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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t therapist Sep 24. 2022

사소한 일이 깊은 상처로 남는 것은...

트라우마라는 말이 낯설지 않은 세상에 살고 있다. "트라우마가 되어 힘들다. 트라우마가 될 것 같다"는 말을 흔히들 한다. 한마디로 상처가 되어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는 말이다. 물론 정말 생명에 위협을 주고 죽다 살아난 경험은 뇌에 흔적을 남긴다. 그래서 비슷한 상황만 되어도 자동적으로 몸이 반응을 하고 공포를 느낀다. 그러나 이런 심각한 생존과 연결되지 않는 일도 기억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고 상처가 되는 경우가 있다. 누군가의 무시하는 말, 직장상사의 갑질, 부모의 냉정한 말투나 무관심, 친구들의 놀림 등등 지나고 보면 별일 아니었던 것들인데 그 당시에 크게 상처로 남아 마음을 괴롭히는 일이 종종 있다. 그러면 스스로를 또 자책하기도 한다. " 별것 아닌 것으로 왜 이렇까? 누구나 이런 일을 겪는 거잖아. 근데 왜 나만 이렇게 힘들까?" 이런 마음이 들어서 더 우울해지기도 한다.  


 더 나아가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은 그때의 사건이 대부분 사소한 일이었기에 기억을 못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게 누군가에게 잊히고 만 기억에 고통스러워하는 자신이 한심해 보이기도 하고 억울하고 분하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관계 얽히고 꼬이는 경우가 많다. 큰 사건사고로 인한 빅 트라우마가 아닌데도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그 당시 개인이 너무나 " 무기력하고 힘없는 존재"였을 가능성이 높다. 사실 그래서 어린 시절의 학대나 무관심, 방치가 위험한 것이기도 하다. 부모 앞에서 어린아이는 바람 앞의 촛불 같은 존재이다.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맞서거나 대항하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 그래서 부모의 작은 말과 행동은 아이들에게 훨씬 더 큰 파워와 의미를 부여한다.


나는 어린 시절 미술학원을 보내달라던 나의 부탁을 일언지하 거절한 아버지에게 상처를 입었다. 그것이 오래도록 상처가 되었다. 아버지는 자신이 그때 어떻게 거절했는지도 기억하지 못하는 사건이다.  그리고 아버지는 부모라면 의례 할 법한 거절을 했다고 생각하신다. 사실 맞는 말이기도 하다. 부모는 자녀가 부탁하는 모든 일을 다 들어줄 수 있는 존재는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는 고작(?) 그 일로 수십 년 상처를 가지고 있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신다. 하지만 나는 그때의 무거운 분위기, 아버지의 표정 그리고 말투까지도 여전히 기억난다. 그건 내가 그 당시  아버지에게 말 한마디 대꾸하지 못하는 연약하고 무기력한 신세였기 때문이다. 만약 그때 내가  아버지에게 왜 안되냐고, 오빠는 학원 보내주면서 나는 왜 안되냐고 따지면서 떼라도 썼다면 아마 이렇게 까지 상처가 되지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아니 내가 그럴 자격이 충분히 있는 사람이란 생각도 하지 못할 만큼 연약하고 여린 상태였다. 그래서 그때 거절의 기억이 나에게 오래도록 상처로 남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그때의 연약하고 무기력한 존재가 더 이상 아니다. 만약 지금의 나라면 아버지에게 합리적인 이유를 들어 학원을 보내달라고 설득하던지 다른 방법을 간구했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내 용돈을 깎고 학원을 보내달라고 하던지 아니면 내가 용돈을 모아서 가는 방법을 택했을 수도 있다. 지금의 나는 건강하고 마음이 단단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30여 년 전의 나는 그렇지 못했다. 사실 대부분의 어린아이들은 부모와 맞짱을 뜰만큼 마음이 건강하거나 베짱이 두둑하지 못하다. 그래서 어른들이 그 마음을 보살펴주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지도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어린 시절뿐 아니라  사람이 살다 보면 어느 지점에 자신이 연약해지는 지점이 있다. 직장에 처음 입사한 사회초년생이나, 새로 결혼해서 정착하는 새내기 며느리나 사위, 새로운 학교로 가는 전학생, 새로운 나라로 정착하는 이민자 혹은 사업실패나 취업 실패, 질병 등등 인간의 인생은  늘 오르락내리락한다. 그리고 하락곡선을 지나가고 있을 때  누군가의 무심히 지나가는 눈빛이나 말투 만으로도 비수로 꽂힐 때가 많다. 그렇게  마음속에 다른 사람이나 세상에 대한 원망으로 자신의 열등감을 키우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잘 해소하지 않으면 두고두고 마음에 상처로 남아 평생 괴롭히게 된다.


따라서 치유의 시작은 자신이 그때 무기력했거나 연약했던  상태였음을 인정해야 한다. 어떤 이유에서든 자신에게  날아오는 작은 돌덩이나 화살을 막아낼 만큼 튼튼한 사람이 아녔음은 받아들이고 그것 때문에 상처를 입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계속 연약한 존재로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를 더 건강하고 튼튼하게 만들어감으로 앞으로 날아올 돌덩이들을 막을 수 있다.


상처받은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안타까운 것은, 여전히 나에게 이유 없이 돌을 던지고 화살을 날린 상대를 원망하고 분노하며 그들에게 제대로 된 사과를 받아내려고 애를 쓰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 대부분 자신을 여전히 연약한 상태로 방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통의 많은 가해자들은 자신이 돌을 던졌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늘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는 이상한 관계가 되는 것이다. 이런 일에 자신의 소중한 에너지를 낭비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시간에 오히려 자신의 마음을 추슬러 자신이 더 이상 그런 작은 돌덩이에 아파하지 않도록 스스로 단단하고 건강하게 만들어 가는 것이 어쩌면 상처 준 사람에 대한 가장 멋있는 복수라고 생각한다. " 너는 이제  더 이상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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