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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정미 Sep 26. 2024

심리치료사가 본 'H마트에서 울다.'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오바마 추천도서등에 이름을 올린 이 책은 소설인 줄 알았지만 작가의 개인적 자서전을 쓴 에세이였다. 에세이였지만 소설만큼이나 다이내믹한 관계와 서사 그리고 이민생활이란 친숙한 소재가 단숨에 스토리에 빠져들게 했다. 


작가의 삶은 정말 버라이어티 했다.  미국시골동네의 유일한 혼혈아시아계 아이로 자라다 심각한 사춘기를 겪는다. 뮤지션이 되고 싶은 자신을 죽어라 반대한 한국엄마를 등지고 몇천 마일 떨어진 곳에서 무명 음악가로 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러다 엄마가 말기암이란 소식에 엄마에게 돌아가 지극정성으로 엄마를 간호한다. 그렇게 엄마를 떠나보내고 한국엄마의 음식을 기억하며 엄마를 추억하며 쓴 노래와 책들이 연달아 대박을 치게 된다. 


나에게 이 책이 특별하게 느껴진 이유는 한국계 미국인의 성공스토리도 아니고 엄마의 잔소리와 억압이 벅차서 집을 떠난 탕아 같았던 딸이 엄마의 암으로 인해 회개(?)하는 것도 아니었다. 작가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이야기를 읽으며 그녀 주변에 일어났던 정신질환을 유발할 수 있는 요인들이었다. (직업병이 발동되는 순간이다. ^^)


작가는 고등학교 때 심각한 우울증을 앓았던 것 같다.  학교등교를 거부했고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는 등의 비행행동을 시작했고 자살 충동이 있었다. 이로 인한 치료도 받았던 것 같다. 작가는 자신의 심각한 사춘기를 단순히 혼혈아로 자란 정체성의 혼란, 사춘기 호르몬의 변화,  엄마의 통제적인 양육태도로 가볍게 치부했지만 내가 보기엔 그렇지 않았다. 


기절적으로도 작가는 까다롭고 다루기 어려웠던 아이였다. 부모가 '너처럼 힘든 아이는 없었다'라고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아마도 아이를 키워본 적 없고 또 학대적인 부모밑에서 자란 아버지와 어머니는 양육하는 동안 내내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그로 인한 갈등도 적잖이 있었을 것이다


친부 또한 과거 심각한 마약/알코올중독 문제가 있었다. 친부가 그렇게 된 데에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는 원가족으로부터 심각한 학대가 있었고 그로인해 아버지는 젊은 시절을 술과 마약에 쩌들어 살게 된다. 다행히 재활치료를 받고 운이 좋아 한국에서 안정적인 직업도 가지고 엄마와 결혼을 하고 미국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부부관계는 그리 원만하지 않았고 아버지는 온라인을 통해 성매매를 하기도 했다. 어린 시절 작가는 그것을 알고도 아버지의 비밀을 어머니에게 함구한다. 어린아이가 이렇게 큰 부모의 비밀을 안고 사는 것은 큰 바위덩어리를 안고 사는 것 만큼 힘들다. 


마지막으로 작가는 여러 가지 면으로 고립이 있었다. 외동딸이었던 작가가 살던 집은 근방에 아무것도 없는 시골집이었다. 함께 동네에서 뛰어놀 친구도 없었고 방문하는 친척도 없었다. 거기서 작가는 무관심한 아버지와 통제적인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어머니의 한국식의 잔소리와 간섭이 그 외로운 동네에서 관심과 사랑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주변에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와 애증의 관계로 얽히고설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런 여러 가지 요소들이 작가가 고등학교를 지나는 동안 폭발하면서 심각한 우울증으로 발현이 되었겠다는 추측을 했다


거기다 작가는 어머니를 잃은 깊은 상실감에 빠진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 애증으로 얽혀있던 애착관계를 제대로 풀어내지 못한채 엄마를 떠나보냄으로 자신의 일부가 죽어버린 느낌을 받는다. 사랑하는 이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인간이 경험하는 가장 큰 고통이자 스트레스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 모든 시기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잘 해져 나왔다. 어머니의 상실로 인해 우울증이 재발하지도 않았고 아버지처럼 중독에 빠지지도 않았다. 그 모든 애도와 상실의 과정에서 자신이 미처 깨닫지 못했던 다양한 모습의 사랑이 자신에게 흘러오고 있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중심엔 엄마가 나에게 해주던 한국음식이 있었다.  


나이가 먹을수록 나 또한 한국이 그립고 엄마의 음식이 그리울 때가 많다. 그때마다 나도 엄마가 해주던 음식을 하곤 한다. 어린 시절 옆에서 엄마가 하시던 요리의 기억을 더듬기도 하고, 때로는 전화를 해서 엄마에게 레시피를 묻기도 한다. 그래서 큰 딸은 한국에 나가서 친정엄마가 해주는 음식을 먹을 때마다 '외할머니 음식에서 엄마랑 비슷한 맛이 난다'라며 말했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에서 살고 있는 딸은 가끔씩 전화해서 나의 한국음식 레시피를 물어본다. 이렇게 음식은 음식이상의 문화와 연결고리를 만들어 주는 힘이 있는 것이다. 그것이 작가에겐 엄마가 죽고 나서도 엄마의 음식만으로 엄마와 하나된 소속감을 느꼈을 지도 모른다.

 

심리치료사로서 개인사를 들여다보면 사연이 없는 집이 없다. 하지만 작가의 삶은 확실히 좀 특별했던 것 같다. 그녀의 변화무쌍한 삶의 여정은 마치 일부러 누가 작정하고 설계한 듯하다. 그런 자신의 특별한 스토리가 활짝 드러날 수 있도록 세밀하게 표현한 그녀의 예술적 감각이 담겨있는 문장이 참 좋았다. 왜 베스트셀러가 되었는지 고개가 끄덕여지는 책이었다. 그녀의 이야기가 곧 영화화된다니 그것도 너무 기대된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4125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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