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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롱 Apr 06. 2022

오래된 약속

보고 싶은 두 분

 명절에 엄마의 부모님, 할아버지와 할머니 산소는 들를 때도 있고 건너뛸 때도 있었다. 보통 아침에 차례를 지내고 아빠의 아버지, 할아버지 산소에 갔다가 상황을 봐서 가거나 말거나 하는 식이었다. 갈 때마다 내가 궁금했던 건 엄마는 오전까지 오만 가지 음식을 만들었는데 왜 정작 당신 부모님께는 동네 슈퍼에서 산 포, 과자 부스러기 정도밖에 대접할 수 없는가 하는 것이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도 전이나 과일, 떡을 더 좋아하실 것 같은데.


 결혼을 하고 나니 기껏해야 1년에 한 번 정도 들르던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에 가는 게 더 힘들어졌다. 남편 본가에서 하루, 우리 부모님 집에서 하루 보내고 나면 명절이 순식간에 지나가므로. 한 번은 가야지, 가야지 생각만 하다가 4년이 흘렀다. 올해는 반드시 기필코 가고야 말겠다고 혼자 다짐하고 있었는데 할아버지 기일이 돌아왔다.


 할아버지는 내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을 즈음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전에 엄마한테 너 초롱이 입학식 가야 하지 않냐 이런 얘기를 하셨다고 한다.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많지는 않지만 그건 지금까지 잊지 않고 있다. 시험을 앞두고 조급하기도 했지만 하루 덜 공부한다고 어떻게 되지 않는다는 마음으로 할아버지, 할머니께 다녀왔다.


 출발할 때부터 비가 왔는데 선산 아래 도착하니 거짓말처럼 그쳐 있었다. 결혼식 이후 처음 만나는 이모들은 지난주에도 본 것처럼 잔소리를 했다.

 이모1 "이사하니까 좋제? 얼마나 넓노."

 이모2 "넓은 집에 쪼만한 거 하나 기어 다니면 얼마나 귀여울까."

  "제가 가끔 술 먹고 기어 다녀요."

 이모2 "못하는 소리가 없네."

 얼굴을 모르는 조상님 산소부터 차례차례 절을 했다.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 앞에 전날 미리 사놨던 꽃다발을 놓았다. 너무 늦게 와서 죄송하다고, 근데 오긴 왔으니까 너무 미워하진 마시라고 속으로 말했다.


 이모들이 아침부터 정성껏 준비한 음식들을 차려놓고 절을 올렸다. 일찍 일어나는 게 힘들었지만 역시 오길 잘했다 싶었다. 다 끝나고 돗자리에 앉아 산 아래를 내려다보며 음식을 먹는데 갑자기 이모가 불경을 틀었다. 불경을 배경으로 어른들의 중구난방 토크가 이어졌다. 

 이모2 "엄마가 이런 불경을 참 좋아하셨어."

 이모부 "초롱아, 너는 이번에 누구 뽑을래?"

  "저는... OOO?"

 이모부 "그 사람도 괜찮긴 한데 이번에는 OOO 뽑아야제. OOO 하는 걸 보니까..."

 이모2 "요새 영웅이 왜 테레비 안 나와? 광고도 잘 안 나와."

 나 "그래요?"

 엄마 "노래는 나오잖아."

 이모2 "무슨 일 있나? 좀 찾아봐봐."

 이모1 "날씨가 참 좋네."

 나 "????"

 역시 이런 토크에 끼기에 나는 아직 조무래기인가.


 딱히 잘한 것도 없는 내가 이렇게 하루하루 무탈하게 사는 건 '다 조상님이 보살펴주시는 덕분'이라는, 평소 엄마가 자주 하던 말을 생각하면서 산에서 내려왔다. 착하게 살게요 할아버지, 할머니. 계속 지켜봐 주세요. 또 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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