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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동희 May 01. 2021

내일을 재촉하는 달

북한 개성 공단, 서너달 전 높이 5미터 두께 1미터 가량의 벽돌 담장으로 둘러싼 천여평의 공장이 들어 섰다. 경비실이 있는 정문 출입구는 생체인식과 이중 보안점검을 거쳐야만 통과가 가능하고 사방에 설치된 CCTV가 담장 외벽과 건물 사이를 철저히 경비하고 있다. 외벽만 보면 언뜻 교도소를 연상시키지만 정문을 들어서면 보안이 철저한 전형적인 공장의 모습이다. 2층으로 지어 진 공장 내부엔 각종 기계와 전자 설비들이 가득하지만 먼지 하나 없이 깔끔한 환경이다. 완전 자동화되어 있어 공장 크기에 비해 적은 인원의 직원들이 저녁노을색 복장으로 별 바쁜 기색없이 각종 설비의 계기판들을 점검하고 있다. 공장 복도로 들어 선 박철웅 위원장을 안재홍 팀장이 기다리고 있다가 반가운 기색으로 맞이한다.


"위원장님, 어서 오십시요. 그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나야 뭐 한가하지만 안 팀장이 수고가 많소."


"독도 새벽작전이 위원장님 작품이란 얘길 들었습니다."


"뭘 그런걸 가지고 우리 한 민족 공동의 작품이지."


손님용 가운으로 갈아 입은 박철웅 위원장을 안재홍 팀장이 한발짝 앞장서서 안내를 한다.


"이제 막 양산품 생산을 시작했습니다. 전 세계 동시 출고용으로 1차 10만세트를 생산합니다. 그 다음 월 5만세트씩 양산을 하고 2차 공장이 확충되면 생산량이 3배로 늘어나게 됩니다."


"남북한 기간망용으로 투입된 장비들은 잘 돌아가고 있습니까?"


"한달째 필드 테스트를 하고 있지만 주변기기 연동 문제 몇 건 외에는 별 탈 없이 잘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성공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남북한 지정업체가 일을 아주 잘 하고 있습니다."


"보안은 철저히 유지하고 있지요?"


"그럼요. 사람보안, 기술보안, 통신보안 모두 완벽합니다."


그동안 최고 성능으로 동작되는 시제품 광전계로 남북한의 기간전산망용 장비들을 전면 교체해 시험가동을 하고 있었다. 양산 모델들이 출시될 경우 광전계의 월등한 성능을 이용한 해커들의 국가기간전산망 해킹에 대비하기 위해 자국의 장비들을 먼저 업그레이드하였다. 국가기간전산망이란 국가의 근간을 이루는 5대 기간전산망인 행정전산망, 금융전산망, 국방전산망, 교육연구전산망, 공안전산망등을 일컫는다. 최근 들어 여기에 해외 공관들을 연결하는 외교전산망과 교통전산망이 추가 되었다.


"기간망에 투입된 광전계가 기존 CPU의 120배 성능을 낼 수 있는데 비해 일반 민수 시장에 출시될 광전계는 기존 인텔 듀얼코어나 AMD의 옵테론 CPU에 비해 24배 정도의 성능만 낼 수 있도록 내부 코드를 임의로 수정했습니다." 


"광전계가 무기화될 수도 있으니 잘한 결정입니다."


"앞으로 10년 정도는 모방하거나 따라올 수 있는 나라가 없을 겁니다. 말 그대로 10년 정도는 앞서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속적으로 앞서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제품 발표회 준비는 잘 진행되고 있나요?"


"예 남궁 고문님하고 착 착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세계적인 이벤트가 될 것 같습니다. 높은 분들도 참석하시는거죠?"


"그럼요. 우리 민족의 향후 가늠석이 될 자린데 참석하다 마다요. 이제 시작입니다. 안팀장!"


"예."


"오늘 저녁이나 같이 할까하는데 시간 되겠어요?"


"예 모처럼 좀 한가해졌습니다."


"내가 차를 보낼테니 기다리고 있으세요. 그럼 저녁 때 자남산려관에서 만납시다."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대통령이 만사 제껴놓고 하루 종일 집무실에 앉아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향 후 민족의 희망찬 앞날을 예고하는 중요한 행사가 목전에 와 있기 때문이다. 직접 타이핑하고 있는 원고 초안을 읽고 또 읽어보며 가다듬고 있다. 인터폰이 울린다.


"대통령님, 남궁 고문님 오셨습니다."


"잠깐 기다리시라 하세요."


이윽고 대통령이 집무실 문을 열고 나온다. 남궁석 고문과 비서실장이 담소를 나누다 함께 일어나 대통령께 목례를 하며 인삿말을 한다.


"대통령님, 그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저야 뭐, 고문님께서 준비하느라 고생이 많으시지요?"


"제가 뭘 고생이랄 것 까지야 있나요. 그나 저나 일본측 문제로 대통령님께서 노고가 많으셨겠습니다."


"일단 잘 해결되어 다행이지요. 솔직히 말씀드려 한시름 놓았습니다. 일본 함대 승무원 한 명당 숙식비로 일만불씩 받았는데 텐트형 호텔과 군대식 식사로 최고급 서비스를 했으니 그리 비싼편은 아니지요? 그 친구들 김치는 실컷 먹고 갔을겝니다. 허 허 허."


"김치 먹고 싶어 다시 오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허 허. 대통령님 배려 덕분에 이젠 마음놓고 채굴하고 있습니다. 새로 투입된 무인잠수정 성능이 아주 그만입니다. 생산 시스템이 풀가동되고 있습니다."


"그래요. 반가운 소식입니다. 행사 준비는 잘 되고 있지요?"


"모든 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세계인들이 깜짝 놀라는 빅 이벤트가 될 것 같습니다."


"우리 대한민국 때문에 외신기자들이 정신없겠습니다."


"특파원 정도를 상주시켰던 대형 미디어들이 한국에 지사를 설립할 정도니 말하면 뭐하겠습니까. 한국에서 연일 기사꺼리가 쏟아져 나오니 즐거운 비명들이죠."


배석해 있던 비서실장이 한 마디 거든다.


"서울과 평양에서 기차 발차 시간을 조율해 개성역에서 조우하시는 것으로 했습니다."


광전계 제품발표회 건으로 남궁석 고문이 남북한 메신저 역할을 대행하고 있다. 이번 행사를 위해 개성공단에 특별히 박람회장에 버금가는 대형 가건물을 임시로 지었을 정도다. 


