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롱 Jan 04. 2021

엄마는 군것질을 좋아해

나도 좋아해 헿헿

 초등학교 5학년 때 엄마가 많이 아팠다. 무리한 잇몸 치료를 죽만 먹으면서 버티다가 위 기능이 심하게 떨어졌고 거식증 진단을 받았다. 그즈음 새 일기장 첫 페이지에 이 공책 다 쓰기 전에 엄마가 밥을 먹게 해달라고 적은 기억이 난다. 신기하게도 마지막 장을 쓰던 날 엄마가 일반식을 먹었고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20년도 더 된 일이지만 엄마는 지금도 위가 약하다. 맵거나 소화하기 무거운 음식을 먹으면 어김없이 속을 앓는다. 이 와중에 빵과 떡을 너무나 좋아해서 내가... 잔소리를 안 할 수가 없다. 

 "빵란이, 떡란이 그만 좀 잡사."

 "맛있는 걸 어떡해^.^"


 얼마 전 엄마가 갑자기 아파서 응급실에 실려 갔었다. 다행히 큰 병은 아니라 가족 모두 가슴을 쓸어내렸는데 며칠 뒤 동생한테 분노의 메시지가 왔다. 

 -엄마 오늘도 가래떡을 한 박스 사옴

 -똑같이 표현해줌

 -옴총 말랑말랑해^.^

 불에 살짝 구운 가래떡을 조청에 야무지게 찍어 먹는 엄마 얼굴이 떠올라서 웃고 말았다. 이러니 빵도, 떡도, 엄마도 미워할 수가 없다. 


 예전에는 별 감흥 없었는데 요즘은 누가 먹을 걸 주면 그렇게 반갑다. 크리스마스에 동료에게 쿠키 한 상자를 받은 나는 두근두근 설레고 말았다. 빨간 상자를 소중히 들고 가서 남편에게 한껏 자랑하고 한 입 먹는 순간 몸도 마음도 사르르 녹아버렸다. 말랑말랑만큼 촉촉을 좋아하는 엄마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맛이었다. 유달리 바빴던 2020년의 마지막 날, 엄마에게 무사히 쿠키를 선물했다.

 -쿠키 옴총 맛있네

 -청소하고 아메리카노에 먹고 있어

 -참 맛나네

 다음 날 오후, 엄마의 소감을 받고 나는 또 헤벌쭉 웃었다. 다음에 또 사다 주겠다는 약속도 했다. 엄마가 좋다면 뭔들. 올해는 아프지 말고 재미있고 귀엽게 지내보아요.


사진 출처

https://savorysweetlife.com/alices-chocolate-chip-cookie-recipe/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와 수능 전날 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