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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동희 May 01. 2021

태평양을 가르는 자존

고구려광전산업 회의실, 경영전략회의중에 최성찬 영업부장이 영업 매출 보고를 하고 있다. 고구려광전산업에서 해외로 판매되는 모든 제품들의 대금 결제는 유로화에 의한 한국의 외환은행 입금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출시 보름만에 부루와 가륵 각 5만세트가 출고돼 재고가 완전 소진되었습니다. 2차 공장의 가동이 빨리 되야할 것 같습니다. 단가 400유로화로 십만대 출고분을 집계하면 현재 매출만 4천만유로로 한화 1,200원 환율로 치면 480억원 상당입니다."


"첫 매출 치고는 쓸만하군요. 달러가치가 계속 하락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 대금결제 방식을 유로화로 정하길 잘했어요. 2차 공장은 곧 가동할 수 있겠지만 월 30만개 생산이 가능하겠어요?"


남궁석 대표가 출고 요구량 대비 생산 수량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월 30만개가 아니라 최소한 2백만개씩은 찍어내야 합니다. 당장 발주 받은 물량만 7백만개가 훨씬 넘습니다. 그 보다 삼성전자에서 휴대폰용 구을을 월 백만개씩 1년치 선주문이 들어왔습니다. 이를 소화해 내려면 큰일입니다."


"좋습니다. 정확한 월별 예상치를 보고해주세요. 공장 증설은 박철웅 위원장님하고 상의해 보겠습니다. 이거야 원 북한에 안쓰는 군수공장이라도 알아봐야겠습니다."


시장 요구 수량을 단순 계산으로만 따져도 부루와 가륵이 합해 월 2백만개씩 1년이면 2,400만개로 96억유로화이고, 삼성전자가 요청한 구을은 단가 36유로화씩 1,200만개면 년간 3억6천유로화로 전체를 합산해 한화로 계산하면 12조원가량이 되는 천문학적인 금액이다. 


"그나 저나 AMD CEO 헥터 루이즈가 백기 투항을 했어요. 기존 AMD 전세계 영업 채널을 이용해 우리 제품을 공급하겠다는 요청이 들어왔는데 최부장 생각은 어때요?"


"그쪽 제안도 타당하긴 한데 꼭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어짜피 그쪽 하위 채널들이 저희쪽으로 넘어오고 있는 상황이고 유통체계만 더 복잡해질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요 그럼 그 문제는 최부장 판단대로 처리하도록 합시다."


서해 홍도 근해 영진호, KBS '6시 내고향'팀이 홍어잡이의 대가 심동열선장의 16톤급 영진호에 동승해 촬영을 하고 있다. 선장과 선원들은 미리 설치해 놓은 걸주낚이라는 어구를 걷어 올리며 신나게 홍어를 낚아 올리고 있다. 이 때 바다 한 복판에 고래만한 시커먼 물체가 튀어 오르더니 북쪽을 향해 불꽃을 매달고 날아 간다. 모니터를 지켜보고 있던 최승민 PD가 카메라맨의 어깨를 치며 소리를 지른다.


"야! 저거 뭐야 저거 잡아."


"우와! 고래가 날아가네."


어깨에 메고 있던 카메라를 들어 날아가는 고래를 잡는 순간에 바다속에서 또 하나의 물체가 튀어 오른다. 이렇게 연속 세개의 물체가 튀어 올라 꼬랑지에 불꽃을 피어 올리며 북쪽 하늘로 사라졌다. 


"저거 미사일 아니야?"


"그런 것 같은데. 최PD님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최승민 PD가 휴대폰을 꺼내 112를 누른다. 홍도에서 너무 멀리 나왔는지 휴대폰이 터지질 않는다. 이때 심동열 선장이 최승민 PD에게 따라오라는 손짓을 하며 조타실로 들어간다. 심동열 선장이 무전기로 해경을 부른 다음 최승민 PD에게 마이크를 건네준다.


"여기 흑산도 앞 바다인데요. 미사일로 보이는 물체 3개가 바다에서 튀어 나와 북쪽으로 날아갔습니다. 이거 조사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아 예 알겠습니다. 거기 좌표 좀 불러 주세요."


"선장님 여기 좌표값."


"34점 59에 124점 29입니다."


"예 잘 알겠습니다. 확인 후 연락 드리겠습니다. 신고 고맙습니다."


"라디오 한번 틀어 보세요."


기상정보를 듣기 위해 배에 비치된 라디오를 틀어 KBS 뉴스 전문 채널로 고정시겼다. 바다이야기에 대한 사건 소식만 주구장창 흘러 나올 뿐 별다른 소식은 없었다. 아무래도 잠수함의 미사일 발사 훈련이었던 듯 싶다. 별일 아닌 가 싶어 다시 촬영에 열중하고 있는데 아나운서가 긴장된 목소리로 뉴스특보를 알려 왔다.


'긴급 뉴스입니다. 최근 제품 발표회를 가졌던 고구려광전산업 개성 공장이 세 차례에 걸친 폭발음과 함께 화염에 휩싸였다는 소식입니다. 다시 한번 알려 드립니다. 고구려광전산업 개성 공장이 폭발음과 함께 공장 전체가 화염에 휩싸였다는 소식입니다. 자세한 소식은 들어오는대로 다시 보내드리겠습니다. '


"뭐야? 혹시 아까 그것들 아니야?"