개성 시내 자남산여관, 선죽교 바로 옆에 위치한 자남산여관은 숙박과 요식업을 같이 하는 우리식으로 따지면 작은 호텔수준이다. 안재홍 팀장이 박철웅 위원장이 보낸 차를 타고 도착한 후 종업원의 안내로 미리 예약된 방으로 들어 선다. 박철웅 위원장과 김영신 연구원이 방으로 들어서는 안재홍 팀장을 반긴다.


"아니 김영신 동무가 여기 웬일입니까?"


"오빠 동무는 여기 웬일입네까?"


"동무래 찾는거 보니 안팀장 북조선 인민 다 됐구만."


"친구나 동무나 그게 그거지요 뭐."


"어허! 오빠가 친구가 될 수 있나. 애인이면 몰라도."


김영신 연구원의 얼굴이 홍당무가 되는 사이 안재홍 팀장이 쑥스러운 듯 박철웅 위원장 옆자리로 가 앉는다.


"이 사람아 자네 자리는 저쪽이야. 수저 차려 놓은 거 보면 모르나?"


박철웅 위원장이 핀잔을 주며 김영신 연구원의 옆 자리를 가리킨다. 안재홍 팀장이 엉덩이를 붙이려다 말고 양쪽 자리를 번갈아 살피다 할 수 없다는 듯 김영신 연구원의 옆자리로 가 앉는다.


"이거 맨날 같이 붙어 있으면서 낮가리는구만."


"위원장 동지. 사석에서는 처음이라요."


김영신 연구원이 얼른 말을 받아치며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인다. 안재홍 팀장이 평양으로 들어온 후 김책공대로 직행해 김영철교수와 함께 새로 팀을 구성하고 보완작업를 하느라 지금까지 정신이 없었다. 평양 대동강에서 물놀이하자던 김영신 연구원의 비디오 메일은 서로 까맣게 잊고 있었다. 얘기를 하는 사이 개성 명물인 보쌈이 들어오고 어선알말이와 개성 순대 그리고 각종 나물들이 한 상 가득히 한정식으로 차려 진다. 


"안팀장도 이젠 어른이니 술 한잔 할 수 있지?"


"어른은 벌써 됐지요."


"여기 들쭉술 한 병 내오라요."


박철웅위원장이 음식을 차리는 종업원에게 들쭉술 한병을 주문한다.


"솜털이 뽀숭뽀숭하니 병아리 어른 같질 않소."


만으로 19살이 됐으니 한국 나이로 치면 21살이다. 알 거 다 알 나이로 한창 여자 친구를 만나 소곤거릴 때지만 아직 술 담배를 배운적이 없다.


"내레 날개가 돋아 파닥 파닥 날아갈 것 같습네다."


안재홍 팀장이 북한 사투리로 말을 받으며 팔로 훼를 치면서 어미닭 흉내를 낸다. 


"고만하시라요. 털 뽑힙네다."


김영신 연구원이 웃으며 한손으로 입을 가리고는 안재홍 팀장의 팔을 눌러 내린다. 


"안팀장 어머님이래 아직 미국에 계신가?"


"예 형님이 모셔 오려고 애를 쓰고 있는데 쉽지가 않은 모양입니다."


밝게 장난을 치던 안재홍 팀장이 시무룩해진다. 이러는 사이 종업원이 들쭉술과 잔 세개를 받쳐 들고 들어 온다.


"자 자 내가 괜한 소릴 한 모양이구만, 이게 백두산 들쭉술이야. 자 한잔 받으라우."


박철웅 위원장이 병 마개를 따고 안재홍 팀장과 김영신 연구원의 잔에 가득히 술을 붓고 자신의 잔에도 한 잔 따른다. 들쭉술은 한국 10대 명주중의 하나다. 백두산 산 열매인 들쭉을 정성을 다해 한 달 가량에 걸쳐 발효와 숙성을 시켜 걸러내면 붉은 밤색갈의 전통 명주가 만들어진다. 독특한 향과 맛으로 식욕을 돋궈 반주로 많이 애용한다.


"자 우리 축배 하자우, 우리 민족의 하나됨을 위하여! 쭈욱 비웁시다."


"위하여! 여!"


잔을 부딪친 발철웅 위원장이 단숨에 털어 넣는다. 이를 본 안재홍 팀장과 김영신 연구원이 서로 마주 보며 눈치를 살피더니 박철웅 위원장의 흉내를 내며 단숨에 들이킨다. 


"헉!"


"읍!"


김영신 연구원이 술을 입에 물고 삼킬 생각을 못하며 두 사람의 눈치를 살핀다. 안재홍 팀장은 목이 타는지 엽차를 들고 벌컥 벌컥 마신다.


"둘 다 술이 처음이로구만. 그렇게 마시지 말고 살 살 음미하면서 조금씩 마시라우. 안주도 먹으면서 말이야. 영신 동무는 뭐해 넘기지 않고."


박철웅 위원장이 술을 가르치려고 작정을 한 모양이다. 젖가락으로 삶은 고기를 김치에 얹어 안재홍 팀장의 입에 넣어 준다. 안재홍 팀장이 보쌈을 우물우물 씹으면서 김영신 연구원을 안스러운 듯 쳐다 본다.


"안 팀장은 미국이란 나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거기서 공부를 했지만 썩 훌륭한 나라라는 생각은 없습니다."


"양교수님하고 오빠 동무에게 한 짓을 생각하면 이가 빡빡 갈립네다."


옆에 있는 김영신 연구원이 인상을 쓰며 거든다.


"그래 훌륭한 나라이길 바라지는 않지만 세계 여러곳에서 나쁜짓을 많이도 했지. 얼마전에 일본이 독도를 침략했지 않나. 다 뒤에서 미제가 시킨 일이었거든. 다음은 미제가 어떻게 나올 지 몰라 난 그게 더 걱정되서 말이야. 우리 민족의 합동 사업을 어떤식으로 방해를 할 지 아직 아무도 몰라."


"저도 걱정이 되긴 합니다. 그렇더라도 북한까지야 어떻게 하겠어요?"


