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번째 생신 기념
최근 한 달 정도 밤마다 우클렐레를 쳤다. 왕초보 악보집을 펼쳐놓고 동요들을 불러제껴 보니 엉망진창이어도 나름 재미가 있었다. 다만 아쉽게도 실력은 거의 늘지 않았고 남편 귀만 고생했다.
내 목표는 생일 축하 노래였다. 아빠의 생신 때 멋지게 연주해 드리고 싶었다. 그러다 문득 오래된 약속이 떠올랐다. 아빠에게 기타를 사드리겠다고 했던.
퇴근길 낙원 상가에 들렀다. 7시가 가까워 문을 닫은 곳이 더 많았다. 기타의 ㄱ도 모르는 나는 온전히 사장님 추천에 의존해야 했으므로 천천히 걸으며 가게 안 얼굴들을 살폈다. 더는 시간을 끌면 안 되겠다 싶어 걸음을 멈춘 곳에는 인상 좋은 부부 사장님들이 계셨다.
"제가 기타를 잘 몰라서 그러는데요... 짧게 연주해 주실 수 있을까요?"
사장님은 흔쾌히 추천하신 기타의 소리를 들려주셨다. 이걸로 할까 하던 차에 옆에 있던 기타에 눈길이 갔다.
"이게 조금 더 좋은 건데 소리 한 번 들려드릴까요?"
기타 무지랭이가 듣기에도 훨씬 소리가 좋았다. 그리고 당연히 더 비쌌다. 내가 머뭇거리자 사장님이 덧붙이셨다.
"이 기타 만든 회사가 올해 60년이 돼요. 기타만 오래 만들었거든."
"아... 그러면 이걸로 해야겠네요. 아빠 선물로 드릴 건데 아빠가 이번에 환갑이시거든요."
"나도 올해 환갑인데 아버님이 나랑 친구시네?"
사장님은 껄껄 웃으시며 근사한 가방에 기타를 넣으셨다. 아빠가 좋아하실 거라면서 가격도 조금 깎아주시고.
생신 잔치를 이틀 앞둔 저녁, 엄마와 아빠가 산책하러 나갔는데 벤치에 앉아 기타 치는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내가 기타 산 걸 알고 있던 엄마는 아빠에게 슬쩍 물었다.
"자기 기타 칠 줄 알아?"
"쬐끔."
"오, 그래?"
"뚠뚠이가 나 기타 사준다고 했는데 언제 사주려나 모르겠네."
엄마는 말없이 웃었다고 한다.
지난 주말 가족들과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맛있는 것도 먹고 아빠 생신 잔치도 야무지게 해드렸다. 동생 차에 숨겨온 나의 깜짝 선물을 아빠는 무척 마음에 들어 하셨다.
"이거 좋은 거냐?"
"아, 그럼~ 소리가 다르잖아. 열심히 쳐야 해."
"흐흐 알았다."
엄마가 힘들게 뭘 기타까지 사냐고 했는데 엄마 말 안 듣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올 연말 퇴직을 앞두고 부쩍 심란했던 아빠는 얼마 전 동생과 저녁을 먹으며 '나처럼 살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나는 그 말에 동의할 수 없다. 누구보다 성실히, 열심히 사신 아빠처럼 살고 싶다. 오늘 60번째 생신 축하드려요,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