최승민 PD가 미사일이 떠 올랐던 바다를 바라보며 중얼거리고 있는데 비행기 엔진 소리가 울리며 대형 수송기 한대가 모습을 드러 낸다. 한국 해군의 P-3C 오라이언 대잠 초계기다. 오라이언이 해역에 도착하자 마자 신고된 좌표값을 중심으로 넓직하게 소노부이를 투하하며 포위망을 형성한다. 졸지에 영진호까지 그 포위망에 갇혀버린 꼴이 되었다. 곧 이어 헬기의 로터음이 울리며 수퍼링스 대잠헬기가 다가 온다. 대단히 빨리 전개된 해군의 대잠 작전이다. 헬기에서 확성기 소리가 들려 온다.


"영진호! 영진호 맞습니까?"


심동열 선장이 그렇다는 사인을 보낸다.


"홍도쪽으로 물러 나십시요."


영진호가 부리나케 시동을 걸어 홍도 방향으로 선수를 돌려 내 달린다. 카메라맨이 비틀거리며 계속해서 해군의 대잠 작전 모습을 담고 있다. 어느 정도 물러난 영진호에서 최승민 PD가 선장에게 정선을 요청한다.


"선장님! 스톱, 야! 카메라 다 찍고 있지?"


"예 최 PD님 다 잡고 있습니다."


로스엔젤레스급 공격원잠 파사데나, 서해 해저 100미터 정도의 수심속을 시속 5노트의 속도로 한국 영해에서 서남 방향으로 조용히 빠져 나가고 있는 괴물체가 있다. 미 해군의 로스엔젤레스급 공격 원자력 잠수함 파사데나호다. 수중배수량 6,927톤에 원자로에 의한 기관출력 35,000마력을 자랑하는 괴물이다. 잠함 심도 950피트에 수중 항주 속도는 30노트 이상이다. 21인치 어뢰발사관 4기와 토마호크용 수직발사관 16기를 갖추고 있다. 


"전방 착수음!"


음탐장이 나즈막한 소리로 보고를 한다.


"함장님! 소노부이입니다. 사방에 투하되고 있습니다."


음탐장이 다급한 소리로 연속 보고를 하고 있다.


"뭐야 걸린거야? 기관정지. 최저수심으로 침좌한다."


은밀히 항주를 하던 원잠이 엔진을 끄고 밸러스트에 해수를 주입시키며 천천히 가라 앉는다.


한국 해군 P-3C 오라이언 대잠 초계기, 승무원 12명이 탑승해 최대 통상 12시간까지 임무 수행이 가능하다. 무장으로는 하푼 대함 미사일, 매버릭 지대지 미사일을 탑재하고 대잠용으로 MK-46어뢰와 폭뢰를 탑재하고 있다. 음향조작사는 DIFAR를 이용해 최대 31개의 소노부이에서 보내오는 음향을 동시 분석할 수 있다.


"5.6번 소노부이 접촉! 엇! 접촉 상실했습니다."


"숨고 있구만. MAD 탐지로 들어간다."


오라이언이 기체를 최대한 수면과 밀착시키며 의심지역을 선회하며 MAD(자기 감음 장비) 탐색에 들어 간다.


"걸렸습니다. 해저에 배를 깔고 누워 있습니다. 무지하게 큰 놈인데요."


링스 헬기가 사자의 먹이를 노리는 하이에나처럼 오라이언의 기동을 지켜보고 있다. 멀리서 서해함대 소속의 함정들이 달려 오고 있다. 오라이언의 부기장이 탄 박스에서 수류탄을 꺼내 안전고리를 제거한 후 창문을 열고 바다속으로 수류탄을 투척 한다. 잠수함 발견시 부상시키기 위해 경고용으로 사용하는 수류탄이다.


로스엔젤레스급 공격원잠 파사데나, 서해 바다속에 배를 깔고 누워 침묵을 유지하며 패시브 소나로 해상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아까 스큐류음으로 봐선 근처에 어선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철저하게 확인하지 않았나?"


"그때는 그랬지만... 엇! 미약한 착수음입니다."


"뭐야?"


그 순간 머리 위에서 '쾅!'하는 폭발소리가 들리며 잠수함 선체에 진동이 전해 진다.


"수류탄입니다. 부상 경고입니다."


"자식들 웃기고 있네 겨우 수류탄으로 까불고 있어. 완전히 바닥에 붙인다."


"더 이상 내려갈 수 없습니다."


서해는 수심이 낮아 해저 150미터 이상은 무리다.


한국 해군 P-3C 오라이언 대잠 초계기, 경고를 무시하고 그대로 누워 있는 잠수함 위로 당장이라도 어뢰를 떨어뜨리고 싶지만 본부의 작전 지시를 받아야만 한다. 제2함대 사령부의 KNTDS(해군작전지휘통제시스템)의 지휘를 받아 행동해야 한다.


"본부, 미 확인 잠수함. 부상 경고 무시하고 있다."


'폭뢰로 몇번 더 경고하고 대기하라.'


"폭뢰 투하한다. 심도 50에 고정하라."


'장전했습니다.'


"투하!"


'투하.'