"재들이 자기 나라 이익에 반하는 일이라면 무슨 짓인들 못하겠나. 하옇튼 지금까진 운이 따라줬던 나라지만 앞으론 상황이 달라질거야. 그들과의 싸움에서 이길려면 그들을 똑바로 알아야 되. 미제가 어떻게 만들어진 나라인가. 유럽의 보수적인 국가 권력이 싫어서 뛰쳐 나온 사람들이 만든 나라야. 그래서 더 악착같이 어쩌면 더 근면하게 혁신적으로 산업을 일궈온건데 그 차에 2차대전이 터진거야. 전쟁물자를 조달하는 군수산업이 호황을 맞은거지. 그 덕으로 힘을 비축하고 있다가 연합국과 독일이 서로 두둘켜 패다 힘이 다 빠질때쯤 해서 대대적으로 전쟁에 참여해 운 좋게 해방군 흉내를 낸 거란 말일세."


"그때 나찌 독일의 우수한 과학기술을 다 빼돌렸다고 들었습니다."


"그게 지금 미국 과학기술의 모태가 되었다고 볼 수도 있지. 어디 과학기술뿐인가. 군사기술까지 다 빼돌려 지금의 군사대국의 기틀을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란 말이지. 그리고 나서 각종 산업을 일으키게 되니까. 노종자들이 많이 필요하게 된거야. 그래서 사람들이 더 몰려들게 되었고 거대 자본이 부를 축적하면서 미국이란 나라가 황금의 땅인 것 처럼 둔갑을 한거란 말일세. 이런 미국 시민들에게 애국심이란 어떤 것이겠나?"


"제 생각엔, 어짜피 이민자들의 나라니까. 애국심이 아니라 달러에 충성하는 애불심이 아닐까 생각되요."


"후후. 자네 말이 맞는 것 같네. 영국 이민자들이 중심이 되어 아프리카에서 잡아 간 흑인 노예들을 착취하면서 1차 산업을 일으켰어. 세계 도처에서 잘 살아 보자고 옮겨간 근면한 사람들이 2차 산업을 일으켰지. 지금 3차 산업은 남조선 인민들이 잡고 있다던가? 그것까진 자세히 모르겠는데. 어쨌든 미국을 만들고 지탱하는 근간이 옛날 흑인들의 노동력 착취와 힘 없는 나라의 이민자들인데도 지배계층이랄 수 있는 백인들은 그들을 너무 무시하고 있어. 근본도 없는 나라가 근간마저 무시한단 말이지. 그게 그 나라의 한계야."


"헐리우드 영화 말인데요. 미국식 우월주의에 의한 거대 자본으로 만들어진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미국의 애국주의를 지탱하고 있다고 봐야 될 것 같아요. 옛날에는 인디언을 살육하고 땅을 뺏는 서부영화가 판을 치면서 백인은 선이고 인디언은 악이었죠. 그러다가 독일과 소련이 쳐부셔야 할 대상이 됐고 지금은 이슬람들이 악의 화신인것처럼 매도를 하고 있어요. 그 범주에 북한도 들어가 있고 말이예요."


"그래 영화배우가 영웅이 되고 그 영웅 모방 심리가 미국을 이끌어가고 있다고 볼 수 있어. 그런 영화들이 세계로 팔려 나가고 다른 나라 사람들이 그런 영화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겠나. 영화에서 묘사된 테러범들이 사는 나라는 지저분하고 도둑들의 소굴이고 그들을 때려 잡는 미국은 착한 나라라는 생각을 하게 되겠지. 그게 문화침략이고 문화 사대 식민주의가 되는거야. 한 때는 남한에서도 미국식 음악이 한 몫 했지?"


"뭐 그런때가 있었지요. 지금은 우리 노래가 더 좋아요."


"그래도 아직 두들겨 패고 째지는 미국식 리듬이 남아 있던데."


"힙팝이나 뭐 이런 음악의 한 장르지요. 뭐."


"장르가 뭔가?"


"분야를 장르라고 해요."


"그럼 풍이로구만. 바람처럼 흘러가는 풍, 유행말이야."


"그렇다고 볼 수도 있지요."


"음율을 우리 전통적으로는 어느 한 분야로 갈리는 것은 풍(風)으로, 음악적 시는 아(雅)라고 해서 그 두개를 합쳐 풍아라고 했지. 또한 풍아롭다는 것은 시와 음악이 어우러져 행복하고 아름답게 사는 것을 말한다네. 우리 민족은 일을 할 때도 어디서나 노래를 부르며 흥겹게 했어. 그렇게 해서 풍성한 결실을 맺으면 풍부해지고 풍요롭다고 했단 말이지. 이제는 남의 것 보다는 우리 것을 살리고 다져서 문화대국이 돼야 해. 무기나 돈만 많은 나라보다는 문화적인 선진국이라야 다른 나라들이 깔 볼 수 없는거란 말일세. 자 우리 한잔 더 해야지."


술을 따르고 서로 축배의 잔을 기울이는 가운데 살짝 열려진 문틈으로 청아로운 북한의 민요소리가 흘러 들어 온다. 


"이렇게 착하면서도 똘똘한 자네들을 보면 기분이 너무 좋아. 행복해 진단 말일세. 우리 민족의 앞 날이 창창히 열려지는 기분이야. 이제 시작이야. 자네들처럼 아름다운 한 쌍이 잘 어울리듯이 북남의 우리 민족이 서로 한데 어울릴 수 있는 날이 올 걸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 거린단 말일세. 그럴려면 먼저 가슴의 앙금을 걷어 내야 해. 과거를 씻고 서로 용서하고 화해 해야만이 마음의 벽을 무너뜨릴 수 있고 반 백년 동족의 담벼락을 허물어뜨릴 수 있는 법이란 말일세. 그리고 뿔뿔히 흩어져 남의 나라 땅에 살고 있는 동포들까지 한데 어울려 세계를 경영하는 거대한 우리 민족 공동체로 되 살아 나야 해."


술 잔이 돌면서 분위기는 더욱 뜨겁게 달구어 졌지만 안재홍 팀장과 김영신 연구원의 가슴속에는 세계를 향한 더욱 더 큰 불덩이가 달구어지고 있었다. 어느 새 저녁 자리는 끝나고 거너하게 취기가 오른 박철웅 위원장은 두 선남선녀가 데이트라도 하라며 둘을 박연폭포 입구에 내려주고 자신의 숙소로 돌아갔다.


세찬 물 줄기가 엉덩이를 타고 흘러 내리는 박연 폭포 위로 휘엉청 밝은 달 덩이가 둥실 떠 다정한 젊은 연인을 시샘하 듯 달빛을 비추고 있다. 그렇게 개성의 밤은 내일의 한 민족을 재촉하며 흘러 가고 있었다.


