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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롱 Jul 21. 2020

펭수의 질문 "어떻게 힘을 내요?"

구체적으로 말해야 하는 이유

 회사에서 한 번 '짤린' 적이 있다. 팀에서 일한 지 1년이 가까워져 올 즈음 (나와 같은 프리랜서였던 사람이) 재계약은 안 될 거라며 나가라고 했다. 나는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넌 너무 약해."

 대체 뭐가 약하다는 걸까. 줄넘기를 1,500개씩 하는데 몸이 약하다는 걸까, 사포 같은 이 바닥에서 잘도 버텼는데 정신 상태가 약하다는 걸까. 어느 쪽에도 해당하지 않는다는 건 내가 제일 잘 알았다. 일하면서 무능의 끝을 보여줬던 그는 눈엣가시였던 나를 자를 때조차 명쾌하지 않았다.

 "네, 알겠습니다."

 긴말 섞고 싶지 않아서 알겠노라 했는데 그 후 넌 나랑 안 맞는다, 왜 계속 일하고 싶다고 매달리지 않느냐는 되도 않는 소리를 하더니 급기야 응급실에 드러누웠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진짜 약한 사람이 나라고 생각하는지 한 번 물어보고 나올 걸 그랬네요.

     

 며칠 전 사무실에 앉아 있는데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글을 좀 맛깔나게 쓸 수 없니?"

 나한테 한 얘기는 아니었지만 절로 고개가 떨어졌다. 엄청난 깨달음을 얻었거나 반성의 뜻은 아니고 어쩜 저렇게 일관성 있게 두루뭉술한가, 놀라워서 머리가 무거워졌기 때문. 이를테면 그의 충고는 매번 이런 식이다.

 "이야기를 짜임새 있게 구성해봐."

 "문장에 엣지를 넣어."

 "그래서 포인트가 뭔데?"

 맛깔, 짜임새, 엣지, 포인트 모두 좋은 말이다. 하지만 그는 단 한 번도 그걸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에서 대단히 하나 마나 한 소리이기도 하다. 누군가가 나에게 일을 잘하는 기준을 묻는다면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는 능력을 꼽겠다.     


 한 음료 광고에서 직장 상사가 힘내라고 하는 순간, 펭수가 나타나서 묻는다.

 우리는 너무 쉽게 위로하고 쉽게 조언하고 쉽게 좋은 말을 한다. 그 말에 책임질 필요가 없기 때문일까. 그건 듣는 사람 몫이라고 주장한다면 이렇게 되묻겠다. 일말의 책임감도 가지지 않을 거라면 말할 자격이 없는 거 아닌가요. 무책임하게 좋은 말만 구구절절 늘어놓지 않아우리는 괜찮은 사람이 수 있을 텐데.


 이럴 때일수록 나라도 나에게 구체적이기로 마음먹었다. '신경 쓰지 말자'고 얼버무리는 대신 내가 좋아하는 민트초코를 먹고, 읽고 싶었던 책을 펼치고, 건조한 일기 옆에 귀여운 스티커를 하나 붙인다. 구체적이지 않은 말로 받은 스트레스는 구체적인 행복으로 날려 보아요.


사진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AdoAxaugY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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