로스엔젤레스급 공격원잠 파사데나, 일반적으로는 여러대의 잠수함이 함께 공동 작전을 하거나 아니면 수상 함정들과 보조를 맞춰 작전을 전개하는것이 통상적이지만 특수임무를 수행하는 비밀 작전이기에 원군을 청할 수도 없었다. 미 해군의 자존심이 바다 속에서 뭉개지고 있는 형편이다. 


"폭뢰 착수음입니다."


바다위의 상황을 속속들이 탐지하고 있는 음탐장의 속만 탔다.


'쿠구궁!'


이전보다 더 요란한 폭발음이 선체를 때림과 동시에 그 파동이 밀려와 잠수함을 흔들어 댄다. 실내등이 깜박거리고 여기 저기서 승조원들의 비명 소리가 들린다.


"함장님! 결정하셔야 합니다."


"좋아 빠져 나간다. 심도 100으로 부상, 기관 출력 최대!"


나즈막한 복창 소리가 반향되어 들려 온 후 육중한 잠수함이 기우뚱하며 서서히 떠 오른다. 어느 정도 수심이 유지된 상태에서 같은 방향으로 미끄러지듯 흘러 나간다.


한국 해군 P-3C 오라이언 대잠 초계기, 소노부이를 모니터링하던 음향관이 소리를 지른다.


"잠수함 부상, 서남방향으로 도망갑니다."


"링스 헬기, 디핑 소나 내리고 따라 잡아라."


'알았다 오라이언. 우리가 간다.'


"잠수함 음문 확인했습니다. LA급 파사데나입니다."


"미국놈들이야?"


"저놈들이 개성공단에 순항미사일을 발사한 놈들 아닐까요?"


개방된 무전으로 들려 오는 오라이언의 주문을 받은 링스 헬기가 기다렸다는 듯이 디핑 소나를 내리며 오라이언이 찍어 준 수역으로 진입한다. 그 사이 예상 탈출로로 진입한 오라이언이 폭뢰를 하나 더 투하한다.


로스엔젤레스급 공격원잠 파사데나, 한국 해군의 경고 위협을 받던 파사데나가 속도를 높이며 도망을 치고 있다.


"전방에 폭뢰 투하입니다."


음탐장이 경고를 발한다.


"우현으로 45 심도 50, 기관 출력 최대, 전속력으로 빠져 나간다."


육중한 덩치의 파사데나가 침로를 급격하게 바꾸며 속도를 최대로 올린다.


'쿠궁!'


아까 보다는 지근거리에서 폭발음이 울리며 그 충격파가 그대로 선체를 때린다. 선체가 심하게 흔들리며 승조원들이 바닥을 나 뒹근다. 잠수함의 특성상 위에서 받는 충격보다 옆에서 때리는 충격이 더 치명적이다. 직접적인 전투가 없었던 파사데나의 승조원들이 사색이 되어 덜덜 떨고 있다. 머리 위에서는 링스 헬기가 내려 놓은 디핑 소나가 기분 나쁜 음을 울리며 죽음을 재촉하는 노래를 부르는 것 같다.


"함장님! 초장파 전문입니다."


함장이 아군의 통신이 아닌가 하여 부리나케 통신실로 뛰어 들어 간다.


'파사데나는 완전 포위되었다. 함장은 부디 지혜로운 결정을 하기 바란다. 림팩의 우정을 생각해 1분간 여유를 주겠다.'


경고 멧세지다. 경고 정도가 아니라 함장의 결정 여하에 따라 죽음이 될 수도 있는 전문이다. 


한국 해군 P-3C 오라이언 대잠 초계기, 오라이언이 해군 본부에 잠수함 기종을 보고하고 훈령을 기다리고 있다. 개성 공단을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어뢰를 투하해 격침시키고 싶은 마음 간절하지만 참을 수 밖에 없었다. 멀리 보이는 구축함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 오르며 미사일이 발사 된다. 하나 둘... 총 8기다. 이쪽으로 달려 오는가 했더니 넓게 분산되어 홀라당 겉 옷을 벗어 버리고 물 속으로 풍덩 풍덩 뛰어 들어 간다.


로스엔젤레스급 공격원잠 파사데나, 붉은 등만 들어와 있어 정육점을 연상케하는 파사데나 선실내에 침묵이 흐른다. 모두 들 함장의 얼굴만 주시하고 있다. 침묵을 깨는 음탐장의 비명 소리가 들려 온다.


"함장님! 아스록입니다. 아 아니 한국형 청상어입니다."


"함장님!"


부함장이 다급하게 함장을 부른다. 이런 와중에도 물 속으로 빨려 들어간 청상어들이 미리 주입된 목표물인 먹잇감을 향해 45노트의 속도로 일제히 달려들고 있었다.


"부상한다."


개성 공단 고구려광전산업 공장, 최신식 광중앙처리장치 생산 시설이 토마호크 미사일에 의한 피격으로 아수라장이 되어 있다. 경기도 소방재난본부의 파견대인 개성공단 출동대와 파주소방서 그리고 북한의 개성시 소재 소방차들의 긴급 출동으로 어느 정도 불길은 잡았지만 아직도 매케한 연기로 일반인들의 공장 접근을 차단하고 있다. 2층 구조의 대형 건물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주저 앉았다. 한창 일할 시간이라 근무하던 대부분의 근로자들이 피격 된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소방 도끼와 절단기등을 든 대원들이 숫검뎅이와 땀이 범벅이된 얼굴로 걸어 나온다.


