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힐링 타임?
안타깝게도 중학교 때까지만 공부를 잘했던 나는 집에서 40분 거리의, 시외에 있는 유명한 고등학교에 다녔다.(3년 내내 꼴찌이거나 거의 꼴찌였다.) 11시에 야자가 끝나면 집에 올 방법이 없어서 3년 내내 '봉고차'-동네에서 양복점을 하던 아저씨가 우리 학교 학생들을 실어 날으던-를 타고 다녔다. 학교 근처에 살던 친구들이 공부를 더 하겠다고 삼삼오오 독서실에 갈 때 나는 집에 가기 바빴다. 봉고차를 타고 가도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었다. 못 다녀본 독서실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나는 도서관을 좋아한다. 한달에 두어 번은 책을 빌리러 도서관에 간다. 시간이 뜰 때 근처 아무 도서관 열람실에 가서 멍하니 앉아 있으면 그렇게 마음이 편하다. 남편은 보통 그럴 때 카페가 간다고 하는데 나는 도서관이 더 좋다. 도서관에 살고 싶어서(?) 몇 년 전에 잠깐 사서 교육원에 다니기도 했다. 그 꿈은 아무래도 다음 생에나 이룰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아파트 단지 안에는 주민들을 위한 독서실이 있다. 크지는 않아서 입주하고 계속 구경만 하다가 6개월 전쯤 기회를 잡아 나도 한 자리 차지했다. 연필꽂이도 갖다 놓고 평소에 잘 들춰보지도 않던 책도 꽂아 놓았다. 작년에 두 달 가까운 취업 준비생 시절을 이곳에서 보냈다. 칸막이 책상 앞에 앉아 지겹게 자기소개서를 고치고 이력서를 보냈다. 다시 회사에 다니면서 앉아 있는 시간이 확연히 줄었지만 여전히 이 자리가 참 좋다. 지금도 독서실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다.
독서실은 우주 같다. 가본 적 없는 우주의 진공 상태가 이곳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몸이 둥실 뜨지는 않지만 마음은 확실히 가볍다. 회사의 피로를 독서실에서 푸는 30대라니, 역시 좀 이상한가요.
두뇌 건강을 위해 하루 한 장씩 EBS 수학 문제집을 풀기로 했다. 오늘이 그 첫날인데 한동안 소홀했던 브런치에 끄적끄적 글을 쓰는 이유는 (역시나) 문제를 풀기 싫기 때문이다. 독서실에 다닌다고 꼭 성실한 건 아닌가 보다. 그만하고 얼른 풀어보자, 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