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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t therapist Feb 01. 2023

네 이름이 뭐니?


What is your name?

Can I have your name?


미국에 살면서 참 여러 가지 적응이 안 되는 문화들이 많이 있었지만 나에게 가장 힘든 것 중에 하나가 어딜 가나 이름을 물어보는 것이었다. 뭐 공공기관이나 병원 같은 곳은 어쩔 수 없다 생각을 해도, 학교에서 수업을 들을 때도, 아이들 학교에 가서도, 아이들의 친구 부모를 만나도, 호텔이나 식당에서도, 심지어 커피를 주문해도 자꾸 이름을 물어보는 것이었다.



한국에 있을 땐 가족이나 친구처럼 아주 가까운 사이 아니고서는 이름이 부르지 않았다. 초등학교부터 거의 고등학교까지 주로 번호로 불렸다. (지금은 어떤지 잘 모르겠다. ) 선생님이 이름을 기억하는 경우는 아주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나 아니면 반대로 아주 문제학생들만 기억했다. 그러니 이도저도 아닌 나 같은 학생의 이름을 기억하는 선생님은 담임정도뿐이었다.


그리고 사회로 나오면 학생 혹은 아가씨가 전부였다. 혹 나이가 더 들면 직장에서의  직함이나 혹 누구의 엄마, 아내가 편해진다. 식당에 가도 사장님! 이모! 아주머니! 아저씨! 그것마저 없으면 '저기요 ~'이다.  이렇듯 한국은 보자마자 서로의 나이는 물어도 이름을 바로 먼저 물어보는 경우는 많이 없었다. 그런 한국에서 살다가 미국으로 오니 여기저기서 내 이름을 물어보는 통에 정신이 없었다.  왜 내 이름을 알고 싶어 할까? 친하지도 않으면서 어차피 한 번 보고 말 사이인데...라는 생각을 참 많이 했었다.


거기다 영어 이름이 없어서  한국이름을 말할 때면 고역이었다. 어치피 말해줘도 미국사람들이 발음을 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Jung)이라고 하면 중? 덩? 청? 영? 이발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고 아무리 가르쳐줘도 제대로 발음을 하지 못해서 그냥 대충 준이라고 말할 때도 있었다.


왜 이렇게 자꾸 이름을 물어볼까 싶었는데 한 십여 년이 지나면서 그들의 문화가 보이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는 이름을 기억하고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은 상대를 무척 존중한다는 것을 미국 초등학교에서 일하면서 깨달았다. 그리고  그건 매우 인상적이면서 충격적이었다.  거기서 만나는 사람들의 이름을 대부분 기억해야 한다고?


나에겐  첫 직장에서 미국인들을 상대로 일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아이들의 이름과 선생님 그리고 그 부모들의 이름을 다 기억하는 것이 참 고역이었다. 이메일을 보내도 00 어머님께 아버님 혹은 그냥 몇 반 선생님 께라고 보내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꼭 이름을 붙여서 쓰는 것이 예의였다.  그리고 대부분의 선생님은 자기 반 아이들의 이름을 며칠 안에 다 외우고 있었고 더 훌륭한 (?) 선생님은  그 학년의 다른 반 아이들 이름까지 다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알던 어떤 교장선생님은 정말로  전교 학생들의 이름을 거의 다 외우고 있었다. 그래서 아이들이 등교할 때 지나가는 아이들을 보고 그냥 Hi! Good morning!이라고 하지 않고 Hi! James Hi! Emily라고 인사했다. 그러면 아이들도 Good morning  미시즈 000이라고 답했다.  이들에게 이름은 부른다는 것은 상대를 존중하고 예의를 보여주는 첫 번째 방식이었다. 그래서 처음 만나고 인사를 하면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 상대의 이름을 물어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고 나서 이렇게 이름을 기억해 준다는 것이 얼마나 의미 있는 것인지 지금은 알 것 같다. 지위나 위치 나의 능력이나 재능에 상관없이 이름만으로 기억된다는 것은 정말로 기분 좋은 일이기 때문이다.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우린 어쩌면 조금은 특별한 관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사실 생명이 없는 물건에도  이름을 붙이면 애착이 생긴다. 아이들이 밤낮으로 아끼는 애착인형에도 거의 다 이름이 있고 다 큰 어른 중에도 아끼는 자동차나 물건에 이름을 붙이는 경우도 있다. 옛날에 톰행크스가 나온 캐스트어웨이란 영화에도 보면  윌슨브랜드의 배구공에 '윌슨'이란 이름을 붙여줌으로  주인공은 그를 마치 사람처럼 대하고 대화한다. 그렇게  이름을 붙이는 것만으로 태도가 달라진다. 따라서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고 기억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중요한 것이다.



솔직히 나는 원래 평소에도 이름을 잘 기억 못 하는 편에 속했다. 학년이 바뀌거나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를 올라가고 고등학교에서 대학교로 올라가면 대부분의 선생님 친구들의 이름을 까먹는다. 지금도 초중고 대학교까지 선생님과 교수님들의 성함이 기억나는 분이 한분도 없다. 안타깝게도. 그래서 이름을 기억하고 외우는 것이 매우 곤욕스럽지만 지금은 만나는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특별히 상담하는 가족들의 이름을 잊어버리지 않고 꼭 불려주려고 애쓰고 있다.   그것이 어쩌면 관계의  시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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