"대장님! 시신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모니터로 보고 있네만. 너무 심각하구만."


"어떻게 할까요."


"일단 잔불을 마저 진압하고 다시 한번 수색을 합시다."


서해 평택항 제2함대 사령부, 부두로 걸어 나온 2함대 사령관 김중련 소장과 참모들이 멀리서 구축함들 사이로 미국의 LA급 원잠 파사데나호가 예인되어 끌려 오는 모습을 쌍안경으로 지켜보고 있다. 사령관의 뒤로는 해군 헌병들이 단독 군장으로 도열해 있다. 파사데나의 함장과 부함장등의 참모진들은 이 보다 앞서 참수리급 고속정으로 구인되고 있다. 이들중에는 민간인도 한 명 보인다. 부두에 도착한 참수리 고속정에서 파다데나 함장과 참모들이 하선해 김중련 소장 앞으로 걸어가 부동자세로 선다. 


"짐 레니 중령이 맞던가요?"


"예. 사령관님."


김중련 소장이 짐 레니라 호명된 파사데나 함장에게 악수를 청한다.


"이런 식으로 만나게 되어 유감입니다."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함장, 당신과 당신 부하들은 우리 헌병대에서 잘 예우할거요."


동맹국 함장이라는 위치 때문에 사령관이 부두까지 나왔지만 어색한 만남에 어색한 인사로 대할 수 밖에 없다. 사령관이 간단하게 인사를 끝낸 후 곧 바로 헌병들에게 인계한다. 헌병들이 미 해군 장교들을 인솔하는 사이 국정원과 국군 기무사 직원들을 태우고 온 헬기가 내려 앉고 있다.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시시각각 올라오는 개성공단 피격 관련 보고로 인해 대통령이 울그락 불그락한 얼굴로 절치부심하며 손가락 마디를 꺽고 있다. 


"개성에는 계속해서 연락하고 있어요?"


"예 그렇습니다만 경영진이 아직까지 통신 두절 상태입니다."


이 때 비서실과 연결된 인터폰이 울리며 비서진의 목소리가 흘러 나온다.


'대통령님! KBS에서 뉴스 속보가 나오고 있습니다.'


비서실장이 급하게 걸어 가 텔레비젼을 켜고 KBS 1TV에 채널을 맞춘다. 속보로 진행되는 TV 화면에는 '미국 순항미사일 토마호크'라는 자막과 함께 바다속에서 미사일이 떠 올라 불길을 뿜으며 날아가는 화면에 이어 한국 해군의 오라이언과 헬기가 대잠작전을 수행하는 장면이 흘러 나온다. 해군 구축함에서 청상어를 발사하는 장면과 긴급 부상한 잠수함에서 미국 해군의 승조원들이 해치를 빠져 나오자 마자 두손을 머리위로 올린 채 집결하는 장면도 아리아리하게 흘러 나온다. 


'오늘 개성 공단의 고구려광전산업 화재 사건은 서해에서 발견된 미 확인 잠수함에 의한 순항 미사일 공격에 의해 발생 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시청자께서 보시는 화면은 KBS 최승민 PD팀이 흑산도 근해에서 홍어잡이 촬영을 하다가 포착한 화면입니다. 순항 미사일을 발사한 잠수함은 우리 해군의 대잠 작전에 의해 나포돼 평택항으로 예인 된 것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정부 발표와 함께 계속 속보로 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KBS만의 특종 화면이 반복해 흘러 나왔다. 화면을 지켜보는 대통령이 두 주먹을 불끈 쥔다. 해군사령부에서 국방장관을 통해 들어오는 보고 내용과 일치하고 있었다. 이때 북한측과 연결된 핫라인 전화가 울어 댄다. 대통령이 잰 걸음으로 달려가 전화를 받는다.


"예 대통령입니다."


"대통령님! 박철웅입니다."


"아! 위원장님 무사하셨군요. 연락이 안돼 걱정했습니다. 다른 직원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무사합니까?"


속이 새까맣게 탄 대통령이 속사포같이 질문을 퍼부어 댄다. 박철웅 위원장의 목소리는 상당히 굳어 있어다. 


"예 걱정 많이 하셨지요. 다들 무사합니다."


"다들 무사하다니 다행입니다. 다행이예요."


"텔레비젼 속보 보셨습니까?"


"예 지금 보고 있습니다."


"그 내용이 사실인가요?"


"보고에 의하면 대부분 사실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어찌 이리도 계속 깡패짓을 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깡패는 힘으로 마주쳐야 합니다. 굽신거리다가는 계속 맞아 터지고 갈취 당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쪽도 마냥 당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힘이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우연한 기회에 독도사태처럼 잠수함을 나포하기는 했는데 그 다음 외교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 지 저로서는 난감합니다."


"알겠습니다 대통령님. 저희쪽에도 생각이 있습니다. 그럼 다시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대통령이 뭔가 더 궁금한게 많았는데 저쪽에서는 벌써 전화를 끊었다.


미국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실, 개성 공단의 시설물들을 폭격해 일단은 주저 앉혀 놓았지만 이들도 똥 싼 후 깔고 앉은냥 껄쩍찌근하다. 그도 그럴것이 은밀하게 잠입해 순항미사일을 발사하고 빠져 나오다 한국 해군에 덜커덕 걸려 버린 것이다.


