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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롱 Oct 07. 2021

곱슬머리의 슬픔과 슬픔

나는 자연인이다?

 잔뜩 흐리더니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비가 싫은 이유는 단 하나, 머리 때문이다. 날 때부터 곱슬곱슬한 머리가 비 오는 날은 있는 힘껏 부풀어 올라서.     

 나는 내가 아는 최고(?)의 곱슬머리다. 그냥 곱슬도 아니고 숱이 많으면서 모가 굵고 붕 뜬다. 곱슬인 엄마와 곱슬인 아빠가 만나서 이런 나를 낳았다. 그분들은 지금도 가끔 놀란다.

 "쟤 머리가 왜 저래."

 "너 닮아서 그래."

 "아니야, 당신 닮았어."

 두 분 모두 저한테 사과하셨으면.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곱슬을 직모로 만드는 '매직 인생'이 시작됐다. 처음 머리를 폈던 날이 아직도 생각나는데 매직이라는 기술 자체가 나온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시내에서 제일 큰 미용실에는 매직을 홍보하는 대형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곱슬곱슬하다 못해 빠글빠글한 시술 전과 엘라스틴한 것 같은 생머리의 시술 후를 대조해 놓았다. 내 머리를 보고 한숨 쉬는 직원에게 엄마는 굳이 사진 속 모델을 들어 위로를 건넸다.

 "그래도 우리 애가 저 정도는 아니죠?"

 "비슷한 거 같은데요, 어머님."

 그날 나는 미용실에 9시간을 앉아 있었다.

     

 미용실이 싫다. 얼마나 싫으냐면 치과보다 싫다. 20년 동안 1년에 두 번은 꼬박꼬박 매직하러 다녔기 때문에 가슴 아픈 에피소드도 몇 개 있다. 아무 것도 안 하고 가만히 앉아 있었는데 미용실 직원을 울린 적도 있고 (그날따라 몸이 안 좋으셨다는 말을... 믿고 싶다) 열처리를 위해 빵 모자 같은 걸 씌워놓고 직원이 나를 까먹는 바람에 두피가 다 벗겨졌던 적도 있다. (그 뜨거운 걸 무식하게 참았다.) 공산당만큼 미용실이 싫다.     


 재택근무하는 3개월 동안 자연인처럼 살았다. 그새 자라서 곱슬거리는 머리는 모자로 대충 누르고 다녔다. 그런데 재택근무의 끝이 보인다. 이제 자연생활을 끝내고 산에서 내려와야 한다. 이번 주말 미용실을 예약했다고 하니 남편이 물었다.

 "그럼 나 종일 뭐하지?"

 "야, 종일은 아니거든?"

 "아침에 갔다가 저녁에 오면 종일 아니야?"

 "... 이 짜식이."

 다시 태어날 때 딱 한 가지만 고를 수 있다면 주저하지 않고 생머리를 말하겠다. 그래도 곱슬머리 파이팅.


사진 출처

https://prose.com/blog/curly-hair-men.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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