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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정미 Mar 15. 2023

긴 병에 효자  없다고? 짧은 병에도 없다

남편의 쇄골이 부러졌다.

나는 현재 보다는 미래에 후회할 일을 만들지 말자주의라 위험한 일, 무모한 일, 충동적인 일들을 잘하지 않는다. 다칠 것 같으면 시작도 않고, 살 빼려고 힘들게 노력하기보다 덜 먹는 걸 선택하는 편이다. 나중에 후회하고 힘들어지는 것이 싫다. 하지만 남편은 과거는 잊었고 미래는 생각하지 않는, 지금 현재의  만족과 기쁨을 위해 사는 사람이라 다소 충동적이다. 위험해 보여도 재미있을 것 같으면 시도하고 나중에 배가 아플지언정 지금 맛있는 건 반드시 먹어야 한다.


몇 주 전 일찍 퇴근을 하고 온 남편과 막내딸 학교 끝날 때쯤  강아지와 함께 산책이나 가자고 했고 나의 만류에도 굳이 전기 자전거를 끌고 나왔다. 그리곤 내가 하지 말라고 했지만 굳이 30킬로에 가까운 큰 개와 함께  신나게(?) 달리다 마치 누가 날라차기라도 한 것처럼 옆으로 넘어졌다. 두 손은 자전거 핸들과 개줄을 잡고 있었고 남편의 100킬로의 무게가 어깨로만 오롯이  받아내었다.


황급히 놀라서 뛰어가 보내 머리도 팔도 어디 하나 크게 찢어지거나 움직이는데 이상이 없어 보여  얼음찜질만 하면서 며칠을 보냈다. 그렇게 며칠을 보냈음에도 통증이. 점점 심해지는 바람에 병원을 찾았고 쇄골이 부러졌음을 발견했다. 쇄골 쪽이라 깁스 같은 것도 하지 못하고 팔보호대만 받아서 집으로 왔다. 자연스럽게 뼈가 붙으면 다행이지만 2주 안에 붙는 조짐이  없으면  수술을 해야 한다는 엄청난 소식만 듣고.


남편의 수술을 막기 위해 당연히 오른팔을 불구가 되었고 그렇게 한쪽 팔을  쓰지 못함으로  인해 생기는  불편함은 수백 가지가 넘는 듯했다.  오른손잡이인 남편에게 오른손이 없어진 남편은 당연히 일상생활에서  무척  불편해지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유난히 자신의 방식 데로 자신이 원하는 데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통제욕구가 강한 사람이라 지금 자신의 육신이 자신의 마음대로 되지 않음에 짜증이 높아졌다. 밥 먹는 것 옷 입고 양말 신는 것, 샤워하고  머리 감는 것, 잠자는 것까지. 그리고 나에겐 나의 사랑스러운 ' 우렁각시'가 사라지는 것이었다.


나에게 남편은 사실 그냥 남편이상이었다. 청소, 설거지, 장보기 같은 것들은 해주던 사람이 사라졌고 그 일들은 오롯이  내 몫이 되었다. 거기다 오른손이 불편한 남편을 위해 옷도 입혀주고 양말도 신겨주어야 했다. 마치 남편 없이 갓난 쟁이 아이 하나 더 키우는 기분이었다. 거기다 예민한 남편은  팔보호대를 이렇게 해봤다가 저리로 했다가 매일매일 요구사항이 달라지니 서로 간에 스트레스가 쌓이는 것이다.


정말 미래를 알 수 없는 긴병도 아니고 길어봐야 6주 정도의 불편함인데 나는  벌써 이렇게 어떻게 4주를 더 버티나 싶다. 사실 옛날에 방송에서 병상에서 꼼짝 못 하는 배우자를 지극정성으로 돌봐주는 아내나 남편을 보면서 남편에게 " 평소에 당신이 나한테 잘해줬으니까, 나도 당신 저렇게 해줄게~" 호언장담했었는데.  지금 나를 보아하니 가능할까 싶다. 내가  남편을 향한 사랑이 고작 이 정도의 어려움에 흔들리다니 스스로에게 실망하는 중이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내가 남편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남편의 사고로 나의 일상이 무너지고 나의 루틴이 깨어진 탓에 생기는 여러 가지 불편한 감정이라는 것을. 이것도 시간이 흘러 익숙해지고  습관이 되면 편안해질 것이다. 그러면 우린 또 거기에 맞춰서 사랑하며 살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긴병에  옆에서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모든 분들은 대단한 것 같다. 진심 존경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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