경의선 철도 북한 개성역, 깔끔하게 새로 단장한 개성역의 플랫폼에는 미리 지정된 남북한의 텔레비젼 카메라가 여러 각도에서 대기하고 있고, 남북정상회담이라는 특보를 타전하기 위한 대부분의 내외신 기자들은 개성역 광장의 연단 옆에 마련된 멀티비젼 앞에 장사진을 치고 있다. 멀리서 뚜우! 뚜! 하는 기적 소리가 남북 양 방향에서 몇 초 간격을 두고 주거니 받거니 들려 온다. 붉은칠의 남측에서 출발한 열차와 밝은 청색으로 도색한 북측의 열차가 태극이 휘몰아 감기 듯 서로 엇갈리며 정차를 한다. 마주한 양쪽 객차에서 남북한의 정상들이 수행원들을 대동하고 플랫폼에 내려 선다.


"위원장님 반갑습니다."


"대통령님! 우리 만남이 너무 오래 걸렸습네다."


남한 국민을 대표하는 대통령과 북조선 인민의 지도자로 불리는 국방위원장이 서로 다가서며 감격스런 포옹을 한다. 마주잡은 손등을 두들기며 덕담을 건넨 두 정상이 나란히 걸으며 경호원들이 좌우로 도열한 개성역을 빠져 나와 연단으로 올라 선다. 손에 손에 한반도기와 꽃을 들고 환호하는 개성 시민과 기자들을 향해 두 정상이 손을 다시 맞잡고 위로 번쩍 들어 올려 답례한다. 시민들이 우뢰와 같은 박수로 환호하는 가운데 일부 시민들이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 TV를 통해서 남북한 정상이 이렇게 조우했음을 남북한 국민들에게 신고한 두 정상이 대기하고 있던 방탄차의 뒷 좌석에 나란히 탑승해 모종의 장소로 향하고 있다.


신제품 발표회장, 각국의 초대 손님과 내외신 기자들이 제품 발표회의 개막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초대 손님에는 삼성전자 정보통신 부문의 이기태 사장과 컴퓨터사업부 김헌수 부사장이 나란히 앉아 있고 대우루컴즈의 윤춘기 사장의 모습도 보인다. 해외에서는 썬마이크로시스템즈의 스콧 맥닐리 사장과 휴렛팩커드 패트리시아 던 회장 그리고 델컴퓨터 사장 케빌 롤린스가 초대를 받았다. 그 외 세계 굴지의 컴퓨터 생산업체 연구소장급들이 옵서버 자격으로 초대되어 주최측에서 제공한 동시 통역 이어폰을 만지작 거리며 행사를 기다리고 있다. 무대 좌측의 투명한 유리 연단에 '고구려광전산업'이라는 회사명과 로고가 아래에서 뿜어져 올라오는 빛에 의해 반사되고 있다.


"여러분!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오늘 제품발표회를 진행 할 고구려광전산업 대표 남궁석입니다. 반갑습니다."


관중석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박수 소리가 터져 나온다.


"우선 회사소개부터 드려야겠습니다. 저희 고구려광전산업은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합작 국영기업으로 태동하게 되었습니다."


남궁 석 대표의 회사 소개를 조용히 경청하던 관중석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기자들이 꺼 놓았던 휴대폰을 켜고 문자메시지로 특종을 날리느라 부산을 떨고 있다.


"많이 놀라셨습니까? 우리 고구려광전산업은 세계 최초로 남북한 기술협력에 의해 빛으로 동작되는 컴퓨터 중앙처리장치를 개발했습니다. 상용화 된 최초의 옵티컬 마이크로 프로세서입니다."


술렁거리던 관중석이 찬물을 뿌려 부은 듯 갑자기 조용해졌다. 그렇게 몇 초가 흐르는 사이 어느 한군데서 박수소리가 시작되자 차츰 번져 나가며 우뢰와 같은 박수소리가 되어 일파만파로 퍼져 나갔다. 군중심리에 따라 박수를 치지만 대부분의 초대 손님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들이다.


"자 그럼, 저희 회사의 두 분 고문님들을 소개 드리겠습니다."


무대의 양쪽에 스팟조명이 뿌려지며 남북한의 정상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를 지켜보던 관중들의 눈이 휘둥그래진다. 잠시 멈춰 있던 박수 소리가 다시 발표회장이 떠나가라 울려 퍼진다. 관중석의 예의를 갖추기 위해 카메라를 내려 놓았던 기자들이 부리나케 카메라를 들쳐 올려 플래시를 터트리기 시작한다. 정치 사회부 기자들보다는 과학부 기자들이 의외의 특종을 잡았다. 특종 앞에선 예의고 점잖이고 따질 때가 아니다. 가운데서 만나 양 정상이 다시 한번 포옹을 하고 관중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인다. 무대 천장에서 마이크가 서서히 내려 온다. 남한 대통령의 양보로 북한 국방위원장이 먼저 한 발 앞으로 나와 마이크를 잡는다.


"친애하는 애국애족 동포 여러분 그리고 개성을 방문한 해외 손님 여러분, 그 동안 우리 한민족은 너무나 오랜 세월을 서로 경원시하며 보내왔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부터는 민족 동질성을 회복하며 함께 어울려 산업활동을 하면서 통일을 향한 일보 전진의 발걸음을 힘차게 내 딛을 겁네다."


관중석에서 뜨거운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어서 대통령이 마이크를 건네 받았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대한민국 대통령 입니다."


우뢰와 같은 화답의 박수 소리가 다시 한번 터져 나온다.


"어젯밤에 한 숨도 못 자고 오늘을 기다렸습니다. 여러분들께 무슨 말씀을 드릴까 준비도 많이 했는데 주체측에서 딱 30초만 할당 하더군요."


관중석에서 박수와 함께 웃음소리가 흘러 나온다.


"우리 민족에 있어서 오늘은 최고로 경사스런 날 입니다. 고구려광전산업에서 발표할 제품은 우리 민족뿐만이 아니라 전세계인을 향한 축복의 선물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앞으로 실제 제품의 발표가 있겠지만, 오늘 여러분을 모신 이 자리가 있기까지 최선을 다해 준비한 고구려광전산업 실무자 여러분들께 격려의 박수를 부탁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대통령이 관중들의 박수를 따라 치며 가볍게 목례를 하고 뒤로 빠져 나온다. 나란히 선 양 정상이 다시 한번 두 손을 맞잡고 힘차게 치켜 올리며 인사를 하고 함께 무대를 걸어 나간다. 두 정상의 퇴장을 배웅하는 냥 그들의 모습이 무대 뒷쪽으로 사라진 후에도 박수 소리는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전 세계인의 축복속에 제품발표회를 하게 되어 더 없는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그럼 이어서 빛으로 동작되는 중앙처리장치인 '부루'와 '가륵'을 소개 드리겠습니다. 발표는 고구려광전산업의 김영철 연구소장님이 맡아 주시겠습니다."


