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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롱 Nov 26. 2019

이토록 잔인한 풍경

오래전 11월

 횡단보도 건너편에 서 있는 그 얼굴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신호가 바뀌고 점점 거리가 가까워졌지만 아무래도 나를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여전히 어깨가 많이 굽었고 걸음이 불안해 보였다.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는데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한 학년에 여섯 학급씩 있던 우리 학교에서 그 친구는 6학년 7반이었다. 일과 시간의 대부분을 특수반이라 불리던 그곳에서 보냈다. (지금은 어떻게 부르는지 잘 모르겠다.) 한참 어린 동생과 등하교를 같이했다. 말이 어눌해서 대화가 쉽지 않았는데 애초에 누가 말을 거는 일도 많지 않았다.     


 11월이었다. 이유는 잘 기억나지 않는데 7~8명 정도가 수업이 끝나고 빈 교실에 남아 있었다. 교실마다 석유 난로가 설치되고 선생님 눈을 피해 이것저것 구워 먹던 때였다. 그즈음 땡구리라는 100원짜리 불량식품이 유행했는데 설탕 맛밖에 안 나는 눈사람 모양 사탕이었다. 아이들이 난로 주변에 모여 땡구리를 녹이는 장난을 치고 있었다. 잠시 후 끔찍한 비명이 들렸다. 동물의 울음에 가까웠던 그 소리를 지금도 기억한다.     


 “병신, 조용히 해!”

 뜨겁게 달궈진 사탕 여러 개가 그 친구의 손등에 닿았다. 아이들은 키득키득 웃으며 비명을 막으려 했다. 놀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처럼 보였다. 대단한 의도가 없어서 더 잔인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땡구리는 빨대처럼 가늘고 긴 플라스틱이 달린 막대 사탕이었는데 그 막대로 벌겋게 부은 살갗을 내리쳤다. 그 친구의 울음소리와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비례했다. 몇몇이 아무 말 없이 그 광경을 지켜봤다. 나는 때리지 않았다. 아니다. 나는 때리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벌써 20년도 더 된 기억이 요즘 자꾸 떠오른다. 11월이라서 그런가. 아니면 이유 없는 악의에 스러진 꽃들 때문일까. 쉬이 잠이 오지 않는 밤이다.


사진 출처

https://medium.com/the-mission/life-is-a-teacher-but-are-you-a-student-4adcf716ec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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