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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롱 Jun 21. 2021

어쩌다 11년 차 프리랜서

아니 벌써

 막내 작가 시절에는 10년 넘게 이 일을 할 줄 몰랐다. 나에게 선배들은 닿을 수 없는 미지의 세계였다. 그래도 혹시 방송국에 남아 있다면 엄청난 걸 만들거나 뭐라도 될 줄 알았다. 그리고 11년이 흘렀다. 나는 그냥 ‘10년 넘게 일한’ 프리랜서 방송작가가 됐다.      


 지금의 내 모습은 대부분 예상 밖이다. 일단 10년 차가 넘어서까지 진로 고민을 할 줄 몰랐다. 지금도 방송작가가 나랑 잘 맞는지 모르겠다. 많이 쓰면 쓰는 게 쉬워질 줄 알았다. 막 키보드에 손만 얹으면 글이 술술 나오는? 은 무슨. 지금도 하얀 모니터를 보면 머리가 하얘진다. 후배들에게 좋은 길을 알려주는 선배가 되기에는 애초에 글러 먹었다. 내 앞가림도 못 하는 주제에.     


 가던 식당만 가고 살던 동네에서만 살고 만나던 사람만 만나는, 변화라면 질색을 하는 내가 내일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이 일을 아직도 하고 있다. 지금 내가 궁금한 건 주로 이런 종류다. '나는 다음 달에 어디 있을까. 내년에는 뭘 하고 있을까. 계속 작가일까. 아니면 다른 뭔가가 될까. 이대로 괜찮은 걸까.'     


 여전히 생활은 불안정하고 그래서 이 일을 10년 넘게 한 걸 후회하느냐면 그건 아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 불안정 속에서 조금씩 안정을 찾고 있기 때문. 우선, 미련이 없다. 어렸을 때는 작가라는 직업에 (너무 좋아서) 집착했는데 지금은 내일 그만둬도 후회하지 않을 수 있다. 작가인 나만큼 회사 밖에서 오만 가지가 재밌는 나(산만한 게 이럴 때 도움이 된다.)도 좋다. 더는 일에서만 행복을 찾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건, 10년을 넘기기 전이었는지 채울 즈음이었는지 후였는지 기억은 안 나는데 스스로 믿게 됐다. 과거의 나는 회사를 옮기고 업무가 바뀌고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못 할까 봐 필요 이상의 스트레스, 부담을 가졌다. 지금은 뭐랄까. 내가 알아서 잘하겠거니(?) 한다. 당장 오늘만 해도 이걸 어떻게 쓰나 싶은 아이템이 정해졌다. 새하얀 모니터를 보며 망했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마감은 정해져 있으므로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주섬주섬 자료를 모았다. 그리고 썼다. 다 쓰고 감탄했다. 역시 잘 써. 짱이야. (물론... 예상대로 망하는 날도 자주 있습니다.)     


 얼마 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지인과 한 시간 정도 이야기할 일이 있었다. 꼰대 같은 소리 하지 않으려고 최대한 조심하면서 이런 위로를 건넸다. 

 "내가 살아보니까 30대 진짜 좋아요. 20대보다 훨씬. 주위 상황은 비슷한데 내가 달라져서요. 지금 힘든 건 달라질 힘을 키우느라 그런 걸 거예요. 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튼튼해져요."

 앞으로 10년이 흘러 40대의 나에게도 유효한 말이 될 수 있을까. 부디 그렇길 바란다.


사진 출처

https://theconversation.com/how-birds-are-used-to-reveal-the-future-13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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