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가 사는 동네엔 비가 엄청 쏟아지고 바람도 엄청분다. 비바람때문에 쓰러진 나무나 흔들린 송전탑이 끊어져 전기가 끊어지는 집도 많고 도로에 신호등도 자주 나갔다. 다행이 여긴 겨울에만 비가 오기 때문에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진 않지만 그래도 현대 사회에서 전기가 없다는 건 생각보다 많은 불편을 초래했다.
1. 당연히 밤에 깜깜하다. 촛불은 아니지만 손전등이나 여행용 전등을 켜놓고 있어야 한다.
2.히터와 온수를 사용할 수 없다. 집은 춥고, 추운 집에서 목욕하고 찬물로 설거지 하는 것이 너무 싫었다.
3. 찬물에 빨래는 꿈도 못 꾼다. 전기가 들어 올때까지 기다린다.
4.찬물로 머리만 감는다 쳐도 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릴 수가 없다. 비도 오는데 하루종일 머리카락이 안 마를 것이다. 생각만 해도 춥고 찝찝하다.
5. TV, 컴퓨터도 안되고 인터넷도 안된다. 할 게 없다. 아이들은 멘붕이 왔다.
6. 전기밥솥도 전자렌지도 에어프라이기도 쓸 수가 없다. 요리시간이 엄청 길어졌다.
7. 냉동실에 얼려놓은 아이스크림과 음식들이 녹을까 걱정이다.
8. 거리의 신호등이 다 나가서 교통체증이 심해졌다. 밖에 나가기가 더 싫다.
8.도무지 뭘 해야할지 몰라서 당황스럽다. 사실 인간은 전기없이도 오랬동안 살았는데 말이다.
나의 어린시절만 해도 한국은 전기가 종종 나갔었다. 촛불을 커놓고 밥을 먹으며 벽에 비치는 그림자로 오빠와 장난을 치고 놀았다. 그땐 오히려 불편하기 보다는 재미있었던 기억이 난다. 인간의 편리를 위해 많은 것들이 발전되어갔지만 오히려 그것들로 인해 사람들은 더 불편해 지고 힘들어 한다. 그 이유는 그 만큼 의존도가 높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가끔 전기가 나가던 그 시절에도 엄마는 빨래를 하셨고 밥도 하셨고 우린 재미있게 놀았다. 전기가 나갔다고 이렇게 당황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오히려 지금 우린 작은 불편에도 힘들어 하고 당황해 한다. 그만큼 능력이 떨어진 건 아니가 싶은 생각도 든다.
인간의 마음은 참 간사한 것이라 없을 땐 없는 줄 알고 살아가지만 일단 편안함을 누리고 나면 다시 없던 시절로 가는 것은 쉽지 않다. 그건 마치 내가 가지고 있던 걸 빼앗긴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나는 전기를 만들어 내는데 들인 노력이 1도 없다. 그냥 운이 좋아 누리는 것들이다. 그럼에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당연히 누려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것을 누리지 못할때 불편하고 짜증이 난다. 그리곤 생각한다. "아.. 그전에 진짜 내가 편안하게 살았구나.."
사람은 없어봐야 있을 때의 소중함을 아는 미련한 동물이다. 그나먀 그렇게라도 깨달으면 다행.. 쏟아지는 비바람 덕분에 내가 누리는 것에 대한 소중함을 다시 깨닫게 해주는 하루하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