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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롱 Mar 17. 2021

어버이 은혜

낳으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빠가 근무지를 옮기면서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 왔다. 새집에 들어가기까지 한 달 정도 기다려야 해서 급한 대로 회사 사택에서 지냈다. 어느 날 동네 슈퍼 아주머니가 낯선 얼굴들에 물었다.  

 "이사 온 거니? 몇 살이야?"

 "열 살이요."

 "동생이랑 똑같이 생겼네. 생일이 언제야? 아줌마가 선물 줄게."

 "동생은 3월 5일이고 저는 3월 17일이에요."

 그때가 2월 말이었는데 어린 내가 보기에도 아주머니는 괜히 물어봤다는 표정이었다. 나만 그렇게 느낀 건 아닌지 그날 저녁 엄마가 아빠한테 말했다.

 "우리 애들 생일이 다 3월일 줄은 몰랐겠지."

 

 한동안 잠잠했던 '회사 그만두고 싶은 병'이 다시 찾아왔다. 하필이면 남편이 회사 일 때문에 집에 못 오는 날, 빈집을 향해 터덜터덜 걷다가 걸음을 뚝 멈췄다. 엄마가 보고 싶었다. 뒤로 돌아서 다리에 힘을 빡 주고 걷기 시작했다. 엄마 집이 보이는 곳에서 전화를 걸었다.

 "엄마, 뭐해? 집에 술 있어?"

 

 슈퍼에서 소주 두 병, 새우깡, 두부 한 모를 샀다. 유달리 싱싱해 보이는 딸기도 한 상자 집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알록달록 색지들이 잔뜩 붙어 있었다.

 "이게 뭐야?"

 "아까 아빠랑 붙였어. 올 거면 전화하지. 데리러 가게."

 주인공은 야근 중이라 내가 먼저 엄마, 아빠의 깜짝 선물을 보고 말았다.


<경> 아들 생일 <축>

 

 술 한 잔 마시고 강아지 머리를 쓰다듬었다. 또 한 잔 마시고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회사는 왜 그럴까. 사람들은 또 왜 그럴까. 

 "그래도 잘하고 있어. 이 정도면 잘하는 거야. 너무 스트레스받지 마."

 내 속으로 낳은 자식이 훌쩍 커서 먹고사는 게 힘들다고 하소연하면 어떤 기분일까. 궁금했지만 묻지는 않았다. 엄마는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을까. 나는 정말, 정말 몰랐는데.


 각종 기념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우리 집은 예나 지금이나 축하할 일을 열심히 챙긴다. 대단히 화려하진 않아도 같이 모여서 밥 먹고 촛불 끄고. 어렸을 땐 그게 당연한 줄 알았는데 이만큼 크고 보니 그만큼 마음을 쓰는 일 같다.

 다음 날 아침까지 붙어있던 색지들을 다시 천천히 읽어봤다. 엄마, 아빠가 이렇게 사랑을 많이 주고 귀하게 키운 자식인데, 내가. 스스로 너무 괴롭히지 말고 좀 잘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버이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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