발표회장의 모든 조명이 서서히 빛을 일은 후 은은한 빛이 감도는 팔각 유리 상자가 무대 중앙을 뚫고 올라 온다. 박스 안에서 강한 빛이 한번 뿌려지고 난 후 어느새 상자 옆으로 다가 선 김영철교수의 전신으로 빛이 쏟아져 내린다. 목에 표시 안나게 마이크를 부착하고 있다.


"오늘 부루와 가륵을 보기 위해 모여 주신 여러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무대 중앙의 대형 스크린에 천부인 사진이 서서히 나타난다.


"우리 한민족은 일만년의 소중한 역사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스크린속의 물건은 약 7천년전에 우리의 조상들이 제작한것으로, 우리는 이것을 천부인이라 부릅니다."


스크린 속의 천부인이 360도 회전을 하면서 전체 모습을 보여 준다. 엇비스듬하게 정지한 천부인의 한 쪽에 빛이 주사되자 반대쪽으로 빨강, 초록, 파랑 삼색의 빛이 투영되어 나온다. 천부인이 180도 회전해 반대면을 보여 주고 삼색 빛이 투영되어 나오던 곳에 번갈아가며 빛을 쪼이자 반대쪽에 조합된 일곱가지 색이 찬란하게 쏟아져 나온다. 그러면서 전면 주위에 배치된 8괘가 발광다이오드처럼 순차적으로 빛을 발한다. 관중석의 눈들이 도대체 웬 조화인가 궁금해하며 집중을 한다.


"우리는 이것을 단군의 빛이라 부릅니다. 컴퓨터의 원리에 대해 알고 계신 분들이라면 이미 눈치 채셨으리라 봅니다. 일반적으로 RGB라 불리는 빨강, 초록, 파랑 이 세가지 색을 조합하면 흑과 백 이외에 6가지의 서로 다른 색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전체로 치면 총 8개의 신호가 되는 셈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보시눈바와 같이 천부인의 주위에 배치된 8괘 하나 하나가 3진수라 할 수 있는 RGB의 기본 신호에 의해 동작되고 있슴을 알 수 있습니다."


몇 몇 관중석에서 신음성과 함께 경탄의 박수 소리가 터져 나온다. 김영철 교수가 잠시 말을 멈추고 싱긋 웃는다.


"우리는 단군의 빛이 보여주는 기본 원리로 빛으로 동작되는 중앙처리장치를 개발했습니다. 단군은 수 천년전 우리 옛 조선의 황제를 지칭하는 말 입니다. 오늘 소개드리고자 하는 광중앙처리장치 부루와 가륵은 옛 조선의 제 2대 황제와 3대 황제를 말합니다."


천부인 시뮬레이션이 사라지고 부루와 가륵이라 지칭된 검은색의 평범한 CPU 팩키지가 화면에 나타난다.


"왼쪽에 보이는 팩키지가 부루이고 오른쪽은 가륵입니다. 부루는 일반 데스크탑 컴퓨터의 마더 보드에 장착할 수 있는 팩키지이고 가륵은 노트북용으로 디자인되었습니다."


김영철교수가 손에 들고 있던 리모콘의 버튼을 살짝 누르자 팩키지의 뚜껑이 떨어져 나가며 속을 보여 주고 있다. 그 속에는 일반적인 반도체가 아닌 작고 반투명한 유리조각이 하나 들어 있을 뿐이다. 대부분의 관중들이 의아한 눈으로 바라본다. 다시 버튼을 누루자 오른쪽의 가륵이 사라지고 부루가 한 가운데로 오면서 동시에 아랫쪽에 마더보드가 나타나고 그 위의 CPU 자리에 부루가 접속되며 빛을 한 번 발한다. 또 한번 버튼을 누르자 LCD 모니터를 비롯한 주변기기들이 일제히 연결되며 PC 전체의 모습을 갖춘다.


"빛으로 동작되는 부루와 가륵은 인텔과 AMD에서 최근 발표한 프로세서들에 비해 24배 빠른 속도로 동작됩니다."


어느 새 스크린에는 부루와 인텔의 듀얼코어 그리고 AMD 옵테론 CPU를 비교 테스트한 BMT 화면이 올라 왔다. 여러가지 항목들이 표시 된 화면상의 막대 그래프를 보면 듀얼코어와 옵테론이 엇 비슷한 성능을 보이는 반면 부루의 막대 그래프는 하늘로 치솟아 있다.


"부루와 가륵은 일반 전기 신호가 아닌 빛의 속도로 데이터를 처리하기 때문에 이렇게 빠른 광속의 성능이 가능하게 됩니다. 또한 전기 저항이 없으므로 발열 걱정이 없어 냉각장치가 필요 업게 됩니다. 사용자 여러분들께 더욱 좋은 소식은 기존 CPU들과 동일한 가격대로 공급될 예정이라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모두들 입을 벌리고 바라보던 관중석에서 환호성과 함께 오랜만에 박수가 터져 나왔다. 박수 소리는 옵서버로 참석한 얼리어댑터와 같은 엔지니어들 틈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자, 다음은 우리 연구소의 보석 안재홍 수석 연구원의 제품 시연이 있겠습니다."


무대의 조명이 꺼지며 김영철 연구소장이 퇴장한 후 무대 왼쪽에 서서히 조명이 들어 온다. 조명 속에는 최근 미 애플컴퓨터에서 발표한 인텔사의 제온 프로세서를 장착한 맥 프로 워크스테이션이 탁자위에 자리를 잡고 있다. 


맥 프로로 쏠린 관중들의 눈빛이 의아한 모습들이다.


맥 프로의 뒷쪽에서 밝은 오렌지색 복장의 안재홍 팀장이 안경을 치켜 올리며 걸어 나온다. 걸어 나오자 마자 맥 프로의 스위치를 눌러 컴퓨터를 부팅시킨다. 컴퓨터의 스위치를 누르자 마자 마치 이미 부팅되어 있던 컴퓨터의 모니터를 켠 것 처럼 맥 OS X가 순식간에 올라 온다. 애플사의 23인치 시네마 디스플레이로 부팅되는 화면을 무대의 대형 스크린에서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이를 지켜보던 관중석에서 다시 한번 찬탄의 신음성이 흘러 나온다. 컴퓨터를 켠 안재홍 연구원이 관중석으로 몸을 돌리며 정중히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관중석에서 화답의 박수 소리가 터져 나온다.


