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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롱 Nov 06. 2019

#21. 포기할 용기

행복은 몸무게순이 아니잖아요

 먼 듯 가까운 듯 봄이 오고 있었다. 차를 한 잔씩 들고 국회 잔디밭 근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청첩장을 열면서 기자님이 말했다.

 "드디어!"

 매번 이 순간에는 '너무 정직하게 썼나.' 조금 부끄러웠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신속한 감상평이 돌아왔다. 

 "작가님답네."

 어디까지 준비했는지, 앞으로 할 일은 뭐가 남았는지 한참 떠들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기자님은 결혼할 때 뭐가 제일 힘들었어요?"

 "나... 와이프가 다이어트하면서 화낸 거."

 동시에 크게 웃었다. 긴말이 필요 없는 고충이었다.

 "저는 안 할래요. 살 뺀다고 극적으로 예뻐질 것도 아니고."

 "뭘 빼. 잘 생각했어요."

 동이도 나도 어디 가서 덩치로 밀리지 않을 우리들이지만 당당하게 다이어트를 외면하고 있었다. 그래도 양심은 있어서 맛있는 걸 먹을 때마다 잠시 머뭇거리긴 했다.

 "우리 이래도 괜찮은 걸까."

 "뭐 어때. 행복하면 그만이지."

     

 여기저기서 들은 것과 달리 우리는 결혼 준비를 하면서 한 번도 싸우지 않았다. 동이가 원래 화가 없는 체질(?)이라 평소에도 큰 소리 낼 일이 없다. 그래도 거사를 앞두고 한 번은 부딪히지 않을까 했는데 다행히 내 예상은 빗나갔다. 싸우지 않을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배고프면 화를 내는 내가 용기 있게 다이어트를 포기한 덕분 아닐까. 그래, 그런 거로 하자.     


 결혼식이 한 달도 안 남은 토요일 오후, 드레스를 고르러 갔다. 샵에 들어가면서부터 주눅이 들었다.

 "아까 왕돈가스 반만 먹을 걸 그랬나 봐."

 "이미 늦었어. 괜찮아."

 웨딩촬영의 악몽이 다시 떠올랐다. 입어볼 드레스를 고르고 커튼을 치자마자 직원분께 미리 사과드렸다.

 "선생님, 제가 그... 살을 안 빼서 죄송해요."

 "아유, 무슨 말씀이세요. 안 빼셔도 돼요. 괜찮아요."

 최선을 다해 배에 힘을 줬다. 거울에 비친 내 꼴이 우스웠다. 당당하게 먹어 재낀 결과는 참혹했다. 

 "얼굴이 왜 그래?"

 커튼이 열리자 엄마가 물었다.

 "벗고 싶어서."

 카메라를 든 동이를 향해 분명히 웃은 것 같은데 나중에 사진을 보니 얼굴이 한껏 구겨져 있었다. 빠르게 드레스를 정하고 나오면서 직원분께 공수표를 날렸다.

 "제가 다음 달에는 꼭 살 빼서 올게요."

 결혼식 전날 저녁, 나는 올갱이 국 두 그릇과 샵에서 했던 약속을 마셔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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