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에 입학해 아동발달을 배우면서 부모가 얼마나 아이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는지 알았다. 특별히 부모의 양육태도가 일관적이지 않고 부부싸움이 심한 아이들은 정서적으로 불안이 높고 자아 존중감이 낮아진다는 것을 배웠다. 그때 나는 무릎을 탁 쳤다. '아.. 내가 이렇게 불안하고 자존감이 낮은 것은 부모님의 양육때문이었구나!' 라며 확신했다. 그 이후로 다른 육아와 심리서적을 섭렵했을 때도 부모의 양육환경에 대한 이야기는 빠지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불안한 것은 100% 엄마아빠가 나를 잘못 대했기 때문이라고..'그런 부모님을 한동안 원망하기도 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나는 둘째 아들을 낳았다. 그런데 태어나자마자 아들은 큰 애와 너무 달랐다. 기저귀를 갈거나 목욕을 시키기 위해 옷을 벗기면 자지러지게 울었다. 한두 번 그러다 말겠지 싶었지만 꽤 오랫동안 울었다. 그리고 누군가를 구별하고 분별하기 시작할 때부터 낯선 사람 낯선 장소를 싫어했다. 낯가림이라곤 모르고 지난 간 첫째와 달리 아들은 모르는 사람과 눈만 마주쳐도 울었다. 나는 그런 아들을 불안하게 하지 않으려고 최대한 노력했다. 나와 안정된 애착이 형성이 되면 아들의 불안은 사라질 줄 알았다. 그래서 나는 3년 동안 정말 일관적이고 지속적으로 아들을 돌보았다. 그러나 아들의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불안은 단순히 환경적인 요소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상담대학원을 진학한 후 불안은 가족력이 무척 강하다는 것을 배웠다. 직계가족 중에 불안장애를 앓았거나 불안이 높았던 사람이 있었다면 자녀 중에도 불안이 높은 아이가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불안이 높은 부모라면 아이를 무척 불안하게 키울 확률이 높다. 따라서 아들처럼 불안한 유전자를 타고나지 않았더라도 만약 엄마 아빠 중에 불안한 사람이 있다면 아이는 그 부모의 행동이나 모습을 그대로 보고 배울 확률이 높다. 그래서 아이도 불안한 아이가 된다.
상담일을 시작하면서 불안한 아이들을 많이 만난다. 그러면 항상 나는 부모님들에게 질문을 한다. 집안에 불안장애, 우울증이나 불안이 높은 사람들이 있냐고, 그러면 나오는 부류는 대략 이러했다.
1. 직계가족 중에 불안한 사람이 있다. 불안한 부모가 불안한 아이를 낳고 키운다. --> 비슷한 기질로 인해 아이의 불안함이 더 눈에 보여 부모의 불안이 증폭되고 그로 인해 육아가 더 어렵고 힘들다.
2. 불안한 부모가 불안하지 않는 아이를 낳고 키운다. --> 부모의 불안으로 불안하지 않던 아이도 불안하게 키울 확률이 높다.
3. 불안이 높지 않은 부모도 불안한 아이를 낳고 키운다. ---> 불안한 아이의 기질이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해서 당황해하고 어려워한다.
가장 많은 경우가 1번과 2번이 가장 많았다. 그것을 보고 나는 나와 나의 부모님을 돌아보게 되었다. 유전적 소양으로 인한 것인지 그분들의 어린 시절 학대로 인한 것인지 모르지만 부모님들은 불안이 높으신 분들이셨다. (어린 시절엔 그것이 부모의 불안인지 조차 몰랐다.) 나 또한 불안이 높은 아이로 태어난 것이다. 거기다 불행하게도 부모님은 어린 시절 나의 불안을 이해하거나 돌볼능력도 여력도 없으셨다. 그래서 나의 불안은 증폭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즉 나는 기질적으로도 불안한 아이였고 또 환경적으로도 불안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던 것이다. 불안하게 태어났지만 부모님이 조금만 세심하게 돌보아 주었더라면 나의 불안은 조금은 나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자신과 가족 중에 누군가 불안으로 고생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그 사람의 기질이나 어린 시절의 양육태도, 환경적 요소 모두를 파악해야 한다. 단순히 직장의 스트레스나 결혼문제나 학업등의 이유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불안의 시작은 생각보다 훨씬 깊고 오래된 것일 수 있다. 그리고 아이가 유난히 불안하고 예민한 아이라면 나와 배우자에게 그런 기질이 없는지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만약 내가 그리고 배우자에게 그런 모습이 있다면 먼저 어른이 자신의 불안을 잘 다스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자녀의 불안을 가장 효과적으로 치료하는 방법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