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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롱 Nov 11. 2019

#25. 함 들어오던 날

결혼식 전야제

 평소보다 늦게 퇴근했다. 일주일 동안 자리를 비우게 됐으니 대충 책상을 치우고 회사를 나왔다. 기차를 타고 내려와서 엄마를 만났다.

 "자주 보네?"

 "그러게. 정들겠어."

 바로 한복집에 가서 미리 주문해놓은 함을 찾았다. 여기에도 나름의 사연이 있다.     

 

 내내 우리가 하는 걸 지켜만 보던 엄마가 은 무조건해야 한다며 한 발도 물러서지 않았다.

 "대체 그게 뭔데? 그걸 왜 해야 하는데?"

 "네가 뭘 알아!"

 예단도, 예물도 아무것도 안 했는데 이제 와서 함이 웬 말인가.

 "내가 사주단자도 못 받고 너를 보내야 하냔 말이야!"

 "아, 누가 보내래? 내가 어디 가? 왜 그래, 진짜!"

 그때만 해도 건강검진 결과가 나오기 전이라 파이팅이 넘쳤다. 엄마와 대차게 싸운 끝에 동이 부모님께는 말씀드리지 않고 우리가 준비해서 가져오기로 합의했다.

     

 엄마는 동이를 만나기로 한 곳에 나와 함을 내려주고 먼저 집으로 갔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비단에 쌓인 보따리와 피곤함에 찌든 내 얼굴을 힐끔힐끔 쳐다봤다. 조금 기다리니 감기에 흠뻑 든 동이가 나타났다. 우리 모두 만신창이었다.     

 "엄마가 집 앞에 박을 놔둘 거래. 그걸 빡 깨고 들어와야 잘 산대. 잘해. 알았지?"

 "응응."

 함을 동이에게 맡기고 먼저 집으로 올라갔다. 이모와 이모부, 그리고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빠와 동생은 직계 가족 경조사 휴가를 받아서 하루 쉬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 직계 가족은 쉬지 못했다는 아이러니. 

 열린 현관문 사이로 동이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와 이모가 재빨리 나갔다.

 "안녕하세요. 너무 오래 기다리셨죠."

 "아이고, 사위 왔네."

 "오느라 고생했지. 한 번에 잘 깨야 해."

 거실에 가만히 앉아 귀를 기울였다. 잠시 후 벼락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대체 우리는 얼마나 잘 살 것인가. 나중에 이모한테 들으니 '사위가 공중으로 짬뿌'를 했다고 한다.

 

 동이가 가져온 함 위에 미리 준비해놓은 시루떡을 올렸다. 그 너머에 엄마와 아빠가 앉고 절을 했다.

 "아버님, 어머님. 잘 살겠습니다!"

 "고마워. 잘 살아. 우리 딸, 우리 사위."

 "뉘 집 사위가 저렇게 잘 웃나. 아유, 좋네."

 지켜보던 이모가 입에 침이 마르게 동이 칭찬을 했다. 그래도 잔칫집인데 기름 냄새가 안 나면 섭섭하다며 종일 준비한 음식이 한 상 가득 차려졌다.

 "미역국 끓일까 하다가 내일 미끄러질까 봐 올갱이국 끓였어."

 "이거 이모부가 직접 잡은 거야."

 "너무 맛있어요. 살 거 같아."

 우리는 국을 두 그릇씩 먹었다. 피로가 싹 가셨다.

 "많이 먹어라. 올갱이 볼 때마다 너희 생각나겠다. 이모부가 또 잡아 올게."

 "아니, 이렇게 바쁜 신랑 신부는 처음 보네."

 "나 내일 진짜 결혼하는 거 맞아?"

 "얼른 가서 일찍 쉬어. 동이는 감기약 꼭 먹고 자고."

 배불리 먹고 집에서 나와 예식장 근처에 예약해 둔 호텔로 갔다. 그래도 미혼의 마지막 날인데 뭐라도 해보자... 는 무슨. 씻자마자 기절하듯 잠들어버렸다. 순식간에 결혼식 전날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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