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코스트코
남편은 파괴왕이다. 긴 연애를 하면서 이런저런 커플템을 써봤는데 남편 손이 닿은 것들은 구멍이 나거나 끊어지거나 망가졌다. 최근의 사례를 들면 큰마음 먹고 백화점에서 샀던 외투를 찢어먹었고 (아니 대체 왜?) 청소기를 밀다 멀쩡한 협탁 다리를 부러뜨렸다. 결혼 전, 나는 조금 무서웠다.
"이러다가 나도 닳아 없어지는 거 아닐까."
"헤헤헿ㅎ 조심해라~"
다행히 아직은 크게 닳은 데 없이 잘 지내고 있다.
물욕이 없는 남편은 코스트코를 좋아한다. 말로만 듣던 그곳을 처음 가본 날, 남편은 코스트코와 사랑에(?) 빠졌다. 나 몰래 회원 카드를 만들겠다는 결심도 했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진 안 된다.) 어느 주말 코스트코에 들어가면서 남편은 팬티를 사겠다고 했다.
"오래된 거 몇 개 버렸더니 입을 게 없어. 내 친구 코스트코에서 사야지~"
자기 힘을 잘 아는 파괴왕은 웬만해선 비싼 물건을 사지 않는다. 같은 값이면 비싼 거 한 개보다 저렴한 거 여러 개를 고른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무려 한 장에 만 원이 넘는, 한 상자에 3만 얼마짜리 팬티를 들고 온 것.
"오오 메이커~ 어쩐 일로 비싼 걸 골랐어?"
"이거밖에 없어."
"너무 비싸면 다른 데 가서 사도 돼."
"아니야. 이거 살 거야."
메이커 팬티 때문은 아니지만 계산대에서 역대 방문 중 가장 큰돈을 내고 왔다.
새로 산 팬티를 빨아서 차곡차곡 서랍장에 넣어놨더니 며칠 뒤 남편이 꺼내 입었다. 허리 고무줄에 크게 로고가 새겨진 팬티를 입고 남편은 덩실덩실 춤을 췄다.
"신난다, 메이커 팬티~"
"결혼이 최고지? 나랑 결혼했으니까 메이커 팬티 입는 거야."
"결혼 최고~"
혼자 부모님 댁에 갈 일이 있었던 남편에게 메이커 팬티를 입고 가서 동생에게 자랑하라고 시켰다. 결혼하면 이런 거 입을 수 있다고, 결혼 짱이라고 하라고. 말 잘 듣는 남편은 진짜 시키는 대로 했고 동생은 부러워했다고 한다. (형수님이 미안하다...)
빨래를 개다가 몇 년 전 내가 사준 원숭이 캐릭터 팬티가 헤졌길래 버렸다.
"내가 좋아하는 귀여운 팬티 왜 버렸엉."
"헤진 걸 어떡해. 또 사줄게."
"그럼 메이커 팬티로 사줘."
"아니야. 이마트 가도 팬티 많아."
"안 돼. 난 이제 평범한 팬티의 나라에서는 살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거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요 근래 들은 말 중에 제일 웃기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렇게 귀여운데 뭐는 못 사줄까. 더 비싼 팬티를 들고 와도 쿨하게 사주는 마음씨 좋은 아내가 되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