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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거 아냐?

우리 부부이야기

by 원정미 Oct 03. 2021

미국은 카드를 주고받는 문화가 발달되어있다. 고마운 마음을 전할 때나 생일이나 기념일, 밸런타인데이 등 특별한 날에 주는 카드가 곳곳에서 판다. 그러다 보니  Hallmark 같이 카드를 전문적으로 파는 가게도 있고, 슈퍼마켓 같은 곳에서도 볼 수 있다. 특별한 멘트와 예쁜 디자인이 많아 개인적으로도 구경을 참 많이 했었다.

그래서 였는지  우리는 가족끼리 카드를 많이 주고받는다. 정확히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우라 집의 특별한 가족문화로 자리 잡은 지 오래되었다.  생일이나 기념일 크리스마스가 되면 꼭 서로에게 카드를 써주는 것이다. 사실 내가 우겨서 시작한 전통이다. 나의 감수성이 너무 아날로그라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평소엔 해주지 못하는 " 오글거리는 멘트"와 진심을 카드에 담아주고 싶었다.

 

처음 남편에게  특별한 날 카드 써달라고 했을 땐 반발도 심했다. 남편은 글씨도 악필인 데다가 할 말이 별로 없다는 것이었다. 평소에 할 말을 거의 다하고 살기 때문에. 그래서 요리조리 빠져나가려고 한 것을 계속 고집 피워 18년째 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이제는 남편이 먼저 "내 카드는 썼냐?"라고 내게 먼저 물어본다. 감사와 사랑의 표현은 자주 들어도 더 듣고 싶은 말이라서 그러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카드에 더 집착하게 된 이유는 쓸 땐 진지했는데 몇 년 후에  같이 읽어보면 너무 유치하고 웃겼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너무 좋은 추억되는 것이었다. 평소에 말하지 못했던 사과도 담겨있고 감사의 내용도 있으니까. 어쩌면 시간이 지나면 가물가물해져 사라져 버릴 그 진심을 보관해 주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마치 몇 년 전 내 생일에 쓴 남편의 카드처럼. 우연히 서랍을 정리하다 지금까지 남편이 준 카드를 꺼내 읽게 되었다. 일단 남편의 카드는 내용의 진지함과 진중함에 상관없이 그의 악필이 모든 카드를 유치하고 웃기게 만들어 준다. 전형적인 초등학교 남학생 수준의 악필이라. 지금으로부터  약 9년 전에 쓴 제 생일카드에 뭐라 뭐라 고맙고 사랑한다 하고  마지막 한 문장에 빵 터졌다. "하늘이  지금 무너져 내린다 해도 나는 당신을 위해 하늘을 받들겠습니다.”라는 정말 손발 오그라드는  문장이 있었다. 혼자서 깔깔거리고 웃다가 그래서 그날 밤 집에 온 남편에게..


“ 자기야 ~  9년 전에 자기가 하늘이 무너져도 나를 위해 하늘을 받들어 준다고 생일카드에 써놨던데?”

“ 내가!? 진짜? 거짓말~ 미친 거 아냐? ㅎㅎㅎ”

그래서 ‘증거물’을 들이밀었다.

 봐봐 당신이 이렇게 썼잖아? 뭐야? 진심이 아니었던 거야?ㅎㅎ”

“진짜 그러네 ㅎㅎㅎ 와 ~진짜~ 그래도 이건 아니다. 내가 아무리 당신을 사랑해도 하늘은 못 들지~ 왜 그때 이렇게 썼지? ㅎㅎ”

그렇게  둘이서 배를 잡고 한참을 웃었다. 그날 이후 나는 남편에게 앞으로도 계속  “ 재미와 감동”을 더한 카드를 쓰라고 압박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올해 생일 카드를 보고 뭐야~ 별로 안 웃기잖아~” 그랬더니

남편이 “ 있어 봐 봐. 내 카드는 한 3년 뒤에 웃길 거야~” 라며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3년 뒤에 다시 보려고 고이 모셔 두었다.


카드의 좋은 점은 카드를  적는 순간만이라도 나를 생각하면서 내어준  시간이지 않을까 싶다.  비록 그 진심이 하루도 못 간다고 해도,  그 ‘순간적인 진심’을 모아놓고 들여다볼 수 있는 추억을 주니까. 이런 추억과 기억들이 때론 메마르고 지루하고 힘든 우리네 인생을 지탱해줄 버팀목이 되어 주지 않을까 싶다.  꼭 카드가 아니더라도 가정 안에 우리 집 만의 가족문화/전통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그 문화와 전통이 가족안에서 유대감을 쌓고 소통의 장을 만들고 추억거리를 줄때가 많기 때문이다.  해마다 같은 장소에서 가족사진을 찍기도 하고 매년 캠핑을 가는 것과 같이. 무엇을 하느냐보다 함께 전통을 만들어 가는 것에 의미를 두고 함께 시작해 보는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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