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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롱 Mar 30. 2021

너의 목소리가 보여

우리만의 대화

 개 동생이 들어오고 생긴 습관은 자꾸 말을 건다는 것. 딱히 대답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 얼굴에 대고 하염없이 떠든다. 어제 엄마 집에서 자고 아침에 일어나 순이에게 물었다. 

 "잘 잤어? 순이 잘 잤어? 언니 방에서 자다가 언제 갔어?"

 순이는 귀찮게 하지 말고 저리 꺼지라는 표정을 지었다.    

 

 몇 년 전 일하던 프로그램이 없어지면서 백수가 됐을 때 굶어 죽지 않으려고 잠시 엄마 집에서 지낸 적이 있다. 프리랜서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때는 왜 그렇게 주눅이 들었는지. 하루에도 수십 번씩 구인 글을 보고 이력서 내길 되풀이하면서 언제까지 이래야 하나 막막했다. 잠도 안 오던 어느 밤, 방에서 엄마, 아빠 몰래 술을 먹는데 순이가 들어왔다. 아마 안주로 먹던 소시지 냄새를 맡았겠지. 순이는 두 발을 쭉 뻗고 내 앞에 앉았다.

 "순이야, 언니 또 이력서 냈어."

 "..."

 "이번엔 연락 올까?"

 "..."

 "올 거 같으면 왼쪽, 안 올 거 같으면 오른쪽 눈 깜빡 해봐."

 "???"

 그때 순이는 언니가 좀 한심했을까.     


 나만 이런 건 아니고 가족들 모두 순이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한다. 

 "순이 까까 먹고 싶어?"

 "오늘은 미세먼지 심해서 밖에 못 나가~"

 "오빠야 언제 온대?"

 대답이 돌아오지 않을 걸 알면서도 묻고 또 묻고. 그래도 ‘오빠, 언니, 까까, 쉬, 나갈까’ 등 자주 들은 말에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 준다.      


생일을 맞아 새 옷을 선물 받았답니다. (자랑) 

 

 개 동생이 들어오고 생긴 습관 또 하나는 길 가다가 털 친구들을 만나면 말을 건다는 것. 지금 사는 동네는 낮은 빌라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길고양이들이 종종 보인다. 며칠 전 출근하려고 나왔는데 나이가 꽤 있어 보이는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서 앞발을 까딱까딱하고 있었다. 전철 시간이 급했지만 걸음을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야옹이 뭐해?"

 가까이 다가가도 도망가지 않고 작은 솜방망이를 열심히 휘둘휘둘. 고양이 앞에는 새털 하나가 바람에 살랑살랑 날리고 있었다. 사진 찍으려고 휴대폰 찾는 시간도 아까워서 한참을 보기만 했다. 

 "야옹이 안녕~"

 이러다 지각하지 싶어서 인사를 하고 뛰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새털을 잡지 못한 고양이가 잘 다녀오라고 인사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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