"여러분이 보고 계신 컴퓨터는 잘 아시다시피 애플컴퓨터의 맥 프로입니다. 이제 케이스를 열어 내부를 보여 드릴까 합니다."


안재홍 수석이 뒷 쪽 나사를 풀어 케이스를 들어 낸 후 속을 보여주기 위해 관중석 쪽으로 컴퓨터를 돌린다. 어두침침한 컴퓨터 내부의 중앙에서 희미하게 빛을 발하는 물체가 보인다. 안재홍 수석이 주머니에서 칩의 납땜 상태를 검사하는 무선 비디오 카메라를 꺼내 스위치를 넣자 카메라의 렌즈 주위가 라이트처럼 빛 난다.


"이것은 공장에서 칩의 접촉 상태를 검사하는 무선 카메라입니다. 시력이 안좋으신 분들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마우스를 움직여 시네마 디스플레이를 HD급 영상 모드로 바꾼 후 무선 카메라를 움직여 컴퓨터 속을 비춘다. 그 속에는 놀랍게도 방금 전 김영철 교수가 소개한 부루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사람들의 놀라움이 점 점 더 경악으로 변해가고 있다. 안재홍 수석은 키보드와 마우스를 움직이며 설명을 곁들여 각종 컴퓨터 그래픽 시뮬레이션과 벤치마크 프로그램들을 운용하며 가륵의 성능을 충분히 보여 주고 난 후 자리에서 일어 섰다.


"One More Thing, 잠시 여러분께 제 친구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안재홍 수석이 말을 마치자 마자 컴퓨터 뒷쪽에서 청바지에 검은 티를 입은 사람이 걸어 나온다. 검은 티에는 특이한 문양의 고구려광전산업의 로고가 새겨져 있다. 안재홍 수석이 무선 카메라를 들어 그의 얼굴을 비추자 무대의 스크린에 짧은 머리와 수염이 희끗희끗한 얼굴이 큼지막하게 나타 난다. 관중석에서 우와! 하는 소리와 함께 박수가 터져 나온다.


"안녕하세요? 애플컴퓨터 스티브 잡스입니다. 미스터 안이 저보다는 다소 젊어 보이죠? 그나 저나 이 친구가 제 전매특허를 침해했으니 소송이라도 해야겠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우정을 과시하 듯 자기의 턱수염과 안재홍 수석의 맨 턱을 양손으로 어루만지며 익살을 떤다. 'One More Thing'은 스티브 잡스가 프리젠테이션할 때 마다 마지막으로 주요 기술을 하나 더 보여주는 멘트로 그의 트레이드 마크나 마찬가지다.


"우리가 향 후 생산할 모든 애플 컴퓨터에 고구려광전산업의 부루와 가륵을 장착하게 되었습니다. 저희로서는 다시 없는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미스터 안 고맙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환하게 웃으며 안재홍 수석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한다. 그 어떤 벤치 마크 테스터를 내 세우는 것 보다 효과 만점이다. 애플컴퓨터 회장을 무대에 세운 것은 그의 화려한 명성보다는 미국을 의식한 전략적 의미가 더 컸다.


판문점 공동경비 구역 판문각, 남측 자유의 집에서 북쪽으로 80여미터 떨어진 북측 판문각 주차장으로 북한 국방위원장 전용의 고급 승용차가 앞 뒤로 호위를 받으며 수십대의 버스와 함께 들어 선다. 북한은 몇달 전 1969년에 2층 규모로 지어진 낡은 판문각을 대대적으로 리모델링한 바 있다. 당시 유엔사 관계자는 이를 두고 지난 1996년 11월 북한 국방위원장이 지금은 고인이 된 고영희씨와 비밀리에 방문했던 것 처럼 이번에도 고위급 인사의 방문이 있지 않겠느냐고 예견한 바 있다. 차에서 내린 북한 국방위원장과 문성극 대통령이 남북한 관계자들을 대동하고 판문각으로 들어 서고 기자들이 분주하게 중계 장비를 설치하는 등 부산을 떨며 뭔가 있을지도 모를 긴급 타전을 준비한다. 회의 탁자의 전면에 문성극 대통령과 북한 국방위원장이 나란히 앉고 이종석 통일부장관이 마이크를 가까이 당겨 발언할 준비를 한다.


"대한민국 정부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대표한 양 정상간 '한반도 평화 협정' 체결식을 거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개성공단의 고구려광전산업 제품 발표회장을 깜짝 방문했던 양 정상이 철통같은 보안속에 자남산여관에서 장시간에 걸친 마라톤회의를 진행한 후 판문점에 위치한 북측 판문각으로 이동하는 것에 대하여 모종의 발표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던 기자들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이어서 이종석 통일부장관이 한반도 평화협정 전문을 읽어 내려 갔다. 이 문안은 2004년도 민주주의법학연구회 박명림씨가 이미 기초한 바 있다.


"한반도 평화 협정 전문,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정전협정이 평화와 자주적 통일을 염원하는 온 겨레의 뜻에 따라 평화협정으로 대체되어야 함을 인정하고, 쌍방이 이미 합의한 1972년 7.4남북공동성명, 1992년의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 2000년의 6.15공동선언에 입각하여 항국적이며 포괄적으로 한반도 평화를 목표로 하고 화해를 기반으로 생명, 인권, 자유, 평등의 인간의 존엄성을 추구하도록 한다. 남과 북은 지속적인 위협, 무력갈등을 피하기 위해 안전보장을 소망하고 한반도와 동아시아 및 세계 평화건설에 적극 기여하기 위해 정전협정에 의한 정전상태를 완전 종결시키고 남과 북이 각각의 나라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임을 서로 인정하고 향 후 평화통일 달성을 위하여 정전상태를 평화상태로 전환하는데 다음과 같이 동의하였다."


잠시 숨을 고른 이종석 장관이 세부 조항의 제목과 요약문들을 읽어 내려 갔다.


