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일 없이 산다는 기적

자주 잊고 살지만

by 초롱

출근한다고 나간 지 10분도 안 돼서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나는 미루고 미루던 다림질을 하고 있었다.

"사고 났는데 차가 많이 부서져서. 우리 보험 회사 어디지?"

크리스마스이브 아침이었다.


자고 있던 엄마와 동생을 깨워서 달려갔다. 우리가 결혼할 때 아빠가 비상금으로 사준 힌둥의 몰골은 처참했다. 남편은 에어백이 터질 때 놀라서 혀를 깨물었다고. 현장이 정리되고 일단 청심환을 사 먹였다.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집에 돌아오니 점심때가 지나 있었다.


평소보다 2시간 늦게 회사에 가서 남의 정신으로 원고를 썼다. 마무리는 못 보고 퇴근. 사람들 손에 케이크가 하나씩 들려 있었다.

'작은 거라도 하나 살까.'

무슨 맛이 좋을지 휴대폰을 들여다보는데 액정 위로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마중 나온 남편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울어?"

"나도 (훌쩍) 아까 청심환 (킁) 먹을걸. (엉엉)"

"... 지금이라도 먹을까?"


역 광장에 큰 트리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저기서 사진 찍자."

"그래. 케이크 먼저 사고."

한 손에는 조각 케이크, 한 손에는 휴대폰을 들고 최대한 트리가 잘 나오게 각도를 잡았다. 어차피 마스크에 가려 보이지 않겠지만 입을 크게 벌려 웃었다.


평일 저녁에 같이 밥을 먹는 건 오랜만이었다. 메뉴는 엄마가 사다 주고 간 곱창전골.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냄비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남편 얼굴로 시선이 옮겨갔다.

"너 오늘 여기 없을 수도 있었어."

"그치."

곱창전골과 케이크, 크리스마스이브와 남편.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 중에 당연한 건 하나도 없었다.

"별일 없이 사는 게 진짜 별일인 것 같아. 기적이야."

"맞아. 진짜 그래."

따뜻한 국물을 마시면서 종일 굳어 있던 몸과 마음을 달랬다. 함께 보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고 별일 없는 크리스마스이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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