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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롱 Apr 20. 2021

요거트가 인생 목표입니다

이래도 될지 모르겠지만

 케이블 방송의 외주 제작사에서 방송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뉴스 프로그램으로 주6일 일 했는데 한 달 월급이 80만 원, 식대가 10만 원이었다. 합쳐도 100만 원이 안 됐지만 처음부터 '이 바닥'에 기대가 없어서 그러려니 했던 것 같다. 이렇게 번 돈 중 30만 원을 신사동 반지하 친구 집에 얹혀살면서 월세로 냈다.


 그다음해 무려 공중파, 무려 본사 제작 프로그램으로 자리를 옮겼다. 방송작가는 보통 방송 회차를 기준으로 페이를 정하는데 이때부터 월급이 아닌 주급을 받게 됐다. 주급이라도 일주일 단위로 지급하진 않고 보통 4주 치가 한꺼번에 나오는 시스템으로 140만 원 정도였다. 50만 원이나 더 받게 됐지만 친구 집에서 나와 방송국 근처에 집을 얻었기 때문에 살림은 나아지지 않았다. 여전히 월세였다. 

     

 10년이 넘는 방송작가 생활 중에 가장 '빡셌던' 그 팀은 퇴근 시간이 없고 방송이 가까워져 오면 회사에서 먹고 자고 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 유일한 낙은 요거트. 평소에는 비싸서 참았다가 집에도 못 가는 나한테 하나씩 선물했다. 페이스북이 한창 유행하던 시절, 정리를 못 해 엉망진창인 책상 위에 홀로 빛나는 요거트를 찍어서 올렸던 기억이 난다.  

 -이런 거 맨날 먹는 부자가 될 거야.

 나름의 허세였달까.     


 군대 간 동생 몰래 엄마, 아빠랑 제주도에 간 적이 있다. 아빠 회사 찬스로 좋은 호텔에 묵게 됐는데 로비 카페에서 팔던 콜라가 한 캔에 5,000원이 넘어서 깜짝 놀랐다. 좋은 곳에 왔으니 좋은 걸 먹고 싶었다. 엄마랑 편의점에 가서 요거트를 사 와서 잠자기 전에 천천히 떠먹다가 인생 목표를 세웠다.

 "내 꿈은 맨날 요거트 먹는 거야."

 "뭔 소리야."

 "인생 목표야, 이제."     

 

 어젯밤 일찍 자려고 누워서 남편과 브런치 아이템 회의를 했다.

 "요즘 여보가 너무 바빠서 내가 쓸 게 없어."

 "남편의 귀여움 어때?"

 "어허..."

 이런 저런 아이디어를 던지던 중 갑자기 남편이 물었다.

 "인생 목표 이런 거는? 인생 목표가 뭐야?"

 "나? 맨날 요거트 먹는 거."

 "... 이뤘네?"

 "난 이렇게 빨리 인생 목표를 이룰 줄 몰랐어."

 "참 소박해."

     

 20대에는 내가 시리얼도 아닌 그래놀라를 요거트에 말아먹는 훌륭한 30대가 될 줄 몰랐다. 그럴 수만 있다면 한 달에 90만 원 벌던 스물다섯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생각보다 꽤 괜찮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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