"국방장관! 무슨 일을 이 따위로 처리합니까?"


"할 말이 없습니다."


"우리 원잠이 이 정도입니까? 이거야 원."


"인텔과 마이크로소프트의 주가가 다시 반등하면서 기사회생하고 있습니다. 일단 반은 성공했다 할 수 있으니 잠수함건은 외교적으로 저들을 굴복시키는 수 밖에 없습니다."


미국 국방장관이 작전 실패를 회피하며 은근 슬쩍 외교로 화제를 넘기려는 투다.


"순항미사일 발사 장면까지 포착됐어요. 이런 상황에서 외교가 통한다고 생각하세요? 폭격을 하든지 전쟁을 하든지 당신들 마음대로 하세요."


미 국무장관이 매 눈을 뜨고 국방장관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 본다.


"자 자 일단 벌어진 일, 한국측 대응을 지켜 봅시다."


"한국뿐만이 아닙니다. 개성은 북한 영토예요. 남북한을 동시에 상대해야 한단 말이예요."


국방장관이 멋 쩍은 표정으로 귓밥을 만지고 있다. 국가안전보장회의 의장인 미국는 그저 이들의 언쟁을 멀뚱히 지켜 볼 뿐이다. 이때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총장이 뛰어 들어 온다.


"개성 공단에서 고구려연방준비위원회의 특별 발표가 있답니다. TV를 봐 주십시요."


사무총장이 PDP TV를 켜는 사이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전체 위원들이 회전의자를 돌려 CNN 방송을 주시한다. 


'여기는 몇일 전 미사일의 피격으로 대파된 고구려광전산업이 있는 개성의 무역박람회장입니다. 고구려연방준비위원회 박철웅 위원장이 중대 발표를 한다는 소식이 있습니다.'


미국인 기자 신분으로 평양을 방문해 취재한 경험이 있는 CNN의 마이크 치노이 아시아 특파원이다. 마이크 기자가 오프닝 멘트를 하는 동안 아직도 간간히 연기가 피어 오르고 있는 고구려광전산업 공장의 모습이 배경화면으로 올라 온다.


'지금부터는 고구려연방준비위원회의 요청에 의해 남북한이 공동으로 편성한 폐쇄 채널로 직접 접속해 보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마이크 기자의 멘트가 끝난 후 남북한 공동으로 전세계 뉴스 채널을 이용해 일방적으로 송출하는 방송이 시작된다.


"대한민국 대통령 문성극입니다. 우선 미국의 순항미사일 폭격으로 희생된 영령들에 대한 애도의 묵념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전 세계인들이 지켜 보는 가운데 순수 국악으로 작곡된 묵념 음악이 살을 저미 듯 애통한 곡조로 울려 퍼진다. 


"고구려광전산업은 남북한 온 겨례의 평화를 염원하는 상징적인 기업입니다. 남북한 뿐만 아니라 전세계인들에게 정보통신산업의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기업입니다. 왜 이런 순수한 목적의 기업이 폭격을 당하고 불에 타야 하는지 저희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곳은 저들이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는 핵폭탄이나 화학무기와 같은 대량살상무기를 제조하는 공장이 아닙니다. 이렇게 순수한 정보통신 부품을 생산하는 고구려광전산업이 불에 타야 하는 이유를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더욱이나 세계의 경찰국가를 자임하며 우리의 우방이라 여겨졌던 나라의 소행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명명백백한 증거 앞에서 작금의 현실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대통령이 잠시 말을 끊는 사이 서해 바다속에서 뛰쳐 올라와 날아가는 토마호크 순항 미사일과 개성 공장이 피격을 받아 불타는 장면 그리고 LA급 파사데나 원잠이 추격당하다 나포되는 장면이 소상한 영문 자막과 함께 생생하게 흘러 나온다.


"대한민국은 지금부터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철회합니다."


대통령의 마지막 선언과 함께 고구려연방위원회의 박철웅 위원장이 바톤을 건네 받는다. 대통령의 애통한 얼굴과는 달리 대단히 비장한 표정이다.


"미국 인민들에게 고합니다. 미국 정치인들의 오만방자는 이미 도를 넘었습니다. 미국 정치인들은 이번일을 포함 한 여러번의 우리 민족을 겨냥한 테러에 대해 모든 책임을 져야 하고 미국 인민들은 그 책임을 함께 통감해야 합니다. 지금부터 발생되는 일들은 당신들 미국인들이 먼저 시작하고 자초한 일임을 가슴 속에 새기고 반성하며 받아들여야 합니다."


전세계로 방영되는 TV 화면에 3대의 대형 차량에 장착된 비행기처럼 날렵하게 생긴 미사일들이 나타난다. 박철웅 위원장의 발언이 이어 진다.


"이 미사일은 앞으로 1분 후 미국 주요 지역을 향 해 발사됩니다. 이 미사일은 스크램제트엔진으로 가동되어 마하 9.8의 속도로 비행하는 대륙간 순항미사일이며 인명살상을 최소화하기 위해 고폭탄만을 탑재하였습니다."


