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지금 만나러 갑니다

본격 청첩장 배달기

by 초롱

가방에 항상 책 한 권은 넣어서 다니는데 두꺼운 책을 보는 동안에는 어깨가 아프다. 전자책을 살까 잠시 고민하다가 금방 접었다. 책은 종이를 넘기는 맛인데! 포기할 수 없다.

자주 편지를 쓰고 보통 집에 있을 때는 라디오를 켜놓는다. 노래는 스트리밍보다 옛날 노래 위주로 MP3에 다운받아서 듣는다. 뭘 타는 것보다 걷는 게 좋다. 메모 앱을 여러 번 깔아봤지만 결국 수첩을 들고 다닌다. 필통에 연필이 들어있다. 나는 취향만으로도 짐작이 되는 사람이다.

청첩장이 나오고 휴대폰 연락처 목록을 훑어봤다. 이 회사 저 회사 옮겨 다니다 보니 계속 연락을 이어 온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꼭 결혼식에 와주었으면 하는 친구, 지인의 이름을 봉투에 적었다. 모바일 청첩장이 있었음에도 전부 직접 찾아가서 드리기로 했다.

"선배님, 저 결혼하는데 청첩장 드리고 싶어서요. 언제 시간 괜찮으세요?"

"바쁠 텐데 그냥 모바일로 주지."

"아니에요. 계시는 데 말씀만 해주시면 갈게요."


몇 년 전 어렵게 입봉을 하고 작가를 때려치우기로 마음먹었다. 내 길이 아니라는 확신이 있었다. 좋아하는 책을 만들겠다며 줄기차게 출판사에 이력서를 내고 떨어지기를 반복하다가 당장 월세도 못 낼 지경에 이르렀다. 나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딱 한 번만 더 방송 일을 해보기로 했을 때 선배님을 만났다.

선배님과 일하면서 내가 얼마나 이 직업을 좋아하는지 알게 됐다. 그 이후로도 회사를 때려치우고 싶은 적은 (안타깝게도) 여러 번 있었지만 작가를 그만두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게 됐다. 그때 선배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 나는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상상이 안 된다.

"그렇게 길게 연애를 하더니 결국은 가네. 축하해, 새댁."

오랫동안 똘이와 나를 지켜보신 선배님께 듬뿍 축하를 받았다. 종이 청첩장 덕분에 선배님의 환한 웃음을 볼 수 있었다.


제일 멀리 찾아간 친구는 대학교를 같이 다녔던 동생이었다. 나보다 먼저 결혼하고 예쁜 딸을 낳아 엄마가 됐다. 아직 아기가 어려서 집으로 오라고 했다. 청첩장을 내밀자 동생이 큰 눈으로 웃었다.

"세상에, 언니가, 결혼을. 너무 신기해요."

"응, 나도 신기해."

우리는 포장해 간 찜닭을 먹으면서 신나게 떠들었다. 동생은 내가 겪고 있는 고충을 줄줄 꿰고 있었다. 결혼 선배님의 아낌없는 조언에 귀를 기울였다. 이야기를 나누는 중간에 아기도 한 마디씩 거들었는데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세상 귀여움을 독차지한 얼굴이었다.

"혼자 보려면 힘들지 않아?"

"괜찮긴 한데 안 괜찮을 때도 있어요. 아기 기저귀 몇 번 갈아주고 밥 먹이고 하다 보면 하루가 금방 가요. 예전에 학교 다니고 회사에서 일하던 제가 기억이 안 나요. 가끔 저를 잃어버린 것 같고. 답답하기도 해요."

밤공기가 쌀쌀했지만 동생은 자꾸 밖으로 나가자고 하더니 결국 옷을 챙겨 입었다. 집 앞 카페에 나오는 데도 가방이 한 짐이었다. 집에서는 잘 놀던 아기가 칭얼거렸다. 자꾸만 동생 얼굴을 살피게 됐다.

"준비 잘하고 그날 만나요, 언니. 여기까지 와줘서 고마워요."

코앞에 닥친 결혼이라는 불을 끄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동생을 만나 잠시 그 너머의 생활을 생각해봤다. 잘 그려지지 않는다. 결혼하면 어른이 되는 것 아닌가. 어른이 되면 다 아는 것 아닌가. 나는 왜 이렇게 모르는 게 많은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끌고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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