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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롱 Nov 06. 2019

#22. 뜻밖의 선물

누군가를 보낸다는 건

 -몇 시에 끝남? 회사 앞으로 가겠음.

 동생이 오겠다고 했다. 휴가를 내고 여자친구랑 놀러 왔는데 잠깐 보자는 것이었다. 갑자기 왜? 아무래도 여자친구를 소개해주려는 것 같았다. 미리 말해줬으면 옷이라도 좀 신경 써서 입고 왔을 텐데 후회가 됐지만 이미 늦었다. 

 '결혼한다고 하면 어쩌지?'

 혼자 괜한 걱정을 했다. 내가 가니까 자기도 가겠다고 할 수 있지 않나. 만난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말려야 하나. 아니, 내가 뭐라고 말리나. 뇌의 절반은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데 쓰고 있었다.


 우리는 두 살 터울이다. 동생이 여러 번 분노했는데 같이 다니면 대부분 동생이 오빠인 줄 안다. 외관상 내가 철딱서니 없어 보여서 그런 것 같은데 기분은 썩 나쁘지 않다. 동생은 모르겠지만 그래도 내가 누나지, 싶었던 때가 딱 한 번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엄청 추운 1월이었다. 하루 뒤 동생은 입대를, 나는 편입 면접을 앞두고 있었다. 엄마, 아빠는 내일이면 볼 수 없는 아들과 안방에서 자고 나는 혼자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책을 성의 없게 넘기고 있었다. 어차피 망한 것 같아서 노트북을 켜고 추억의 싸이월드 다이어리에 편지를 썼다. 정확하게는 기억나지 않는데 '멀리 떠날 너에게' 뭐 이런 식의 눈 뜨고는 못 볼 문장으로 시작했던 것 같다.

 쓰다 보니 눈물이 줄줄 나왔다. 이러려고 시작한 게 아닌데.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초등학교 4학년 내 생일날, 동생이 학교 앞 문방구에서 300원짜리 텔레토비 장난감을 선물로 사 준 부분에서 소리도 못 내고 오열했다. 아니, 이럴 일인가. 거의 A4 2장 분량을 써서 비공개로 저장했다. 난생처음 동생에 대한 애정이 폭발한 밤이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얼굴이 가관이었다. 고개도 못 들고 잘 다녀오라는 인사만 던지고 먼저 나왔다.

 “김초롱 학생은 무슨 일이 있나요?”

 “동생이 오늘 군대에... 흐끄흑흐흑흒”

 어디 가서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얘기인데 면접관 앞에서도 울었다. 굉장히 극성맞은 누나로 보였을 텐데 의외로 합격을 했고 부끄러워서 다른 학교에 갔다.


 날짜가 점점 다가오면서 동생은 오락가락했다. 어느 날은 자기가 결혼하는 것처럼 들떴다가 또 어느 날은 세상 근심‧걱정은 혼자 하는 얼굴이었다. 오래전, 스탠드만 켜놓고 울던 그 밤이 떠올랐다. 누군가를, 그것도 나와 매우 닮은 사람을 '보낸다'는 건 꽤 어려운 일인가보다.    

 

 회사 앞 카페에서 동생을 만났다.

 "왜 혼자야?"

 "잡아먹을까 봐 안 데려옴."

 "뭐래."

 동생이 건넨 작은 종이가방에는 상자가 들어 있었다.

 "선물."

 며칠 전 갖고 싶은 게 없냐고 물어서 자전거를 사달라고 했다. 자전거 타고 신부 입장할 거 아니면 안 사준다고 해서 결혼 선물은 물 건너간 줄 알았다. 상자에는 5만 원짜리 지폐가 한 묶음 들어있었다.

 "뭐야? 이걸 왜 줘?"

 "갖고 싶은 거 사든가. 빨리 집어넣어. 여기 제일 가까운 은행 어디냐?"

 시키는 대로 ATM기에 돈을 넣었다. 동생이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간다. 주말에 보자."

 여자친구가 기다리고 있다며 동생은 홀연히 가버렸다. 한동안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어렸을 때는 치고받고 싸우느라 몰랐는데 나이가 들고 보니, 엄마와 아빠가 나한테 준 제일 좋은 선물은 역시 동생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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