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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롱 Nov 21. 2019

타인에게 말 걸기

@밤의 서점

 그냥 집에 가기 좀 아쉬운 날이었다. 문득 근처에 밤에만 문을 여는 서점이 있다는 게 생각났다. 지도 앱을 켜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큰길에서 골목 안쪽으로 조금 고개를 꺾었더니 서점이 보였다. 문을 열자 '딸랑' 종소리가 났다. 

 "안녕하세요."

 클래식 음악 사이로 점장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설레는 마음으로 들어서면서 킁킁 책 냄새를 맡았다. 누군가의 비밀 공간에 슬쩍 들어온 기분이었다.


 내가 모르는 책이 많았다. 나름 출판계의 트렌드를 꿰고 있다고 자부했는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어졌다. 가만히 누워 있는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보면서 잠시 생각했다. 나도 언젠가는 이 책을 읽을 수 있을까.     

 어떤 책들은 띠지 위에 띠지를 또 입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점장님이 손글씨로 쓴 감상, 추천사가 적혀 있다. 책 제목보다 그 문장들이 더 눈에 들어와서 몇 개 읽으며 서가를 구경했다.     


 보통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 잘 사지 않는다. 사면 잘 안 읽는 희한한 버릇이 있다. 왜 그런가 나름의 이유를 찾아봤는데 언제까지 읽어야 한다는 기한이 정해져 있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그래서 도서관 책을 먼저 읽고 '이건 소장해야 한다!' 싶은 책만 산다. 나란히 서 있던 두 권을 앞에 놓고 고민에 빠졌다. 소장할 '아는' 책을 살 것인가. 안 읽을 '모르는' 책을 살 것인가. 나의 선택은 후자였다.     

 

 계산하려고 책을 건네니 도장 두 개를 보여준다.

 "책 도장인데요. 어떤 거 찍어드릴까요?"

 이렇게 아기자기할 수가. 나는 기쁜 마음으로 작은 걸 골랐다. 스탬프 패드에 도장을 두드리며 점장님이 물었다.

 "바쁘세요?"

 "네? 아니요?"

 낯가림이 심한 나는 순간 긴장했다. 무슨 일일까.

 "편지 한 통 쓰고 가실래요? 저희 가게에 이야기 상자라는 게 있는데요. 써서 두고 가시면 다른 분께 전해드려요."

 "그럼 저도 편지를 받을 수 있나요?"

 "그럼요. 저기 앉아서 쓰시면 돼요."     


 A4 용지를 한 장 받아서 1인용 책상에 앉았다.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어떻게 말을 걸면 좋을까. 요즘 읽고 있는 책, 오늘 산 책, 그리고 좋은 밤 보내시라는 짧은 인사를 남겼다.     

 점장님은 봉투에 내 편지를 넣고 스티커를 붙였다. 그리고 상자를 꺼내와 한 통을 고르라고 했다.

 "봉투는 인증하셔도 되지만 내용은 비밀일 수도 있으니까 혼자 보세요."

 "그럴게요."

 웃으면서 인사를 하고 서점을 나왔다. 내가 받은 편지에는 누군가의 어느 선선한 가을날이 담겨 있었다. 평평하게 지나가던 하루가 잠시 반짝였다. 오늘 산 책은 꼭 읽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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