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롱 Sep 10. 2021

집순이의 가을

바람이 분다

 올여름도 휴가 없이 지나갔다. 시국도 시국이거니와 재택근무를 하다 보니 어영부영 시기를 놓쳐버렸다. 작년에도 미루고 미루다가 11월 말에 아파서 한 주 쉬었는데 올해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프리랜서는 휴가 챙겨 먹는 것도 일이다.


 사실 여름 휴가가 그렇게 간절하지는 않았다. 더울 때는 움직일 엄두도 안 나고 사람 많은 곳도 원래 싫어한다. 어디 여행 가면 빨리 집에 가고 싶다(?). 어린이 집순이는 무럭무럭 자라 청년 집순이가 되었고 언젠가 할머니 집순이가 되겠지. 재택근무가 좀 힘든 건 집이 일할 환경이 아니라서 그런 거지 집이 싫은 건 아니다. 그런데 요즘, 자꾸만 밖에 나가고 싶다.


 날이 궂어 아침에 달리기하러 나가지도 못하고 종일 집에만 있는 날이 계속됐다. 내리는 비를 보고 있자니 내가 꼭 웅덩이에 고인 물 같았다. 어느 저녁 우산을 쓰고 야식거리를 사러 밖으로 나왔는데 선선한 공기에 가슴이 두근거려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여보? 나 밖에 나왔어. 짱이야. 너무 좋아!"

 "그랬어, 집순이?" 


 나가고 싶다, 나가 놀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다가 지난 주말 드디어 남편과 집을 나섰다. 마트에 장 보러 가는 거 말고 외출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출발하기 전에 스타벅스에 들러 음료를 한 잔씩 샀다. 이것만으로도 너무 신이 나버렸다. 

 "사진 찍어야지, 사진. 자, 건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집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차를 몰았다. 주차하고 강가를 걷는데 날씨가 참 좋았다. 츄리닝 말고 번듯한 옷 입은 건 오랜만이라 또 사진을 찍었다. 예전에는 일상이었던 일들이 새롭게 느껴져서 새로웠다. 

 "나 사실은... 집순이가 아닌 게 아닐까?"

 "아무리 집에 있는 거 좋아해도 한 번씩 밖에 나와야 해."

 “나오니까 너무 좋아. 왕 좋아."

 뭐 그렇게 대단히 나이를 많이 먹은 것도 아니지만 20대보다는 30대가 되고 좋아진 것들이 많다. 가을이 시작되는 바람도 좋고 이런 소소한 외출도 좋고 좋아하는 것들이 많아진 내가 또 좋다. 40대에는 어떤 것들이 좋아질까.

 

 독립서점을 찾아서 한참 걷고 시장에서 떡도 사고 빵집에서 파이도 샀다. 사람 많은 곳은 피하느라 차에서 한 입씩 먹어봤는데 으음~ 맛있었다. 예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식당 앞에서 고민하다가 저녁은 집에 와서 먹었다. 그래도 좋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