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원정미 Aug 22. 2024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에 함몰되지 않았던 이유

불안한 기질을 타고 났고 정서적으로 미숙했던 부모님의 양육태도는 나의 불안을 증폭시켰다. 그로 인해 나는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마음 편하게 있어본 적이 없었다. 나를 미워하는 할머니, 바쁘고 무섭기만 했던 아버지와 우울하고 힘들어 보였던 어머니, 내가 있는지도 모르는 것 같은 학교생활. 집에 있으면 부모님이 싸울까봐 할머니에게 혼날까봐 불안했고 학교에 가면 엄마가 혹시 집을 나가진 않았을까, 할머니와 엄마가 또 우진 않으실까 걱정했다. 그렇게 나의 불안은 나를 집어삼키는듯 하기도 했다. 그래서 우울했고 살고 싶지 않았다. 먼지 같이 쪼그라들바에는 그냥 죽어서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의 불안과 우울은 거기서 멈추었다.


심리치료사가 되고 나는 아무도 모르게 혼자 어린시절 불안증과 우울증을 앓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병이 나를 지배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봤다. 그리고 찾은 나의 결론은 이러했다.


첫번째는 유전적 기질로 인한 수줍이나 불안한 기질은 나이가 먹으면서 조금씩 나아진다.  뇌도 발달하기 때문이다. 전두엽이 발달하기 시작하면 상황판단이나 이해력이 높아지고 그로인해 불안과 공포에 대한 조절도 좀 쉬워진다. 초등학교 저학년엔 학교에서 입도 뻥긋하는 것이 어려웠다. 그래서 한동안 학교에서는 아예 말을 하지 않기도 했지만 나이가 들고 학교생활이 익숙해지면 조금씩 나아졌다. 나에게 학교는 그나마 집보다는 예측가능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시절엔 학교친구가 동네친구가 될 때도 많았다. 요즘처럼 학원을 많이 다니던 시절이 아니라서 시간이 흐르면 아는 아이들이 많아지고 학교에서 한 두명씩 친구가 생기기도 했다. 다른 아이들처럼 인기많고 활달한 성격은 아니였지만 나와 비슷한 조용한 친구 한 두명과 우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나에겐 그 한 두명의 친구들만으로도 충분했다. 그 덕분에 학교생활은 점점 나아졌다.


두번째는 어른이 되고 심리상담을 공부하면서 어린시절 피아노를 배운 것이 나의 불안을 다스리는데 무척 도움이 되었다는 것 알게 되었다. 초등학교 3학년때 사촌동생이 피아노 치는 것이 부러워 피아노를 나도 따라 치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배우는 동안에 우리의 뇌는 다른 것을 생각하지 못한다. 배우는 것을 익히기도 바쁘기 때문이다.  물론 피아노를 하다보면 연습하기 싫을 때도 많았지만, 선생님에게 혼날 것이 겁이 난 나는, 선생님이 시키는 연습량을 꼬박꼬박 지켜서 했고 덕분에 실력이 금방 늘었다. 집안에서나 학교에서나 늘 스스로 '먼지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며 살던 나에게 피아노는 한줄기 빛이 되어 주었다. 엄마가 좋아하던 영화음악, 교회 찬송가등을 치기 시작하면서 나도 뭔가 잘하는게 있구나를 깨닫게 해준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개척교회에서 반주를 하고 학교에서도 음악시간 청음시험을 칠 때 반친구들  반주를 해주면서 '피아노 잘치는 아이'라는 정체성도 가지게 되었다. '아 나는 쓸모없는 존재가 아니라 뭔가 잘하는게 있구나.'라는 뿌듯함을 시작으로 피아노는 자존감을 쌓을 수 있는 주춧돌이 되어준 셈이다.

                                                                          

세번째는 불안한 사람들은 쉽게 경직되고 얼어붙는다. 하지만 그 때 그 불안감과 긴장을 풀어줄 수 있는 건 웃음과 놀이다. 부모님이나 할머니와 있을 땐 집안이 살얼음 판 같았지만, 다행이 그 당시 우리 집에 사촌들이 자주 찾아왔었다. 삼촌네 식구들이 오거나 이모네 식구들이 자주 집을 들락거렸고, 그럴 때마다 사촌들과 신나게 놀았다. 부모님들도 일단 손님이 오시면 싸우는 일이 없었기에 마음 편하게 놀았던 것 같다. 사촌동생들과 마당에서 전쟁놀이도 하고 소꿉놀이도 하고, 동네 골목에서 닭싸움, 오징어 게임, 고무줄 놀이, 술래잡기 총 싸움도 했다가  집에 들어오면 인형놀이, 공기놀이도 하고 같이 떡볶이를 만들거나 라면을 끓여먹으며 놀았다. 후에 비디오라는 신문물(?)이 생기면서 부터는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재미난 영화를 빌려서 함께 깔깔거리며 웃기도 했다. 심리치료사가 되어 지나보니 그 시간들은 나에게 놀이 치료가 되었다는 걸 알았다. 그 시간만큼은 적어도 불안하거나 우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첫번째는 시간이 해결을 해 준 셈이니 그걸 제외한 나머지 두가지가 어쩌면 나의 불안을 증폭시키지 않았던 중요한 요인이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나의 불안을 완전히 다스릴 수 있었다는 말은 아니다. 나의 불안이 더 나빠지는 것을 막아준 안전장치 정도였다.  가끔 만약 그 두가지 마저 없었다면 어땠을까? 상상해 본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공황장애나 불안장애 그로 인한 우울증으로 정말 자살시도를 했을지도 모른다. 그 두가지 덕분에 나의 불안이 나를 완전히 삼키도록 내버려두진 않았다. 그리고 심리상담 공부를 하면서 나는 불안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더 잘 다스리는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앞으로 진짜 불안을 잘 다스리는 방법은 찬찬히 소개하려고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불안은 유전일까? 환경일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