"제1장 전쟁 종결과 평화의 수립, 제2장 상호 체제인정 등 일반원칙, 제3장 경계선 관할 구역 및 불가침 경계 설정, 제4장 비무장지대의 평화지대 전환, 제5장 무력 불사용 및 위협 포기, 제6장 평화관리기구 설치, 제7장 군비통제 및 군축, 제8장 핵 및 대량살상무기의 포기, 제9장 전쟁과 정전상태의 종결에 따른 전후 처리, 제10장 타 조약 및 법률과의 관계 정리, 제11장 협정이행과 통일을 위한 기구와 대표의 설치, 제12장 한반도 평화협정의 국제적 보장, 이상 각 세부조항에 따른 본 협정은 남과 북이 각기 발효에 필요한 절차를 거쳐 서명하고 그 정본을 교환한 날부터 효력을 발생한다. 본 협정은 남과 북이 통일을 이룩할 때까지 유효하다. 대한민국 대표 대통령 문성극,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표 북한. 이상 양 정상의 서명이 있겠습니다."


탁자에 앉아 정면을 응시하던 남북 양 정상이 만년필을 들어 각각의 문서에 서명하고 뒤에 배석해 있던 관계자가 두 협정문서를 교환해 다시 한번 서명한 후 일어서서 다시 교환한 후 악수를 굳게 한다. 이 장면은 특별 편성된 특보로 전국에 생방송되고 있다. 속전속결로 처리된 평화협정 조?阜? 순간을 바라보는 남북한 국민들이 놀란 가슴으로 TV를 지켜보다 마지막 악수 순간에 비로소 제정신을 차리고 박수를 치며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 그렇게도 고대하던 남북한간 공식적 전쟁 종결과 평화선언이 발효되는 역사적 순간이다. 이 협정의 세부 시행 규정에 따라 휴전선 일대에 대치하고 있던 남북한 각 군 부대가 120킬로미터 후방으로 전면 철수하고 비무장지대는 환경보호전문가들에 의한 평화지대로 조성하도록 했다. 또 한가지 특이할만한 사항은 그동안 비밀리에 활동했던 고구려연방준비위원회가 협정문 제11장의 세부조항에 의해 공식 기구로 등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미국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실, 남북한간의 급작스런 평화협정 체결 소식이 전해지지 정전협정 당사자였던 미국과 중국은 한반도내의 군사 동맹 관계였던 남북한 각각에 대하여 배신감을 느끼고 있었다. 특히 현재까지 남한을 군사적으로 지배하고 있다고 자부하던 미국은 배신감을 넘어 치욕을 느끼고 있다.


"어떻게 우리에게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이럴 수 있단 말입니까? 우리 미국이 한국에게 어떤 존재였습니까?"


"잘된 일이기는 하지만 대단히 실망스럽군요."


부시의 한탄어린 독백과 같은 말에 미 국무장관이 실망을 표현한다.


"잘되긴 뭐가 잘 된 일입니까? CIA는 그동안 귀 막고 눈 가리고 있었습니까?"


"그것은 아니지만 그 어떤 예고나 정황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혹시 남북한 정상이 만나자 마자 즉흥적으로 일을 처리한것이 아닌가 의심스럽습니다."


"국장은 평화협정문을 보기나 했어요? 그게 즉흥적으로 가능하다고 봅니까?"


미 국무장관이 CIA의 무능을 힐난하듯 꼬집는다. 이어서 국방장관이 자신의 분야도 아닌 엉뚱한 국내 정세를 설명한다.


"인텔과 마이크로소프트의 주가가 급락하고 있습니다. 관계 기업까지 불똥이 튀고 있어요. 이대로 놔두면 우리 IT 산업 전체가 붕괴될 수도 있습니다."


다름아닌 고구려광전산업이 발표한 광중앙처리장치에 대한 국내 업계 동향을 이야기하고 있다.


"좀 더 두고 봅시다. 이 문제에 대한 대처 방법은 CIA가 연구를 좀 해 보시오."


미국 대통령이 국장방관이 제기하는 문제점을 알고 있다는 듯이 대꾸하며 CIA에 연구과제로 던져 준다. CIA국장이 답변하기도 전에 미합창의장이 발언을 한다.


"한국내 미군의 존재 이유가 없어진거나 마찬가진데, 이번에 전면 철수한 후 이라크 주둔군과 교체하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국방장관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도 그 생각입니다. 평택으로 거금을 들여 이전을 하느니 차라리 철군을 해서 일부 병력은 오키나와로 배치하고 나머지는 이라크로 보내는게 좋겠습니다. 사실 평택 이전도 한국민들 반대로 골치 아픈 일이고 한국과의 방위비 분담도 협상이 걱정되던 부분이었습니다. 앞으로 한국 보다는 일본과 대만을 통해 대륙을 봉쇄하는 전략으로 가는게 더 나을 것 같습니다."


"그래요. 이젠 어쩔 수 없으니 그렇게 수정하도록 합시다. 그리고 아시아담당관은 한국측의 반응을 시시각각 분석해서 보고해 주세요."


개성 고구려광전산업 회의실, 남궁석 대표와 삼성전자의 이기태 사장이 경영전략실 비서진들을 대동하고 회의를 하고 있다. 


"대표님 구을에 대한 저희쪽 평가와 검토가 끝났습니다. 실험실 보고서를 보면 실로 놀라왔습니다. 휴대폰에 64비트 프로세서보다 훨씬 더 성능이 좋은 CPU를 탑재한다고 생각하니 이제 세계 휴대폰 시장을 평정하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고구려광전산업 경영을 책임지고 있는 남궁석 대표는 삼성그룹의 대표기업인 삼성전자와 삼성데이터시스템의 대표를 역임한 경력이 있다. 이런 개인의 경력 때문에 삼성전자를 배려하는 것은 아니다. 대용량 메모리가 탑재된 부루와 가륵이 출시됨으로 해서 삼성의 메모리사업 부문과 하드디스크사업이 입는 타격은 인텔이나 마이크로소프트 만큼이나 심각했다. 국가 경제에 대한 우려 때문에 이를 만회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유비쿼터스용으로 축소된 광전계인 '구을'을 국내 삼성전자와 LG전자에만 국한해 독점 공급하도록 결정한 것이다. 


"그래요. 앞으로 삼성에서 추진하실 와이브로나 4G쪽 시스템을 설계할 때도 유리하게 쓰여질 것 입니다. 삼성이 세계적 초일류 기업으로 올라 설 발판이 되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다 대표님 덕분입니다."


"신의주 특구 프로젝트는 잘 진행되고 있습니까?"


"신의주 생산단지 규모를 좀 더 크게 확장 설계하고 있습니다."


"그래요?"


