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14
오늘은 엄마의 음력 생신이다. 미역국을 끓여야지-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엄마가 한마디 하신다.
"내가 내 미역국을 끓이기는 좀 그렇지 않니?"
에이, 좀 더 세심하게 챙길 걸 그랬다! 하면서 엄마의 말씀에 맞다고 맞장구를 치고,
오늘 저녁은 미역국이라고 선언했다.
교환학생 때나 서울에서 자취할 때에는 정말 먹고 살아야 하니까(...) 매일 요리를 했는데,
본가로 들어와 사니까 사실 라면 끓이거나 가끔 밥 하는 것 말고는 요리할 일이 거의 없었다.
요리를 못하는 건 아니지만, 엄마가 그 전에 다 챙겨 주시니까.
아무튼 몇 년 전에 끓였던 기가 막힌 미역국에 대한 기억을 다시금 더듬어봤다.
황태나 조개 미역국은 시원하긴 하지만, 깊고 진한 맛을 내려면 소고기 미역국이 아무래도 으뜸이다.
마침 경기도 재난지원금이 남아있어서 그 길로 마트에 가서 한우 양지와 맛술을 사왔다.
한우는 진짜... 매번 느끼지만 정말 말도 안되게 비싸다. 겨우 한 줌에 2-3만원을 호가하다니ㅠㅠ
사온 양지를 뜯어 키친타올에 얹고, 꾹꾹 눌러가면서 핏물을 잘 빼준다.
냉장고에 다진 마늘이 남은 줄 알았는데 하필 똑 떨어져서 꿩 대신 닭이라고,
깐마늘 4-5알 정도를 꺼내서 열심히 다져 놨다.
그 다음 그릇에 핏물 뺀 양지와 다진마늘, 맛술 1과 1/2 숟갈, 국간장 2숟갈을 넣고 잘 버무린다.
그리고 간이 밸 수 있도록 잠시 둔다.
고기를 버무리는 동안, 육수를 끓인다. 국물용 멸치가 안 보여서 그냥 다시마만 넣고 푹 끓였다.
자취를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다시마 한 줌이나 표고버섯 기둥 같은 별거 아닌 것들이 얼마나 국물 맛을 달라지게 하는지! 정말 놀라울 때가 많다.
그리고 나서 냄비에 참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버무린 고기와 미역을 미역이 좀 숨이 확 죽을때까지 열심히 볶는다. 국물이 너무 많이 졸아든 것 같으면 육수를 부어도 되지만, 미역에서 나오는 수분이 꽤 되니까 그냥 열심히 볶기만 해도 된다. 근데 진짜 팔 아파 죽는 줄 알았다(...)
어느 정도 볶으면 끓여둔 육수를 붓고, 물이 좀 모자르면 그땐 맹물을 부어도 된다.
팔팔 끓을 때까지 센불에서 끓이다가,
국물이 열심히 끓어오르면 중약불로 줄이고 뚜껑 덮고 한 30분 가만히 둔다.
잘 끓인 것 같으면 맛을 본다. 분명 싱거울텐데, 참치액을 적절히 섞어주면 아주 맛이 좋아진다.
그렇게 좀 더 끓인 다음 불을 끈다.
맛을 봤는데 정말 내가 한 거지만 맛있었다.
아직 엄마가 오시지 않아 밥은 못 차렸지만, 생신 선물로 드릴 돈도 뽑고 나니 한결 맘이 편해졌다.
그래도 내가 맏딸 몫을 하곤 있네.
요리 하면 재밌다. 재밌는 걸 알면서도 귀찮아서 안 하니 문제이지만,
어쨌든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오늘 저녁을 차릴 수 있어서 그게 참 감사하다.
아무쪼록 사랑의 미역국. 끝!