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rt therapist Sep 30. 2022

나는 4대 독자와 산다

어린 시절 엄마와 할머니의 고부갈등을 오래 보고 자란 나는 그야말로 "시"자만 들어가도 거부 반응이 생기던 사람이었다. 시어머니, 시댁, 시삼촌, 시조카 등등... 엄마는 나의  미래의 남편으론 첫째 아들도 안되고 외동아들은 더더욱 안된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사셨다. 사실 아버지도 첫째 아들은 아니셨다. 그러나 큰아버지가 아들 없는 큰집에 양자로 호적이 바뀌는 바람에 둘째 아들이었던 아버지가 우리 집 큰 아들 노릇을 했다. 그래서 거의 한 달에 한번 꼴로 제사를 지냈고 설날이나 추석의 차례도 모두 우리 집 몫이었다. 당연히 할머니도 우리가 모시고 살았다. 할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그놈의 " 아들 타령"을 지겹게도 들었다. 삼촌집에 아들이 둘이나 있었지만, 아들 하나 딸 하나만 낳은 부모님에게 아들 하나 더 있어야 한다며  할머니는 엄마를 늘 들들 볶으셨다.  이런 경험때문에 결혼은 나에게 절대로 동화 속 판타지가 될 수 없었다.


어린 시절 대부분의 한국 남편은 아내 편이 아니라는 사실과 아내는 마치 시댁 식구들의 시중 들어주는 사람 정도로 취급하는 분위기에서 결혼이라는 것이 하고 싶었을 리가 없었다. 여자에겐 너무나 불합리하고 억울한 제도가 결혼처럼 보였다. 그래서 정말 차라리 부모 없는  남자와 결혼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랬던 내가 4대 독자와 결혼을 했다.  남편이랑 연애 중 4대 독자라는 것을 알고 정말 '입틀막'을 했었다. 그전까지 나는 3대 독자 4대 독자를 실제로 만나본적이 없었다. 마치 드라마나 전설 속에만 존재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남편과 20년 넘게 살면서 남편이 4대 독자인지 잊고 산다.  가끔 방송에서 " 아버지가 4대 독자라 운전도 못하세요. 혹은 아버지가 3대 독자라 할 줄 아는 게 없어요. 부엌엔 들어오지도 않으세요. "라는 에피소드를 들을 때 ' 아... 맞다. 우리 남편도 4대 독자고 우리 아들은 5대 독자지"라는 생각을 한다. 남들은 독자라  금이야 옥이야 귀하게 여긴다 던데 너무 막대했나 싶은 생각이 그제야 든다. 


남편은 손재주도 많고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라 여느 집 독자들처럼 절대로 무능력하거나 말랑말랑하지 않다. 단지 어린 시절 귀한 아들이라 " 말썽쟁이라도 좋다. 건강하게만 자라다오"라는 어른들의 소원에 맞춤 성장했다. 4대 독자면 집안에서 꽁꽁 싸매고 키웠을 법하지만  공부는 뒷전이고 산으로 들로 누비고 다녔지만 시부모님은 방치, 방관하셨고  덕분에 남편은 아주  '밝고 건강하고 짓궂은 어른'으로 자랐다.


또한 내가 남편이 손 귀한 집 자손이라는 것을 잊고 사는 이유는 일단 우린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시댁 모두 몇 대째 기독교 집안이라 제사를 지내신 적이 없으시다. 사실 아들 타령을 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이 죽고 나서 자신의 제사를 지내 줄 사람이 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편 집안은 제사를 지내지 않으니 아들에 연연하지 않으신다. 거기다 지금은 옛날처럼 아들이 부모님을 모시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도 없으시니 당연히 아들 타령이 없으시다.


나도 첫째 딸을 낳고 딸 하나만 잘 키우면서, 내가 하고 싶은 공부에만 집중하고 싶었다. 당연히 남편도 거기에 동의를 했지만 내심 시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젊은  여성이었지만 며느리의 가장 큰 의무와 책임은 대를 잊는 것이라는 것을 귀 따갑게 듣고 자란 터라 마치 내 할 도리를 다 못한 것 같은 죄책감이  살짝 들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실 말도 안 되는 생각인데 말이다. 아이의 성별은 여자에 의해서가 아닌 남자의 소관인데 잘못된 사회적 제도와 분위기가 합리적 생각을 흐리게 할 때도 있었다.


다행히 시부모님은 아들을 낳든 딸을 낳든 전혀  개의치 않으셨다. 그리고 나에게 그래도 아들은 있어야 한다는 식의 태도나 뉘앙스를 전혀 보이지 않으셨다.  이 부분은 정말 시부모님께 감사하게 생각한다.  더군다나 당신의 아들보다는 늘 며느리를 먼저 생각해 주시는 시부모님 덕분에 나는 정말 남편이 귀한 집 아들이라는 것을 잊고 살때가 많다.


 (나의 계획과 상관없이 어쨌든 남편 집안의 대는 끊어지지 않았다 ^^ 몇 년 후 아들이 선물처럼 찾아왔고 우리 가족 모두 대는 이을수 있다는 것에 기뻐한 것이 아니라, 딸도 키워보고 아들도 키워볼 수 있음에 감사했다. 남편은 남자라는 동질성을 아들과 나눌 수 있다는 것과 후에 이것저것 부려먹을 수 있을 것(?) 같다며 무척 좋아했다.)


어린 시절 나는 그야말로 "시"자는 모두 나쁜 사람이고 절대로 가까이해서는 안될 사람이란 나만의  색안경을 끼고 살았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좋은 시부모님도 있고 시댁과 편하게 화목하게 지낼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건 나의 경험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4대 독자랑 살아도 이렇게 맘 편하게 살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다. 그래서 사람은 오래 살고 볼일인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북리뷰' 그래도, 당신이 살았으면 좋겠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