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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롱 Nov 05. 2019

#20. 도전, 건강검진

가장 생산적인 이벤트?!

 결혼 준비하는 내내 눈에 불을 켜고 안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다닌 우리였지만 건강검진만큼은 꼭 하기로 했다. 오랫동안 불규칙한 생활을 해온 동이가 아픈 데는 없는지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종종 운동도 하고 몸에 좋은 음식을 잘 먹는 나는 별문제가 없겠지만 혼자 하라고 하면 절대 안 할 것 같아서 같이 예약을 했다.

 "부부는 10% 할인해드리는데 혹시 혼인신고 하셨나요?"

 이 기회에 해버릴까 잠시 솔깃했지만 이 좋은 혜택은 다음에 받기로 했다.


 검사 전날 동이에게만 미션이 있었는데 바로 대장 내시경 약 먹기였다. 큰 물통에 가루약을 녹여서 시간에 맞춰 먹어야 했는데 지켜보는 내가 다 고역이었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맛이나 향이 많이 나아진 거라는데 동이는 영 힘들어 보였다. 검사 당일에도 새벽에 일어나서 물약을 콸콸 마셨다. 

 "맛없어."

 "그래도 먹어야 해."

 물 먹는 하마가 된 동이의 등을 쓸어줬다. 괜히 고생시키는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날이 밝자마자 병원으로 향했다. 가운을 입고 이런 데 언제 또 와보겠냐며 셀카를 찍었다.  하룻밤 금식으로 핼쑥해진 우리 얼굴을 보고 있자니 웃음이 났다.

 간호사 선생님의 안내에 따라 종이를 들고 돌아다니면서 검사를 받았다. 빨리 밥을 먹고 싶어서 시키는 대로 부지런히 움직였다. 중간에 동이를 만난 곳은 하필이면 체지방 검사장. 먼저 올라가지 않으려고 눈치를 보다가 결국 매너 있게 서로 안 보기로 약속했다. 피차 손해일 때는 빠르게 물러서는 게 상책이니까.


 마지막 검사는 내시경이었다. 나란히 의자에 앉아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렸다. 동이도 나도 내시경은 처음이라 조금 긴장됐다.

 "들어오세요."

 호스를 물고 옆으로 누웠다. 멀리 컴퓨터 모니터 화면을 보고 있다가 순식간에 잠들었다. 눈을 뜨니 검사가 끝나 있었다.

 "제가... 헛소리했나요?"

 간호사 선생님은 웃기만 하셨다. 역시... 그때 멀리서 웅얼거리는 동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쪽 다리가 이르케 이르케 한 건데요."

 놀려줄 거리가 생겨서 흐뭇했다. 정신이 돌아올 때까지 의자에 앉아 있다가 옷을 갈아입고 건강검진센터를 나왔다. 죽을 먹을 수 있는 쿠폰을 들고 병원 안에 있는 식당으로 가서 전복죽을 주문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굶는 일에 끄떡없었던 우리는 어느새 한 끼만 못 먹어도 어질어질한 30대가 되어 있었다. 따뜻한 죽을 한 숟갈 입에 넣자 얼굴색부터 달라졌다.

 "진짜 맛있다."

 "여기 제주도네."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결혼이 아니었다면 하지 않았을 여러 가지 일을 하다 보니 이게 모두 둘이어서 가능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밌는 일도 어려운 일도 동이와 함께였기 때문에 웃으면서 할 수 있었다. 동이에게 새삼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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