박철웅 위원장의 설명이 시작되는 순간에 대륙간 순항 미사일의 연료분사장치가 점화되어 불을 뿜으며 금방이라도 날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박철웅 위원장이 잠시 말을 멈춘 사이 기다렸다는 듯이 동쪽 하늘을 향해 긴 꼬리를 남기며 솟아 올라간다.


"미국 인민들의 대피를 위해 탄착지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미국이 우리 공장에 순항미사일 세발을 발사한 것 처럼 우리도 세발만 발사했습니다. 방금 발사 된 대륙간 순항미사일의 첫번째 목표는 산타클라라의 인텔 연구소입니다. 두번째 목표는 아틀란타 소재의 코카콜라 공장입니다. 마지막으로 세번째 목표는 당신들 미국이 자랑하는 자유의 여신상입니다. 지금부터 40분에서 1시간의 여유가 있습니다. 자국의 미사일방어체계를 믿는다며 대피하지 않아도 될 것 입니다."


TV 화면은 동해로 사라지는 대륙간 순항미사일의 마지막 모습을 보여 주면서 화면의 한쪽 구석에 세계지도를 보여 주며 미사일의 실시간 궤적을 그래프로 표시하고 있다. 미사일들은 벌써 일본 영공으로 진입하고 있다.


미국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실, 흔한 헐리우드 영화가 아니다. 미사일이 발사되자 마자 모두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뭔가에 홀린 듯 TV화면을 지켜보고 있다.


"국방장관 뭐해요?"


미 국무장관이 먼저 이성을 차린 듯 국방장관을 불러 세운다.


"MD 가동시켜야 하지 않아요?"


다시 한번 앙칼진 여성의 음성이 터져 나온다. 그제서야 미 국방장관이 부리나케 뛰어 나간다. MD는 상시 미사일 방어 체계이기 때문에 국장장관이 명령으로 가동시킬 사안이 아니다. 미국 미사일방어국(MDA)에서 자동 대응할 일이고 군사첩보위성이 이미 포착하고 있어야 한다. 일본쪽에서 먼저 움직였다. 고도 3만5780킬로미터의 정지 궤도의 적외선 탐지위성(DSP)이 대륙간 순항 미사일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꽃을 감지한 후 일본 가와가나현 요코스카 기지에 기항하고 있던 미국의 이지스함인 샤일로함에 링크를 건네 주었다. 샤일로함에서 6기의 SM3 순항미사일에 예상 궤적을 입력시켜 발사했지만 따라 잡지도 못하고 연료가 떨어지며 태평양으로 추락하고 만다. 


미국의 미사일 방어 지휘본부인 북미방공사령부(NORAD)에 비상이 걸렸다. 여기서 대응하지 못하면 마지막이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발사한 순항미사일이 벌써 태평양을 건너 접근하고 있었다. 캘리포니아주에 위치한 반덴버그 공군기지에서 최신형 요격 미사일이 솟구쳐 올랐다. 태평양 상공으로 발사된 발사체가 순항미사일의 궤도로 진입해 따라 잡으며 거의 비슷한 속도로 나란히 주행한 후 지근거리에서 자폭해 적국의 미사일을 요격하는 시스템이다. 요격 미사일이 10킬로미터 지근거리까지 접근하자 순항미사일이 진로를 바꾸며 지그재그 운행을 시작한다. 대륙간 순항 미사일에 자체 탐지 레이더가 달려 있어 자동으로 회피기동을 하고 있다. 미사일들의 궤적을 지켜보고 있던 북미방공사령부 요격 요원들의 얼굴이 노래졌다. 이걸로 끝장이었다. 표적을 잃은 요격 미사일들이 미국 영공에서 자폭을 한다.


이미 미국의 CNN과 지역 방송사 카메라들이 근처 안전 지역의 빌딩 옥상에 올라가 북한이 지정한 목표물들을 비추고 있다. 미국 영공으로 깊이 들어선 순항미사일들이 제각기 먹이감을 찾아 흩어지고 있다. 그 중 한대가 방향을 틀어 내려 오면서 연구원들이 모두 소개된 산타클라라의 인텔 연구소에 직격해 고구려광전산업 공장이 당한 복수를 하듯 작열한다. 두번째 미사일이 정확히 5분을 더 비행한 후 올림픽이 열렸던 남부 아틀란타 시내로 틀어 박힌다. 전세계 어린이들의 치아를 갈아 먹으며 부를 축적한 코카콜라 공장의 한 가운데로 직격해 일순간에 공장 설비를 초토화 시켰다. 마지막 미사일이 장시간의 여행에 지쳤는지 뉴욕의 리버티섬으로 내려 앉으며 자유의 여신상 오른손의 횃불과 왼손의 독립선언서를 해체시키며 뿌리채 갈아 엎었다. 초강대국 미국의 자존심이 송두리째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다.


다시 텔레비젼 화면은 개성의 박철웅 위원장을 비추고 있다. 배경 화면에는 연료를 주입하고 있는 수십미터짜리 대륙간탄도미사일들을 번갈아 보여 주고 있다. 


