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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래도 당신 무릎은 안 꿇렸어!

시트콤 같은 우리 집

by 원정미

가끔씩 오래 알고 지낸 지인들과 만나다 보면 옛날이야기가 자동적으로 소환이 된다. 지금은 다들 마흔을 지나 중년을 접어들고 있지만 20대 후반 30대 초반의 서로의 흑역사를 알고 있는 서로는, 그때의 이야기로 날을 셀 정도이다. 그리고 화려했던(?) 결혼 과정도 빼놓을 수 없다.

지금은 결혼해서 너무너무 잘살고 있는 가정이지만, 결혼까지의 과정이 너무 나도 험난했던 지인이 있다. 친정부모님께서 사위될 남자가 맘에 들지 않아 정말 사돈의 팔촌 온 식구가 뜯어말렸다. 드라마에서처럼 미국에 살던 그 딸을 몰래 한국으로 비행기에 태워 보낼 계획까지 했다고 했다. 그러니 지금의 남편 되는 분이 말하길 결혼 허락을 받기 위해 그 집에 가서 수백 번 무릎 꿇고 갖은 수모를 참았다고 한다. 아내분이 “ 김치 싸대기” 빼고 아침 막장 드라마에 나오는 모든 수모를 남편이 다 당했다고 했으니 말 다한 셈이다.

개인적으론 그 신랑이 딱히 큰 문제가 있었다기보다는, 자기 딸이 더 훌륭한 조건의 남자를 만나기를 바랐던 친정 부모님의 욕심이 과했다고 생각한다. 사실 20대 후반 남자들이 성공을 하면 얼마나 성공을 할까? 재력이 있다면 다 부모님의 재력일 것이고, 스펙이라고 해봐야 공부를 잘한 사람들만 가질 수 있는 명문대 졸업장 정도가 다인데. 그 남편은 지금 재정적으로도 가정적으로 너무 성공하셨다. 사람일 모른다는 말이 딱맞는 말이다.


그때 그 지인이나 나의 남편 둘 다 딱히 내세울 것 없는 것은 비슷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결혼 과정은 완전 정반대였다. 남편과 나의 지인들과 어른들은 내가 남편과 결혼한다고 했을 때, 고개를 갸우뚱해 하거나 심지어 말리는 사람도 있었다. 왜냐하면 남편은 청년때 부터 장난기가 심하고 진중한 구석이 없는데 다가 안정적인 직업이나 좋은 학벌도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 정서를 가진 어른들이 보기에 남편감으론 그가 별로라고 생각한 사람이 꽤 있었다. 그러나 내가 고집을 피워 결혼했다. 친정 부모님도 사실 탐탁지는 않았으나 내 고집을 꺾을 자신이 없으셔서 그냥 허락하셨다.

친정 엄마는 결혼하기 한 달 전 미국에 와서 남편 얼굴을 처음 봤고, 친청 아버지는 결혼식 3일 전 미국에 들어와 사위와 정말 어색한 상봉을 했다. 이렇게 내가 철저히 남편을 보호(?) 하고 그를 “고이고이” 모셔와서 결혼을 한 셈이다. 만약 그때 남편의 조건을 보고 집에서 반대를 했다면 서로에게 많은 상처를 남겼을 것 같다. 그리고 나의 결정은 너무 옳았다. 지금까지 별 탈 없이 잘 살고 있기도 하고, 남편은 오히려 결혼 후 여러모로 나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 내 공부 뒤바라지 하고 살림 못하는 저 대신 살림하느라.

앞서 지인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후 남편을 보면서 당당히 말했다.

“ 봤지? 나는 그래도 당신 무릎 한번 안 꿇렸어! 당신 진짜 편하게 결혼한 거 알지? 당신이나 00 씨나 그때 뭐 내세울 것 없기는 마찬가지였잖아 ㅎㅎ”

그랬더니 남편 왈,

“ 뭐 그까이것, 무릎 꿇는 게 뭐라고~ 난 백번도 더 꿇을 수 있어. 지금 꿇어줘? ㅎㅎㅎ”

라고 하는 것이였다. 잠깐 잊고 있었다. 우리 남편, 정말 쉬운 남자라는 걸 ^^



그렇게 그를 고이 모셔온 걸 지금도 너무 잘했다고 생각한다. 남들처럼 크게 이름을 날리거나 성공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우리 다섯 식구 지내는데 큰 문제없고 그 무엇보다 19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도 함께 있으면 즐겁고 행복하기 때문이다. 20년 전보다는 우리 둘 다 여러모로 참 많이 성장했다. 20년 전 그 어른들은 그 당시 그의 학벌과 직장, 경제력만 보았다. 20대 후반 청년의 초라한 현실만 보았지만 그가 성장할 잠재력은 보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20년 전 그의 유머, 따뜻함, 성실함, 책임감 그리고 그의 믿음을 보았다. 남편의 스펙이 아닌 사람의 성품을 보고 결정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결혼을 준비하거나 또 자녀들의 배우자를 볼 때 상대의 배경과 스펙만 본다면 너무 위험한 일이다. 왜냐하면 배경과 스펙은 시대에 따라 달라지고, 세상은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20-30대는 아직 성장할 시기이다. 우리가 마치 결혼을 인생의 종착역쯤으로 생각해서 편안한 여생을 보내고 싶은 마음으로 결혼을 한다면 사실 큰 오산이다. 결혼이야말로 어쩌면 제대로 된 훈련의 시작이고 성장의 시간임으로. 아직 성장하고 발전 가능성이 있는 젊은이들을 그때 당시의 스펙만으로 무시하는 것은 정말 위험한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때 남편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그 어른들이 지금 무슨 말을 하실지 참 궁금할 때가 있다. 나와 남편은 후에 그런 어른이 되지 말자며 늘 다짐하곤 한다. 남의 귀한 자식 함부로 무릎 꿇리지 말자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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