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함께 한지 한 20년이 되고 보니 별로 언성을 높이며 싸울일이 없다. 그건 오랜시간 함께 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무심함이나 귀찮음이 아니다. 남편과 나는 애초부터 생겨먹기를 다르게 태어난 존재라는 것을 오랜 시간 함께 하면서 비로소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갈등상황에서도 서로를 향해 비난을 하거나 몰아세우는 일은 하지 않는다. 그냥 서로가 일어나는 상황과 사건을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이 대부분이다. 한마디로 왠만한 일은 대화로 해결이 가능해졌다. 그러니 서로 얼굴을 붉히고 큰소리를 내고 며칠씩 냉전을 하는 등의 싸움은 사라졌다. 갈등이 생겨도 대화로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상속에서 일어나는 작은 문제나 갈등을 회피하거나 덮어두지 않았다. 그때 그때 일어나는 자잘한 일들을 다루며 살았기에 오히려 큰 갈등을 만들지 않는 방법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많은 부부들이 일상의 작은 일들을 쌓아두고 나중에 터뜨리는 경우가 많고 이렇게 터진 경우는 큰 싸움이 되는 것이다.
우리 부부도 이런 수준에 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신혼땐 크고 작은 일들로 싸움과 갈등이 많았다. 그때마다 나는 숨었고 남편은 몰아세웠다. 나는 도무지 그 싸움을 해결할 방법을 몰라 숨었고 남편은 나를 가르치고 띁어고치려고 몰아세웠다. 그러나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을 방어하게 되어있다. 그러다 보니 잘잘못을 따지는 부부싸움은 해도해도 절대도 끝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답답한 것을 못견디는 남편 덕분에 (?)우리는 어떤 식으로는 매듭을 짓고 가야했다. 그리고 그 지루한 과정마다 우리는 서로가 각자 다른 성격, 취향, 가치관, 신념을 가진 사람이란 것만 확인했다. 그래서 싸움이 끝나고 나면 언제나 서로를 더 많이 알고 이해하게 되었다. 이것이 잘 싸우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부부들을 보면 서로에게 비난과 상처만 남기는 경우가 많다. 서로 해결해야할 문제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한채 감정적 응어리만 남겼다. 이렇게 싸움이 흐지부지 되어 버리면 서로간의 불신과 긴장만 높아져서 친밀감이 떨어지고 그로 인한 다른 갈등을 촉발시키는 경우가 많다. 이런 악순환을 수십년째 반복하며 사는 부부들이 정말 많았다. 이런 싸움은 정말 영양가가 하나도 없는 손해보는 싸움이 된다.
오랜시간 남편과 살면서 또 주변의 많은 부부들을 관찰한 결과, 잘 싸우는 부부가 잘 살았다. 부부사이에 갈등은 존재할 수 밖에 없다. 그건 서로가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서로가 다르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인 경우가 훨씬 많다. 따라서 잘 싸우고 나면 서로를 더 잘 이해하고 배려하고 문제를 쉽게 만들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경우 서로에게 상처만 남기고 부부사이에 신뢰에 흠이 가게만든다. 이렇게 부부사이에 신뢰와 애정에 흠집이 생기면 갈등과 싸움은 더 빈번하게 일어날 수 밖에 없고 감정의 골을 점점 깊어지는 악순환을 만드는 것이다.
부부는 잘 싸워야 한다. 싸움 자체가 두려워 회피하는 것은 후에 서로간의 친밀감과 신뢰에 큰 구멍을 만들어 놓는 것과 같고 그 구멍은 부부사이의 소통을 방해하는 요소가 될때가 많다. 필요하다면 전문서적이나 부부 전문 상담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필요하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성인들이 잘싸우는 부부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자란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어떻게 하는 것이 잘 싸우는 것인지 감도 안잡히는 경우 많다. 따라서 배우지 못해서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필요하다면 새롭게 배울 필요도 있다. 그렇게 노력해서 잘 싸우게 되면 부부관계를 더 돈독하게 하고 오히려 부부사이에 긍정적이 소통의 길로 가는 지름길이 되기도 한다.
돌아보면 남편과 나는 정말 잘 싸웠다. 서로의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도 회피하지 않고 솔직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서로의 인격을 모독하거나 선을 넘는 언행이나 행동은 자제했다. 그리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조율할 것을 조율하며 맞추어 갔다. 그리고 사과할 일이나 용서할 일은 되도록 빨리 했다. 그렇게 작은 일은 작은 일데로 매듭을 짓고 큰 일은 큰 일데로 매듭을 지으며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서로간에 오래된 해묵은 감정도 없고 과거를 들먹이며 되풀이할 일도 없다. 때문에 서로를 향한 신뢰와 믿음은 더 견고해 질 수 밖에 없었고 지금은 세상에서 무슨 말을 해도 편안한 사람이 된 것이다. 그렇게 우린 짝꿍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