"지금 보고 있는 미사일은 대륙간탄도탄입니다. 탄두에는 핵이 장착되어 있을 수도 있고 화학탄이 장착되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대륙간탄도탄뿐만 아니라 미국 동 서부 해역에 우리의 원자력 잠수함이 중거리탄도탄을 장착하고 매복해 있다는 것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미국 정부가 혹시라도 오판해 침략할 것을 대비해 우리 민족 7천만과 2백만 강군의 전투준비태세가 완비되어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다시 한번 당부 드리지만 미국 인민은 우리 민족에 대해 자행한 미국 정부의 테러를 더 원망해야 합니다. 이번엔 이 정도로 마무리하지만 우리 민족과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동포들을 겨냥한 미국의 향 후 어떠한 테러에 대해서도 백배 천배 응전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경고합니다."


미국 군부가 대응을 해 온다면 전면전이 벌어질 수도 있는 일촉측발의 위기 상황이지만 박철웅 위원장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그 보다 세계인들이 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상황을 주시하는 분위기다. 북한발 순항 미사일이 떨어진 뉴욕과 아틀란타 그리고 산타클라라에 거주하는 미국 시민들은 거의 공황 상태가 되어 거리로 몰려 나와 반전을 외쳤다. 미국 내 다른 도시들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이미 TV를 통해 자국이 일으킨 테러에 대한 실상을 알게 된 미국 시민들은 반전 시위를 뛰어넘어 정치권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었다. 일부 지역에서는 폭동이 일어나 백인들의 대형 상점을 약탈하는 사태가 발생하면서 미국 전체가 전시와 다름없는 소요에 휩싸였다. 하지만 LA와 뉴욕등에 있는 한인타운에는 개미 새끼 한 마리 접근하지 않았다.



미국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실, 군부 요인들까지 불러 들여 국가 안전보장회의를 속개하고 있다. 미국 시민들의 정신적 공황 상태로만 놓고 본다면 미사일 몇 발에 미국이란 초일류 군사대국이 완벽하게 패배한 것이나 다름 없었다. 북한의 벼랑끝 전술식 심리전의 파고는 해일로 밀어 닥쳤다. 몇 년전의 서울 불바다 발언과 같은 협박이 아닌 실제 전면전도 불사하겠다는 강경책에는 두 손 들 수 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최강의 첨단 군사력을 세계 어디든지 투사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미국 군부마져 백기를 든 것은 아니었다. 회의실의 무거운 분위기를 깨듯 합창의장이 자리에서 일어 선다.


"북한이 저렇듯 강경하게 나오지만 우리가 핵으로 대응하지 않는 이상 저들도 핵 미사일을 발사할 수는 없을 겁니다. 태평양 함대와 잠수함만으로도 북한을 포위 공격할 수 있고 본토와 괌에서 B-2 폭격기를 뛰울 수도 있습니다. 30일 내에 이라크전과 같이 초토화시킬 수 있습니다. 개전 명령만 내려 주십시요."


"합참의장! 남한이 어떻게 나올 것 같소?"


미 국무장관이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남한의 군사적 예상 대응을 질문한다.


"남한이라면 우리 군사 동맹국 아닙니까?"


"이 보세요. 남한이 우리와 군사 동맹인건 사실이지만 이젠 남북한이 단일체제나 마찬가지예요. 아무리 군인이라지만 공부 좀 하세요. 지금이 50년대인줄 아세요?"


남한에 군사 정권이 있을때라면야 일본과 함께 북한을 공략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니 프에블로호 나포나 판문점 미루나무 사건때 처럼 북한을 침공할 기회가 몇 번 있었지만 그 때마다 러시아와 중국의 견제로 위험한 결정을 보류해 왔었다. 듯다 못한 국무장관이 합참의장을 무시하고 미국 대통령을 향 해 돌아 앉으며 발언을 한다.


"이 정도에서 사태를 수습해야 합니다. 설사 군사적으로 우리가 우위에 있다 하더라도 북한과 전면전을 벌일 수는 없습니다. 전쟁 이전에 우리 정부가 시민들에 의해 먼저 전복될 수도 있는 정치적 위기 상황입니다. 용단을 내리셔야 합니다."


"국장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미국 대통령이 배석한 CIA 국장의 판단을 요구한다.


"작전에 실패한 제가 뭐라 할 말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더 이상 극한 대립은 여러모로 우리에게 불리합니다. 모든 책임은 제게 넘기시고 남북한에 화해의 멧세지를 전달해야 합니다. 그 보다 앞서 대국민담화도 발표하셔야 합니다."


"좋습니다. 그렇게 합시다."


의외로 싱겁게 결론이 났다. 백악관 안보보좌팀이 수립한 계획에 따라 발 빠르게 사태를 수습해 나갔다. 우선 국가 외교안보 상황을 고려치 않은 CIA만의 독립작전이었던 것으로 발표하고 CIA 국장을 해임했다. 그리고 미국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남북한 국민에 대한 사과문을 발표하면서 사태는 누구러졌다. 이후 미국 시민들의 끊임없는 반전 시위에 몰린 미국 정권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을 무력 침공했던 점령군을 철수시키기에 이르렀다.



영종도 인천 국제공항 대합실, 손님들이 종종 걸음으로 빠져 나오는 대합실 입국장에 초로의 중년 노인이 피켓을 들고 서 있다. 피켓에는 귀여운 젊은 여인의 모습이 담겨져 있고 하얀 글씨로 '한평생 당신만을 영원히 사랑합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프로포즈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뭔가 간절한 사연이 담긴 듯 하다. 이윽고 노인의 눈이 출국장을 빠져 나오는 한 노년의 여인에게 고정되어 떠날 줄 모른다. 그녀의 두 눈이 사진의 여인을 닮았다. 두리번 거리며 출국장을 빠져 나오던 여인이 고개를 숙인 채 노인의 앞에 다가와 선다.


