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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롱 Nov 08. 2019

#24. Dr. 베토벤

"뭐라고?"

 목표는 오로지 하나, 결혼 전에 내가 암이 아니라는 진단을 받는 것이었다. 그것보다 중요한 건 없었다. 당장 검사가 가능한 대학 병원을 수소문했다. 여러 통의 전화를 돌린 끝에 간신히 예약을 할 수 있었다.


 결혼식 이틀 전, 이래저래 분주했던 엄마와 내가 병원 대기실에 나란히 앉았다. 어쩌다 여기 이러고 있는 건가 싶어서 기가 막혔다. 심란한 얼굴을 하고 있는데 이름이 불렸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범상치 않은 인상의 의사 선생님이 맞아주셨다. 헤어스타일만 보면 한국 의료계의 베토벤 같았다. 모니터에는 이전 병원에서 받아온 엑스레이 사진이 띄워져 있었다.

 "이쪽에 석회가 모여 있네요. 이게 나쁜 놈인지 좋은 분인지 검사를 해봐야 할 것 같아요. 조직 검사 방법은 두 가진데 주사기를 넣어서 일부를 빼내는 방법이 있고 그게 안 되면 가슴을 절개해서..."

 '절개'라는 말에 엄마의 낯빛은 사색이 됐다. 하지만 나에게는 지금 여닫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오늘 가능한가요?"

 "주사기로 빼내는 건 오늘 할 수 있는데 석회 위치 때문에 안 될 수도 있어요. 일단 사진을 다시 찍어서 가능한지부터 알아봅시다."     

 간호사 선생님을 따라가서 엑스레이를 찍었다. 이 정도는 견딜 만했다. 오늘 당장 검사를 받을 수 있다면. 잠시 후 다시 베토벤 선생님과 마주 앉았다.

 "안 되겠네. 가슴을 열어야 할 것 같아요."

 "오늘 해주세요."

 "뭐라고?"

 "꼭 오늘 해야 하거든요."

 "이것도 수술인데 지금 어떻게 해요. 왜 이렇게 급하실까."

 선생님은 일정이 빼곡한 달력을 내밀었다.

 "자, 여기서 가능한 날짜 보세요. 제일 빠른 게 다음 주 수요일인데 괜찮아요?"

 "선생님, 제가 그때는 한국에 없어요."

 "어디 가는데요?"

 "신혼여행이요. 프랑스."

 "뭐라고?"

 "제가 내일모레 결혼을 하거든요."


 잠시 말을 잇지 못하던 베토벤 선생님은 껄껄 웃으면서 내 어깨를 한 번 툭 치셨다.

 "그래서 그렇게 급했구먼. 이게 당장 나빠지거나 어떻게 되는 병이 아니에요. 그리고 드레스 안 입을 거예요? 멍들 수도 있는데. 절개하면 비행기도 바로 못 타요. 그러니까 결혼식 잘하고 신혼여행 재미있게 갔다 오고 그 뒤에 합시다. 다음다음 주 화요일. 알겠죠?"

 "이 상태로 가면 재미있을 수가 없어요..."

 "그럴 일이 아니라니까 그러네. 잘 다녀와요~"

 진료실에서 나와 수술에 대한 설명을 듣고 동의서를 작성했다. 병원을 벗어나서는 더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쉽지 않았다. 기차역에서 엄마와 헤어지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할머니, 도와주세요. 제발.'

 그날 밤, 아주 오랜만에 할머니를 생각하면서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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