔 저녁 식사를 하고 아이들과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남편이 설거지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1960년대나 70년대에 주부나 엄마로 살아야 했다면 정말 비참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아마도 살림하나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주변의 비난을 많이 들었을 것이며, 매일그런 비난과 질책을 듣는다면 여자로 태어난 게 무척 원망스럽고 한스러웠을 것 같다. 그래서 2022년대를 그것도 미국이라는 나라에 살고 있는 내 상황에 무척 감사하며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