"저희 경제연구원 분석 결과, 인건비나 물류 모든 면에서 중국보다 투자 효과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문제가 많은 중국 가전 공장을 신의주로 옮겨 집중 투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거 잘 된 일입니다. 아무렴 인건비뿐이겠습니까. 일단 언어가 통하니 직원 교육이 수월할거고 우리 민족처럼 근면하고 성실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뿐인가요. 손재주하면 우리 민족이니 양산율도 현격히 좋아질 겁니다."


"대표님 말씀대로입니다. 신의주에도 삼성로를 만들어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고구려광전산업과 삼성전자가 부루보다 1/24로 축소된 구을 광중앙처리장치에 대한 사업 양해각서를 체결하였다. 삼성전자에서는 구을을 팩키지 없이 직접 주변기기를 접속시키는 어려운 난제를 극복해야만 했다. 그 보다 더 중요한 의미는 고구려광전산업 연구진의 노력에 의해 CDMA 칩셋이 구을에 통합되었다는 것이다. 전세계 휴대폰 시장에 있어서 CDMA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 퀄컴(QualComm)의 위세는 대단했다. 휴대폰 하나를 만들어도 그들이 공급하는 MSM시리즈 칩셋을 사용해야 했고 각 종 특허 기술들에 대해 단말기 당 매출의 5-6%를 기술료를 지불해야 했으니 앉은 자리에서 온갖 이익을 독점하고 있었던 것이다.


개성 고구려광전산업 대표 사무실, 박철웅 위원장과 남궁석 대표 그리고 기술연구소 김영철 소장과 안재홍 수석연구원이 경영전략회의를 하고 있다.


"안재홍 수석의 친구가 이번에 대단한 일을 해 냈습니다. 안수석이 직접 말씀드리는게 어떻겠어요?"


"예 알겠습니다. 제 초등학교 동창으로 최영재라는 친구가 있습니다. 이 녀석과 컴퓨터 공부를 많이 했었는데 지금은 고려대 공대에 다니고 있습니다. 이 친구한테 우리 광전계 OS상에서 MS윈도우의 응용 프로그램들을 수행시킬 수 있는 미들웨어를 개발해 보라고 권고한적이 있습니다."


"어떻게, 개발이 됐나요?"


남궁석 대표가 매우 흥미러운 표정으로 결과를 재촉한다.


"예 어젯밤에 호환성 테스트가 완료됐습니다. 완벽합니다. 앞으로 더 이상 MS윈도우는 필요 없어졌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라이센스해 부루와 가륵에 번들시킬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좋습니다. 아주 잘 됐군요."


모두들 쾌재를 부르며 박수를 친다. 


"그 최영재 학생을 우리 연구소에 특채하는게 어떻겠습니다. 안 수석이 한번 타진해 보겠어요?"


"녀석은 공부를 더하고 싶어할 겁니다. 특채가 안되면 계속 아르바이트라도 시키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요. 어쨌든 그런 천재들들을 계속 발굴해 채용할 수 있도록 합시다."


"잘 알겠습니다. 저 위원장님 그리고 대표님, 연구소장님께는 말씀드린적이 있는데 이 자리를 빌어 건의드릴 사항이 있습니다."


"어떤 문제라도 있나요? 말씀해 보세요."


위원장이 어떤 문제라도 다 들어줄 수 있다는 표정으로 대답한다.


"우리 연구소에서 무기체계를 같이 연구할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 합니다."


"무기요?"


"그렇습니다. 미국이 주도하는 현대전은 대량살상무기와 정밀 폭격 그리고 전자전으로 대변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한가지를 더 붙인다면 전자첩보가 포함될거구요."


"음 그래서요."


"이번에 삼성에 제공된 구을을 잘 활용하면 다양한 군사무기에 이용될 수 있습니다."


"맞아요. 구을을 개발할 때 유비쿼터스뿐만 아니라 군사부문까지 고려했었지요."


"제가 해보고 싶은 분야는 전자기기들이 내장된 대량살상무기들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쪽입니다. 요즘의 군사무기 대부분은 컴퓨터에 의해 운용되고 있습니다. 군함이나 전투기 잠수함 심지어는 전차까지도 컴퓨터가 고장나면 무용지물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순항미사일이나 어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들에 내장된 컴퓨터 칩셋의 프로그램들을 파괴하는 것도 방어개념에서는 효과적이라 생각됩니다."


"첨단군사무기를 해킹해 쇳덩이로 만드는 기술이라는거죠?"


"그렇습니다."


"대단해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니 놀랍습니다. 여러분 어때요 이런 부문이라면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박철웅 위원장을 포함한 모든 참석자들의 대대적인 찬성으로 기술연구소내에 별도의 무기체계 연구팀을 만들기로 했다. 


미국 SABS 비밀 회의실, 백골 문양의 깃발이 벽에 걸려있는 SABS(Skull and Bones Society) 비밀 회의실에는 대중들에게 낮 익은 얼굴들이 모여 숙의를 하고 있다. 이들은 다름 아닌 오텔리니 인텔 사장과 마이크로소프트 빌 게이츠 회장 그리고 몇 몇 정부 고위직 인사들이다. 인텔 사장이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이렇게 앉아서 당할 수 만은 없습니다. 주가가 연일 고꾸라지고 매출은 제로에 가깝습니다. 창고의 재고 더미속에서 권총으로 자살이라도 해야 한단 말입니까?"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고구려광전산업인지 뭔지 광프로세서에 윈도우 어플리케션들을 돌릴 수 있는 미들웨어를 공짜로 배포하겠다고 합니다. OS장사도 끝장났다고 봐야 합니다. 뭔가 대책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나 인텔이나 이런식이라면 올해를 못 넘깁니다. 우리만 죽나요? 연관기업들까지 줄도산하면 미국에 대공황이 밀어닥칠겁니다."


앞에 앉은 정부 관리의 귀에는 엄포를 뛰어 넘어 협박으로 들린다. 미국의 명문 예일대학에서 시작된 SABS는 매년 15명씩의 최고 성적 학생들만 가입시켜 미국의 엘리트 집단으로 키우는 비밀결사다. 프리메이슨의 하부 조직으로 의심받고 있는 SABS 멤버들에는 이 자리에 참석한 자들 외에도 미국 대통령 부자를 포함해 미국의 정재계 전반을 주물럭거리는 거물급들이다. 이들이 마음만 먹으면 어떤 일이든 못할 일이 없다고 알려져 있다.


"회장님 말씀 잘 알겠습니다. 심각하게 건의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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