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어디 나는 누구
오후 뉴스 프로그램 막내 작가로 방송 일을 시작했다. 내 위로 5명의 마음씨 고운 언니들은 어리바리하고 맹한 나를 둥기둥기 예뻐해 주었다. 명절에 언니들은 재택근무를 하고 막내인 나는 회사 인트라넷을 써야 해서 혼자 출근한 적이 있다. 노는 날 고생한다며 받은 식비 6천 원으로 편의점에서 김밥 한 줄을 사 먹고 남은 돈은 언니들이 좋아하는 비스킷, 젤리를 샀다. 그만큼 언니들이 좋았다.
마음씨 고운 언니들은 종종 돌아가면서 말했다.
"초롱, 언니가 네 나이면 이거 안 해."
"지금도 늦지 않았어, 베이비."
언니들이 한 번씩만 말해도 같은 얘기를 다섯 번 듣는 셈이었다. 나도 언니들처럼 작가가 되고 싶은데 왜 자꾸 그만두라는 걸까.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의 메인 언니만큼 나이를 먹은 지금 나는 여전히 작가로 일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 언니들의 말을 이해한다. 누군가가 나에게 방송작가 어때요? 할만한가요? 묻는다면 고민하지 않고 아니요. 대답하겠다.
방송작가는 특수 고용직으로 대부분 프리랜서다. 열 번 넘게 회사를 옮겼지만 한 번도 퇴직금, 실업 급여를 받아본 적이 없다. 4대 보험은 당연히 안 된다. 이달부터 예술인 고용보험이 시행된다는 소식을 듣고 별 감흥이 없었는데 방송작가도 혜택을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보도국에서 뉴스를 만드는 방송작가는 안 된단다.
얼마 전 서울지방노동위원회라는 이름도 어려운 기관에서는 방송작가를 노동자로 볼 수 없다는 결정을 내렸다. (<태초부터 방송작가는 비정규직만 있었다> 참고) 헛웃음이 나온다.
이 일을 하면서 대단한 복지를 기대한 적은 없다. 사실 잘 모른다. 일하는 사람으로서 보호받아본 적이 없어서 알 수가 없다. 그래도 나는 내가 하는 일이 좋았다. 정규직한테 갑질을 당할 때도, 나보다 나이만 많은 프리랜서가 못살게 굴 때도 내 직업을 미워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자신이 없다.
10년 차를 넘기면서 거의 매일, 방송작가로 일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악착같이 버티고 싶은 욕심도 없다. 다만 열심히 일해도 노동자로 인정받을 수 없는 현실이, 이렇게 또 한 번 내쳐졌다는 감각이 슬픈 건 어쩔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