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정신 건강을 의지력의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심리 치료사라는 특성상 심리적 어려움과 정신적인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다른 사람들보다는 훨씬 많이 만난다. 하지만 직업상의 관계를 빼고 보더라도 주변에 정신질환과 심리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무척 많다.
나의 부모님 두 분 모두 불안장애와 우울증으로 오래도록 약을 복용하고 계신다.
어린 시절엔 몰랐으나 지금 생각해 보니 나의 사촌언니는 조현병이 있었다. 20대 후반부터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미국에서 친하게 지낸 언니는 갑자기 불면증과 불안장애가 생기고 증세가 급속도로 나빠지면서 발병 6개월 만에 자살했다.
교회에 알던 또 다른 언니의 아들이 고등학교 때 나빠진 불안장애로 학업과 학교를 모두 중단하고 1-2 년 정도 두문불출하면서 고생을 했다.
남편의 이종 사촌 조카가 조현병으로 현재 격리생활을 하고 있다.
알고 지내던 지인 중에 우울증 때문에 약을 복용하는 사람이 있고 또 어떤 분은 조현병 치료 중이다.
미국에서 결혼하기 전부터 알던 언니도 몇 년 전부터 공황장애로 힘들어하고 있다.
내 주변에만 신기하게 이렇게 정신적으로 아픈 사람이 많을까? 내가 신기한 케이스일까? 하는 것이다. 아마도 몰라서 그렇지 대부분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면 비슷한 어려움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주변에 많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 모두 단순히 의지가 박약하고 나약해서 그런 것인가? 하는 것이다. 나는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갑자기 서있던 건물이 무너지고 범죄자에게 성폭력을 받거나 부모에게 죽지 않을 만큼 두드려 맞지 않아도 마음에 병은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 정신적인 문제도 신체의 병과 마찬가지로 매우 복잡 미묘하게 작용하여 일어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어느 정신과 의사의 말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은 적이 있다. 인턴 시절 다른 어느 병동을 가도 대부분의 환자는 보호자와 주변 사람들에게 극진한 관심과 보호를 받는데 유독 정신병동만 그렇지 않다고 했다. 어쩌면 그 무엇보다 보호자와 지인들의 따뜻한 격려와 지지가 필요한 집단인데 가족들도부터 나약하다는 비난과 정죄를 받고 심지어는 버려지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 환자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정신과 의사가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정신적인 질환도 신체의 질병과 아주 비슷하다.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 모두가 병을 촉발시키는 매개체가 된다. 술이나 담배 등을 일절 하지 않고 건강한 생활 습관을 가지고 있어도 암이나 다른 질병에 걸리는 경우는 흔하다. 그런 사람에게 그런 병에 걸린 것을 탓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다들 그냥 운이 나빴다고 하거나 안타까워할 뿐이다. 그러나 정신적 문제는 다르게 본다.
평소의 면역이 튼튼한 사람이 질병에 강하듯이 평소에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잘 다스리는 사람이 정신적으로 건강하긴 하다. 하지만 아무리 젊고 건강해도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에 속절없이 무너지듯이 마음의 병도 그럴 수 있다. 잠재되어 있던 유전적 요인이 세월이 흘러 촉발되거나, 기질적으로 스트레스에 취약하거나, 오래도록 스트레스 관리에 소홀했거나, 잘못된 중독 습관이 지속되거나, 또 어떤 사건과 계기고 억압된 감정이 폭발하기도 한다. 그럴 때 당황하지 않고 몸이 아프면 병원을 찾고 치료를 하듯이 마음도 그렇게 돌봐주면 되는 것이다.
정신적 문제도 신체적 질병과 똑같이 바라봐 주면 좋겠다.
이유가 무엇이든 가장 괴롭고 힘든 건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에게도 적합한 치료와 회복기간이 필요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