"여보, 미안하오."


노인이 흐느껴 울며 여인을 꼭 끌어 안는다. 손을 떨어 뜨리고 있던 여인도 노인을 마주 끌어 안고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낀다.


"아니예요. 제가 미안해요."


"어디 다시 한번 봅시다."


노인이 여인의 얼굴을 두 손으로 끌어 올리며 마주 본다. 끊임없이 흐르는 눈물 때문에 앞이 보이질 않는지. 손 등으로 눈물을 훔치내고 여인의 얼굴을 감싼다. 


"사랑해, 많이 보고 싶었어."


"저도요. 맨날 당신을 그리워했어요."


멀찌감치 꽃 다발을 들고 뒤에 서서 지켜보던 국정원의 안재훈 파트장이 10여년만에 재회한 부모에게 다가가 두 사람 사이에 꽃을 내민다. 


"엄마 아빠 이렇게 다시 만나니 너무 좋다. 그치? 우리 이제 헤어지지 말자."


안재훈이 꽃을 들고 있는 엄마와 아빠를 두 팔을 활짝 벌려 꼭 끌어 안는다. 



판문점 남측 자유의 집 광장, 남북한 군사 대치의 상징이었던 판문점이 이제는 일반인도 둘러볼 수 있는 관광지가 되었다. 남측 자유의 집 광장에 수 많은 군중들이 운집해 행사를 벌이고 있다. 꽃 장식을 보아 결혼식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스피커에서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 나오는 가운데 신랑과 신부가 한쪽 켠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듯 대기하고 있다. 신랑은 고구려광전산업의 안재홍 팀장이고 신부는 같은 연구소의 김영신 연구원이다. 남측 지역에서 검은색 SUV 한대가 헐레벌떡 급하게 달려 광장 한 켠에 정차 한다. 운전석에서 안재훈 파트장이 차를 한 바퀴 돌아 문을 열며 어머니를 부축해 내린다. 그 사이 아버지가 왼쪽문을 열고 광장에 내려 선다. 이를 본 안재홍 팀장이 단 걸음으로 뛰어가 엄마를 꼭 끌어 안는다.


"엄마! 보고 싶었어. 얼마나 보고 싶어다구."


"그래 미안하다 아들아."


"엄마!"


"응, 이제 실컷 불러 봐, 앞으로 항상 네 옆에 있을께."


두 모자가 서로 얼싸안고 재회의 정을 나눈다. 이들의 사연을 아는 몇 몇 하객들의 눈시울이 불거진다. 이윽고 양가 부모를 모시고 결혼식이 진행된다. 아니 평화 통일을 기원하는 퍼포먼스다. 판문각 회견장 사잇길 남북 양쪽으로 갈라 선 신랑 신부가 남북 경계를 뜻하는 검은선을 사이에 두고 다가 선다. 손을 서로 맞잡은 신랑 신부가 결혼 반지를 교환하고 서로의 볼에 뽀뽀를 한다. 신랑이 신부를 안아 올려 한 바퀴 돌려 내려놓고는 남측 자유의 집을 향해 돌어 선다. 


"다음은 고구려연방준비위원회 박철웅 위원장님의 결혼 축사가 있겠습니다."


안재홍 팀장의 친구인 최영재군이 사회를 보고 있다. 기존의 모든 형식을 탈피한 결혼식이다. 주례사가 아닌 축사로 대신하고 있다.


"오늘은 남북한의 선남선녀가 평생을 기약하는 결혼식 자리입니다만 저 개인적으로는 남한과 북조선이 결합하는 자리처럼 느껴져 더욱 기쁘기 한이 없습니다."


좌중에서 동감의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오늘은 여러모로 더욱 뜻 깊은 날이 된 것 같습니다. 오랫동안 떨어져 있던 신랑 안재홍군의 부모님이 해후한 날이기도 합니다."


박철웅 위원장이 손을 들어 신랑 부모를 가리킨 후 박수를 친다. 모여 있던 하객들도 부모가 있는 곳으로 몸을 돌리며 열렬히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이렇듯 오늘 이 자리는 새신랑과 새신부 신랑의 부모 그리고 우리 민족 모두 행복한 미래를 기약하는 날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감히 공언하건데 우리 민족의 미래는 밝게 빛나는 저 태양처럼 온 세상을 따뜻하게 데우는 초석이 되리라 선언합니다. 감사합니다."


운집한 수 많은 하객의 축하속에 성황리에 결혼식이 진행되고 있다. 따로 마련한 음식도 없고 샴페인도 없지만 남북한 국적의 신랑 신부가 처음으로 결혼하는 날이니만큼 한층 더 흥분과 열기가 달아 올랐다. 북한 출신 여성으로 구성된 달래음악단의 축하 공연을 마지막으로 신랑 신부가 꽃으로 치장한 차를 타고 하객의 전송을 받으며 신혼여행을 떠난다.


대고구려연방 제1부 동방의 등불 - 끝 -



ⓒ風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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