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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꿈이었던 교수가 되지 못했다

그게 얼마나 다행인지

by 원정미

이번 정착지는 텍사스이다. 텍사스는 알래스카를 제외하고 미국에서 가장 큰 주이다. 크기가 제일 큰 만큼 볼거리가 많고 갈 데가 많았으면 좋겠지만 사실 텍사스는 끝없는 평지로 유명하다. 이곳에서 우리도 딱히 할 일이 없어 고민하고 있던 중에 사촌동생에게 인스타로 디엠이 왔다. "언니 지금 텍사스야? 나 지금 텍사스에 살아~"


나보다 11살이나 어린 동생은 자신의 커리어를 열심히 쌓아서 미국에서 교수가 되었다는 소식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대학이 텍사스 인 줄을 몰랐다. 3년 전 텍사스의 한 대학교에 정치학교수로 부임한 동생은 예쁜 딸도 낳고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동생은 캠핑카여행에 지친 우리 가족을 자신의 집에 초대해 주고 자신의 학교도 구경시켜 주었다. 그녀의 사무실을 구경하면서 마음속에 '나도 교수가 되고 싶어서 미국에 왔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23년 전 나도 미국에 가서 학업을 마치고 교수가 되고 싶어서 미국에 온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교수가 되지 못했다.


3층에서 예쁜 학교정원이 보이는 그녀의 사무실을 보면서 교수가 되지 못한 것이 아쉽지 않았다. 예전의 나였다면 내가 간절히 바란 꿈을 누군가 이루었다면 무척 부러워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지 못한 내 능력 혹은 상황을 비관 내지 불평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나는 부럽지도 후회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일단 나의 능력이나 영어실력으로 교수가 되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을 일찍 깨달았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는 정말 교수가 되고 싶었던 사람이 아니었다는 걸 알아버렸다.


20대 시절 현실을 잘 모르던 나는 미국에서 공부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누구나 교수가 될 수 있는 줄 알았다. 그렇게 교수가 된다면 어린 시절 내내 존재감 없었던 나를 확실하게 증명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나는 정말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를 하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기보다는 나의 능력을 증명해서 부모와 주변인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훨씬 컸을 뿐이었다.


어린 시절에 내가 바랬던 꿈들은 대부분 다 그런 것이었다. 내가 진짜 원하고 하고 싶었던 일들이었다기보다는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고 남들에게 그럴싸하게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이었다. 20대 초반을 지나고 30대 40대를 지내면서 , 또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살림을 살고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된 나는 내가 상상하던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세월과 경험이 쌓이면서 알았다.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진정으로 원한 것은 사랑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안정감과 소속감을 느끼고 싶었다. 그런 사람이 되려면 나는 누구나 다 인정해 주는 교수, 의사, 변호사 같은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하나님을 알고 남편을 만나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사랑을 주고받는 것은 조건이 필요 없는 것이라는 것을 배웠다. 그것을 알고 나서 여전히 나는 정말 교수가 되고 싶은가? 자문했을 때 답은 ‘아니’라고 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 어떤 사람이 되기보다는 그냥 나답게 살면 된다는 것을 알았다. 나답게 산다는 것은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하면서 그 일로 타인을 도울 수 있고 내가 독립적으로 살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했다.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돈을 엄청 벌고 싶은 마음도 없고 누군가의 지나친 관심이나 집중도 늘 불편했다. 사람들과 복닥거리며 일하는 것보다는 혼자 일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사람을 만나도 여럿이 밖에서 어울리는 것보다 소수의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직접 만들어 집에서 대접하는 게 좋았다. 요리나 꽃꽂이, 만들기. 그림 그리기처럼 손으로 하는 일을 항상 좋아하고 잘했다. 조용히 혼자 책을 보고 글을 쓰고 그림그릴 때가 제일 행복한 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를 증명하며 살지 알아도 된다는 걸 알았을 때 나는 나답게 살 수 있었다. 그리고 나답게 살고 있는 지금의 삶이 너무 감사하고 행복하다. 내가 나로 살고 있다는 확신이 타인과의 비교나 열등감에서 자유로워지면서 진심으로 그녀를 축하해 줄 수 있었다.


나의 꿈의 동기가 무엇일까? 내가 그 꿈으로 진정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일까? 내가 몰랐던 내 꿈이면의 실체를 아는 것이 어쩌면 진짜 내 꿈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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