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새로운 시작
13년 동안 회사를 열 번 정도 옮기면 이직, 퇴직에 감흥이 없어진다. 내일 회사를 그만둔다고 해도 그러려니, 게다가 프리랜서라서 대단한 소속감도 없다. 지금 잠시 서로 필요해서 손잡고 있을 뿐 어차피 회사는 나를 책임져 주지 않는다. 이런 나는 퇴직을 앞두고 심란해하는 아빠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아빠는 37년 동안 한 회사에서 근무했다. 내 인생보다 더 긴 시간을 회사에서 보냈다. 중간에 근무지를 옮긴 적은 있지만 소속이 바뀐 적은 없다. 아빠한테 회사가 어떤 의미였을지 가늠할 수도 없다.
아빠와 애증의 세월을 보낸 엄마가 그래도 아빠를 높게 평가하는 건 직장인으로서의 자세였다.
"전날 아무리 술을 먹어도 회사 가기 싫다는 소리는 안 했어. 회사는 꼭 갔어. 갔다가 조퇴하더라도 결근은 안 했어."
아빠와 같은 회사에 다니는 동생은 아빠의 애사심에 대해 여러 번 얘기했다.
"아빠가 진짜 회사를 좋아했어. 그래서 더 섭섭하고 그렇겠지."
"아니, 회사가 왜 좋아?"
"하... 네가 뭘 알겠냐."
정년퇴직의 섭섭함에 공감하지 못하는 프리랜서 장녀는 한동안 이상한 사람 취급을 당했더랬다.
어제 점심에 엄마랑 빵을 먹으면서 내기를 하자고 했다.
"내일 아빠 울면서 온다에 걸게."
엄마는 별말 없이 피식 웃기만 했다. 그리고 오늘, 전화를 걸었더니 엄마 목이 잠겨 있었다.
"엄마, 아빠 울어?"
"...... 응..."
"운다고? 진짜? 왜? 엄마도 울어?"
"......"
오늘, 아빠의 37년 회사 생활이 끝났다.
처음 방송국에 들어가 막내 작가로 일하던 프로그램의 마지막 방송 날, 30분 거리를 훌쩍거리며 집에 왔다. 그 뒤로도 몇 번을 그만둘 때마다 울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회사에 너무 마음 주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빠의 퇴직에 세상 담담한 척했지만 사실 나는 그 누구보다 쿨하지 못했다. 그래서 자꾸만 마음이 쓰였다.
꽃다발과 작고 귀여운 봉투 말고 뭔가 특별한 걸 드리고 싶어서 출근길 대형 서점에 들렀다. 아빠가 회사 밖에서 즐거움을 찾길, 그 즐거움이 기록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도 써보고 싶었지만 비싸서 못 샀던 다이어리를 골랐다. 다이어리만 드리려니 뭔가 허해서 볼펜도 한 자루 샀는데 야심 차게 각인도 했다.
"제대하면 상추도 키우고~"
아빠는 퇴직보다 제대라는 말을 더 좋아한다. 지금도 가끔 군대 가는 꿈을 꾼다면서 두 번 제대하는 건 괜찮은가 보다. 프리랜서 딸은 지난 37년의 노고를 위로하기보다 아빠의 제대를, 새로운 시작을 있는 힘껏 응원해드리고 싶다. 우리 새해에는 더 많이 웃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