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 (가지 마) 행복해 (떠나지 마)
지난주 회사에서 출근하라는 연락이 왔다. 한여름에 시작한 재택근무가 100일을 훌쩍 넘겨 끝났다. 아마도 내 인생에 두 번 다시 없을 재택근무가. 그날 일을 마치고 남편과 집 앞 호프집에서 반건조 오징어에 생맥주를 콸콸 들이켰다.
"나 기분이 너무 이상하다?"
"회사 가기 싫어서?"
"아니, 싫은 건 아닌데 그냥 마음이 헛헛해."
"회사 가기 싫어서 그런 거야."
"에헤이~ 아니라니까 그러네? 나 회사 가고 싶을 때도 있었어."
"응. 근데 안 가고 싶을 때가 더 많았지."
"인정."
재택근무의 모든 순간이 행복했던 건 아니다. 온라인 소통의 한계도 여러 번 느꼈고 아무리 집에서 해도 일은 일이었다. 문득 뛰쳐나가고 싶은 날도 있었다. 3시간 넘는 출퇴근길이 없다는 장점이 거의 모든 단점을 이기긴 했지만.
맥주를 실컷 먹고도 잠이 안 와서 밀린 일기를 썼다. 밀린 일기를 쓰고도 잠이 안 와서 내가 어질러 놓은 남편 책상을 정리했다. 그러고도 잠이 안 와서 거실 바닥에 드러누워 남편 코 고는 소리를 들으며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겼다. 뭐라고 설명하기 어려운데 어디 멀리 떠나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재택근무 마지막 날 아침에는 지난 100여 일 나의 동무이자 동료였던 엄마와 가까운 곳에 바람을 쐬러 갔다. 포장해 온 햄버거를 먹으며 노르스름하게 물든 은행나무를 구경했다.
"엄마는 나 이제 회사 가는 거 안 섭섭해?"
"그럼. 갈 때 됐지."
"그래도 지금처럼 오래 못 놀잖아."
"아니야. 회사 가도 놀 수 있어."
잠시 문구점에 들러 연필 한 자루와 지우개를 샀다.
"벌써 내년 달력이 나왔네. 이것도 하나 사줄게."
엄마의 선물은 책상에 고이고이 모셔두었다.
내가, 내가 회사라니 믿을 수 없다며 요란하게 복귀를 했고 일주일이 흘렀다. 예상대로 출퇴근이 고되지만 그래도 별 탈 없이 적응 중이다. 어쩌면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역병 때문이라면 더더욱 만나고 싶지 않은 재택근무, 안녕. 고마웠어.
사진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